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퍼렐 윌리엄스, 피카소, 이브 생 로랑 '천재 아티스트'들의 공통 DNA

패션과 예술은 언제나 서로를 비추며 또 다른 창조의 언어가 됐다.

프로필 by 박기호 2025.11.04

패션과 예술은 언제나 서로를 닮았다. 한쪽은 몸 위의 조형을 만들고, 다른 한쪽은 마음의 형상을 그린다. 그러나 경계는 생각보다 희미하다. 패션도 예술처럼 세상을 해석하고 감각을 기록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디자이너와 예술가들은 긴밀한 우정을 쌓아왔고, 그들의 교류는 또 다른 패션을 탄생시켰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지만 결국 같은 감각으로 소통하는, 패션과 예술의 오랜 대화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 오래된 대화의 첫 장은 지난 세기 파리에서 시작됐다. 1930년대의 파리, 엘사 스키아파렐리와 살바도르 달리는 예술과 패션의 경계를 허문 친구였다.


이브 생 로랑이 몬드리안의 작품에서 영감받아 탄생시킨 컬렉션.

이브 생 로랑이 몬드리안의 작품에서 영감받아 탄생시킨 컬렉션.

달리가 직접 그린 로브스터는 드레스 위의 프린트로 등장했고, 구두 모자라는 초현실주의 유머를 옷으로 옮겼다. 그들의 협업은 패션을 ‘입을 수 있는 예술’로 확장시킨 혁신적인 시도였다. 같은 시대의 코코 샤넬과 파블로 피카소 역시 파리 예술계의 절친이었다. 서로의 세계를 존중하며 교류하던 두 사람은 의상과 무대, 예술과 사회를 넘나드는 새로운 감각을 공유했다. 샤넬의 미니멀한 감성은 피카소의 선과 색채 속에서 빛났고, 그들의 관계는 예술가 서클과 패션 하우스가 문화적으로 융합된 첫 세대를 상징했다. 이어 이브 생 로랑은 몬드리안의 추상화를 미니드레스에 옮겨 놓으며 예술을 실용적인 아름다움으로 번역하는 데 몰두하고, 앤디 워홀은 다양한 디자이너와 협업하며 예술을 패션 언어로 확장했다. 시간이 흘러 오늘날의 패션은 예술과의 협업을 하나의 언어로 사용한다.


음악가이자 디자이너인 퍼렐 윌리엄스는 크리에이티브 플랫폼 ‘버지니아(Virginia)’를 설립해 음악과 패션, 디자인이 교차하는 다목적 공간을 열었다. 그에게 협업은 단순한 마케팅이 아니라 예술적 대화를 이어가는 방식이다. 메종 마르지엘라는 최근 ‘라인 넘버링 시스템’의 비어 있던 숫자 ‘2’를 꺼내 새로운 협업의 장으로 삼았다. 첫 무대는 서울이었다. 비주얼 아티스트 정희민과 사운드 아티스트 조율이 참여한 설치미술 작품 ‘Elsewhere, Rhema, Open Torso’는 ‘기억’과 ‘변화’를 주제로 패션을 감각적 경험으로 확장시켰다. 이번 프로젝트는 글로벌 패션 하우스와 아시아 예술이 만나는 새로운 교차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또 다른 형태의 협업으로는 마크 제이콥스와 소피아 코폴라가 있다. 1990년대 뉴욕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의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소피아는 그의 향수 캠페인 모델로 등장했으며,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Marc by Sofia>를 선보였다.


쿠도 츠카사가 발행한 사진집.

쿠도 츠카사가 발행한 사진집.

메종 마르지엘라가 설치미술 전시를 선보였던 서울 스토어.

메종 마르지엘라가 설치미술 전시를 선보였던 서울 스토어.

마크의 작업세계를 통해 패션과 예술, 대중문화를 탐구하는 영화는 서로의 세계를 비추는 거울처럼 우정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디자이너 스스로 예술가로 확장되기도 한다. 일본의 쿠도 츠카사는 자신의 사진집을 출간하고 출판 레이블을 직접 운영하며 창작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패션에서 다져온 예리한 시선은 그의 사진 속 인물과 의복, 그 너머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비춘다. 이밖에도 로크의 디자이너 황록은 이번 컬렉션에서 도예가 루시 리와 손잡고 브랜드의 세계관을 구체화했다. MSGM의 마시모 조르게티 역시 밀란의 신흥 예술가들과 긴밀히 협업하며, 1회성이 아닌 지속 가능한 파트너십으로 관계를 발전시켰다. 이렇듯 과거의 우정에서 시작된 예술과 패션의 만남은 오늘날 전 세계적 창작 생태계로 진화했다.


서로 다른 영역이 만나 탄생하는 새로운 시도들은 패션이 단지 옷을 만드는 산업이 아니라 예술 그 자체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의 패션은 예술가와 함께, 때로는 스스로 예술가가 되어 미래를 그린다. 이 오랜 대화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고 즐겁게 할지, 그 답을 기다리는 일은 여전히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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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박기호
  • 아트 디자이너 강연수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