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진주 전성시대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이번 시즌 런웨이에 '흑진주 돌풍'을 몰고 온 이들의 빛나는 행보::모델,흑인,흑인모델,흑진주,패션,런웨이,엘르,elle.co.kr:: | 모델,흑인,흑인모델,흑진주,패션

프라다 쇼 오프닝에 등장한 아녹 야이. 솜씨 좋은 조각가가 빚어놓은 듯한 흰 피부와 빛나는 금발의 백인 모델들이 장악해 온 패션계. 세월이 지나고 시대가 변함에 따라 다양한 인종의 모델들이 새 역사를 쓰고 있다지만, 백인 모델이 견고하게 쌓아온 철옹성을 넘기란 쉽지 않은 것이 현실. 다행히도 최근 몇 년간 다양성을 향한 디자이너들의 ‘타는 목마름’은 이제껏 본 적 없는 다채로운 연령대와 인종, 외모를 가진 모델들에게 가능성을 열어주며 가을바람처럼 신선한 변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이번 시즌, 또 다른 변화의 흐름이 감지됐으니 바로 흑인 모델들의 활약이 어느 때보다 빛나는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사실이다. “어릴 땐 제 얼굴을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까만 제 피부를 볼 때마다 스스로 ‘무매력’이라고 느꼈을 정도니까요.” 천진하게 웃으며 말하는 이 흑인 소녀의 이름은 아녹 야이(Anok Yai). 수단 출신의 19세 소녀는 새 시즌 프라다 쇼 오프닝에 등장하며 당당히 존재감을 알렸다. 더 정확한 이해를 위해 설명을 덧붙이면, 그녀는 1997년 나오미 캠벨 이후 무려 20년 만에 프라다 쇼 오프닝에 등장한 ‘흑인 모델’로 역사적 순간을 장식한 주인공이라는 것. 평범한 학생에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그녀는 현재 프라다와 루이 비통, 에스티 로더의 총애를 받으며 새로운 뮤즈로 떠올랐다. 샤넬 쿠튀르 쇼 피날레 모델과 <i-D> 매거진 커버를 장식한  아두트 아케치.알렉산더 맥퀸 캠페인 걸, 샤넬 니아시아스. 한편 예기치 못한 돌풍을 마주한 또 다른 순간은 샤넬 쿠튀르 쇼의 피날레 무대. 칼 라거펠트의 뮤즈인 백인 아이콘이 차지했던 자리를 아두트 아케치(Adut Akech)가 대신했으니! 칼의 손을 다정히 잡고 피날레를 거닌 아두트는 이번 시즌 30여 개의 쇼부터 광고 캠페인과 각종 매거진 커버 걸로 낙점되며 독보적 매력을 뽐냈다. 아녹 야이와 아두트 아케치가 이번 시즌 ‘검은 물결’의 선두에 섰다면, 올리비아 아나키(Olivia Anakwe)와 샤넬 니아시아스(Shanelle Nyasiase), 블레스냐 미냐르(Ble′snya Minher) 등 뉴커머들의 행보 역시 돋보인다. 이들의 활약상을 주목한 많은 매체는 흑인 신인들의 이름을 앞다투어 거론했으며, <i-D> 매거진은 나아가 아두트 아케치와 아녹 야이, 애드수와 아이흐위(Adesuwa Aighewi)를 표지로 내세운 이슈를 선보일 정도. 패션위크 기간 동안 흑인 모델의 캐스팅 비율이 15%에 지나지 않았던 2015년에 비해 무려 32%로 껑충 뛴 2018 F/W 시즌 통계(뉴욕 타임스)가 이런 현상을 정확히 대변한다. 블레스냐 미냐르. 올리비아 아나키. “오랫동안 일하면서 이렇게 많은 흑인 모델을 캐스팅한 경우는 없었죠.” 캐스팅 디렉터 파트리치아 필로티(Patrizia Pilotti)가 말한다. 파트리치아는 그들의 괄목할 만한 활동을 SNS를 주축으로 한 디지털 세상에서 찾는다. “과거에 비해 쇼의 룩 자체에 관한 관심은 약해진 게 사실이죠. 옷 자체보다 흥미로운 특정 ‘장면’이 더 중요해졌어요. 그런 의미에서 흑인 뉴커머를 메인 모델로 선택한 프라다와 샤넬의 아이디어는 탁월한 선택이었죠.” 실제로 아녹 야이를 오프닝에 세운 프라다는 덕분에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빠르게 이끌어낼 수 있었다고. 한편 이런 현상을 두고 이슈 몰이를 위한 단편적인 유행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패션계는 지금 거대한 변화의 흐름에 탑승했고, 고루한 시스템과 사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보다 현실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피부색과 출신은 중요하지 않아요. 이루고자 하는 꿈과 열정만 있다면 말이죠.” 아두트 아케치의 말처럼 비로소 긍정적 변화를 맞이한 흑인 모델들의 활약은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결정적 장면으로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존재 자체만으로 독보적 아름다움을 지닌 ‘흑진주’, 이들의 거침없는 질주는 이제 막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