패션 월드의 역사상 이토록 훌륭한 파트너십이 또 있을까? 이탈리아 남부의 관능적인 무드를 이들보다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도미니코 돌체와 스테파노 가바나가 창조한 패션 판타지의 세계. 매 시즌 너무 비슷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돌체 앤 가바나의 약점이라면, 한눈에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점이 돌체 앤 가바나의 강점이다. 약점과 강점이 그네의 양 끝에 앉아 이쪽 저쪽으로 기울어지지만, 맹숭맹숭한 옷들이 쇼윈도에 가득한 요즘 같은 시절엔 더더욱 돌체 앤 가바나 같은 브랜드의 런웨이를 보는 것이 즐겁다.



돌체 앤 가바나 런웨이에 공식처럼 등장하는 아이템이 있다. 어깨를 드러내는 드롭 숄더 드레스, 볼드한 골드 주얼리와 코르사주, 온갖 레이스, 온갖 애니멀 패턴 그리고 온갖 꽃무늬! 화려한 것들이 한데 모여 화려하게 런웨이를 걷는다. 그런데 나는 왠지 매번 의외의 물건에 마음을 빼앗기곤 한다. 바로 오늘의 주인공, 블랙 재킷이다.




돌체 앤 가바나의 블랙 재킷은 우선 그 만듦새가 좋다. 퀄리티 좋은 원단으로 완벽하게 재단해 잘 만든 옷이다. 하지만 다른 이유에서 더 돋보인다. 너무 많은 요소들이 다 같이 와글와글 소리를 지르는 런웨이에서 그것들을 중화시키는 아이템으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화려하게 차려진 테이블에 놓인 담백한 빵처럼, 다른 것들을 빛나게 하는 아이템. 관능미 넘치는 여인들에게 클래식한 아름다움이 더해주고 파워풀한 여성의 모습을 창조하는 아이템. 올가을, 돌체 앤 가바나의 모든 물건들 중에서 딱 하나를 고를 수 있다면 나는 블랙 재킷을 선택할 것이다. 매우 단순한 실루엣이지만 너무 몸을 옥죄진 않는 넉넉한 사이즈에 허리는 약간 잘록하면 좋겠다. 안감이 레오파드 패턴의 실크로 마감되어 입고 벗을 때마다 특별한 느낌을 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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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를 뛰어넘어 시대를 관통하는 가치를 지닌 물건 뒤에 숨은 흥미로운 이야기, 김자혜 작가의 ‘요주의 물건’은 매주 수요일에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