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저링: 마지막 의식'에 있는 것과 없는 것
마지막까지 따뜻했던 '슈퍼 히어로', 워렌 부부와의 작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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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컨저링> 시리즈의 도식은 단순합니다. 세상에 과학이나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이 발생하고 사람들은 공포에 빠집니다. 그러다가 종국엔 이런 현상을 조사하고 해결해 온 전문가, 워렌 부부를 찾아가죠. 남편 에드워드(패트릭 윌슨)는 퇴마 의식을 할 수 있고, 아내 로레인(베라 파미가)은 영 능력을 지녔어요. 이들은 한창 현역에서 활동하다가 대학에서 강연을 하는 중입니다. 부부가 '이제 사건을 맡지 않겠다'고 선언한 건 악한 존재와 마주하며 얻은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위협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후로도 새로운 현상 때문에 다시 부름을 받게 되면, 부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고만 온다'면서 끝내 악령 탓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고 맙니다.

이 도식은 단순하지만 강렬하고 지속 가능합니다. 2013년 <컨저링>을 시작으로 <더 넌>과 <애나벨> 시리즈 등 실존 인물인 워렌 부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는 작품이 12년 동안 8편이나 나왔고, '컨저링 유니버스'가 형성됐습니다. 이 세계관 속 워렌 부부는 정의롭고 정도 많은데 악령까지 퇴치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존재예요. 어쨌든 인간이라 고통은 겪지만 이들은 '컨저링 유니버스'의 슈퍼 히어로입니다. 반면 무작위로 인간의 영혼을 탐하는 서양식 악령은 감정을 이입할 여지도 없는 '절대악'입니다. 주로 원한에 따라 움직이는 한국 귀신과 다르게 말이죠. 이 간단한 선악 구도에 가족애를 입힌 이야기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건 알기 쉬워서 매력적입니다.
<컨저링> 시리즈 네 번째 영화이자 '컨저링 유니버스'의 아홉 번째 작품인 <컨저링: 마지막 의식>이 개봉했습니다. 하지만 이 세계관 자체가 끝나는 건 아닌 듯합니다. 뉴 라인 시네마 CCO 리처드 브레너는 올해 할리우드 리포터에 이번 영화로 '컨저링 유니버스'는 'Phase 1'의 막을 내렸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거든요. 'Phase 2'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죠.

그래서인지 <컨저링: 마지막 의식>은 이 거대한 세계관을 열어 젖힌 시리즈의 최종장에 예우를 갖춥니다. '컨저링 유니버스'에 등장한 온갖 악한 존재들이 반갑지 않은데 반가운 이스터 에그로 나타나고요. <컨저링> 1편부터 3편까지, 시리즈와 함께 성장했던 부부의 딸 주디(미아 톰린슨)가 어느새 다 커서 남자친구 토니(벤 하디)를 데려오기도 하죠. 어느덧 희끗해진 머리의 에드워드와 로레인이 진짜 은퇴를 준비하는 분위기가 호러 영화 치고는 온화하기까지 합니다.
영화는 지난 세 작품 내내 워렌 부부를 괴롭혔던 저주의 시작과 끝을 다룹니다. 시간적 배경은 1986년인데요. 극 중에선 워렌 부부가 사건을 기록한 마지막 해입니다. 실제로는 <컨저링: 마지막 의식>의 원작이 된 책 'The Haunted: One Family’s Nightmare'가 발간된 연도이기도 하죠. 책에는 자신의 집에 들어온 사악한 존재 때문에 고통받는다고 주장한 스멀 가족의 케이스가 담겼고, 영화에 이 이야기가 반영됐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은퇴하기로 결심한 워렌 부부가 결국 다시 사건에 개입하게 된 계기는 196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로레인이 주디를 임신했을 때 사건을 조사하다가 접하게 된 '거울 악령'은 줄곧 워렌 가족 주위를 배회하고 있었는데요. 22년 후인 1986년 스멀 가족 사건에서 이 악령과 다시 만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워렌 부부가 스멀 가족을 돕기로 한 건 일종의 '결자해지' 같은 거죠.
'컨저링 유니버스'의 악마 혹은 악령들은 진짜 존재를 밝히는 것으로 소멸에 가까워집니다. 인식하는 자가 '있다'면 '있는 것'이고 '없다'면 '없는 것'입니다. 사물이 아닌 사람에 깃들고, 사람의 불안으로 힘을 얻습니다. <컨저링: 마지막 의식>은 이 설정들을 정리하고 공고히 하는 것으로 최종장으로서의 소임을 다합니다.
영화는 워렌 부부, 그리고 한 시리즈와의 작별을 성공적으로 그려냈습니다. '다음'을 도모하기에도 나쁘지 않은 마지막이었죠. 그러나 '컨저링 유니버스' 사상 가장 강력한 악령이라는 '거울 악령'의 임팩트는 부족합니다. <더 넌>의 발락과 <애나벨>의 인형처럼 물리적 타격이나 낭자한 유혈이 <컨저링> 스타일의 공포는 아닐 거예요. 다만 지난 세 편의 시리즈와 같은 공식, 비슷한 형태의 악령에 '사상 최강'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긴 아쉽습니다. 그래서 <컨저링: 마지막 의식>에 있던 건 깔끔한 '마지막 의식'이었고, 없던 건 진짜 강력하고 정교하게 설계된 악의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이런 결말은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서운 영화'라는 초심과 가까운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Credit
- 에디터 라효진
-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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