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하비 사막에서 입고 먹고 자는것까지 모두 셀프입니다
안드레아 지텔은 일상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직접 설계하며 자급자족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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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 지텔은 미국 모하비 사막 한가운데에서 반려견과 함께 살아간다. 외부로부터 고립된 그곳은 그녀에게 집이자 작업실이고, 실험실이자 삶의 무대다. “삶은 통제할 수 없고, 지극히 복잡하며, 아주 어지럽고 거대한 작품이에요. 그 안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발명하고, 주변 세계를 새롭게 만들어가죠.” 삶 자체를 하나의 예술로 삼은 지텔은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삶의 방식을 전복시킨다. 공간, 가구, 의복, 생활 시스템 등 일상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필요에 따라 직접 설계하고, 실제 생활에 적용하며, 자급자족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그 과정은 사회가 설정한 가치와 규범, 신념 체계를 되짚고, 더 유연하고 자율적인 삶의 가능성을 탐색하게 한다.
1990년대 초, 스스로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무엇일까?’ ‘자유란 무엇이고 구조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자주 던졌습니다. 답을 구했나요
여전히 살면서 반복적으로 떠올리는 질문이에요. 완전한 답은 없겠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 의미는 분명 달라졌어요. 특히 ‘자유’는 제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예요. 젊었을 땐 자유를 권위적인 시스템을 회피할 수 있는 능력이라 여겼지만 부모가 되고 나서는 다른 관점을 갖게 됐죠. 우리는 서로 얽히고, 책임을 지며 살아가니까요. 이제 자유는 성공이나 정체성, 심지어 안전까지도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삶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은 안드레아 지텔 작업의 근간을 이룹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늘 ‘집’이 있고요. 집을 실험 장소이자 탐구 대상으로 삼게 된 계기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라는 의문은 자연스럽게 우리가 속한 사회의 가치 체계나 생활방식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어요.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직접적으로 실험해 볼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집’이었죠. 공공 공간처럼 외부 권력이 개입하지 않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율적인 장소잖아요. 집을 통해 새로운 삶의 방식을 상상하고 실천해 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Planar Pavilions at A-Z West’(2017).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작은 가게에서 예술과 삶을 본격적으로 연결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The A-Z’ 프로젝트의 출발점이기도 했죠
대학원을 막 졸업하고 약 6평 남짓한 가게를 작업실 겸 주거 공간으로 쓰기 시작했어요. 그 건물 이름이 바로 ‘The A-Z’였어요. 뉴욕은 당시 경기 불황으로 예술계도 침체돼 있었고, 갤러리들도 문을 닫아 존경하는 작가들조차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찾던 시기였어요. 그런 환경에서 저는 예술가로서 예측 불가능한 삶 속에 휘둘리지 않는, 자율성을 지키는 방법을 고민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고 일하면서 제 삶 전체가 하나의 작업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어요. 문을 열고 초대장을 보내기만 하면 전시장이 될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The A-Z’ 프로젝트가 시작됐고, 나중엔 근처 3층 건물을 구입해 1층은 삶의 방식을 실험하는 쇼룸으로, 위층은 주거와 작업 공간으로 사용했어요. 이때부터 저에게 작업은 삶과 분리할 수 없는 것이 됐죠.
이후 ‘The A-Z’ 프로젝트는 캘리포니아 고산지대의 ‘A-Z West’로 이어졌습니다. 처음엔 약 6000평의 땅에 작은 오두막 하나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약 9만7천 평 규모의 거대한 프로젝트로 확장됐습니다. 이곳에서는 어떤 삶의 실험들이 이루어졌는지
아주 실험적이고 철학적인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상과 현실 사이를 넘나드는 복잡한 여정이었고 또 이상주의와 실용주의 사이에서 계속 줄타기를 해야 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실험들이 저에게는 늘 도전적이었고 깊은 만족을 주는 작업이었어요. 일련의 시도들은 모두 ‘삶의 작업(life work)’이었죠.
캘리포니아 남부의 작은 농촌 마을에서 보낸 유년 시절이 서부를 예술의 무대로 삼는 데 영향을 미쳤을까요
맞아요. ‘A-Z West’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농장에서 조부모님이 자급자족하며 살았고, 저도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냈어요. 넓은 밭으로 둘러싸인 집 뒤에는 기계와 연료 탱크가 있어 마을에 나가지 않고도 생활이 가능했고, 물은 관개용 수로에서 끌어 썼죠. 할머니와 말을 타고 사막 트레일을 다니기도 했어요. 조부모님은 외딴 농장도 운영했는데, 공학도였던 할아버지는 비행기로 이동하며 시간을 아꼈어요. 할머니는 시와 소설을 쓰며 그림을 그렸고, 책과 여행을 통해 외부 세계와 연결돼 있었죠. 고립된 삶과 열린 세계를 동시에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큰 영감을 받았고, 저 역시 그런 삶을 꿈꾸게 됐습니다.

‘A-Z Wagon Stations: Second Generation’(2012~Present).
‘A-Z West’ 프로젝트 중 ‘Wagon Station Encampment’는 각기 독립된 공간이면서도 공용 시설을 함께 사용하는 구조입니다. 자율성과 공동체가 나란히 존재하는 구조는 고립된 삶과 열린 세계를 동시에 담아내려는 시도였나요
당시 ‘High Desert Test Sites’ 프로젝트를 운영하며 아티스트들이 사막에 머물 공간이 필요했어요. 지역 건축 규제가 복잡했기에 허가 없이 지을 수 있는 이동 가능한 구조물을 고안했고, 면적 3x3m 크기의 간단한 유닛을 만들었어요. 형태는 서부개척시대의 마차에서, 이름은 어릴 적 자주 타고 다니던 스테이션 왜건에서 착안했죠. 바위로 둘러싸인 아름답고 조용한 장소에 야외 주방과 욕실을 갖춰 입주자들이 자원을 나누며 지낼 수 있도록 했어요. 후에 이곳은 레지던시로 발전했고 그곳에서 함께 지내기 위한 규칙과 시스템도 마련했죠. 그 시스템 역시 구조물만큼 중요한 예술적 실천의 하나였어요.
‘시스템’이라는 개념도 결국 삶의 방식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출발한, 하나의 예술적 결과물로 볼 수 있을까요
맞아요. 저는 물리적 구조보다 심리적 구조에 더 관심이 많아요. 새로운 시스템은 제 삶에서 느껴지는 ‘어떤 필요’에 의해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필요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구체적으로 파고들고, 이를 해결하는 방식이 새로운 시스템이 되죠.

‘Planar Configuration(Wonder Valley Experimental Living Cabin #1)’(2016).
‘필요’를 구체화하는 과정은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한다면
가령 거실에 쓸 소파가 필요할 때 저는 먼저 이렇게 묻죠. ‘왜 나는 가구가 필요하지? 그냥 바닥에 앉으면 안 될까?’ 그렇게 질문하다 보면, 바닥만으로 충분할 수 있겠다는 결론에 도달해요. 그런 고민 끝에 탄생한 것이 ‘A-Z Carpet Furniture’예요. 또 어떤 경우엔 바닥이 더러워지는 환경이라 약간 높고, 몸을 감싸줄 구조물이 필요했는데, 쿠션 있는 가구를 만드는 기술이 없어서 폼을 조각해 만든 것이 ‘Raugh Furniture’였죠.
앞선 사례와 마찬가지로 ‘Planar Configurations’에는 거주 활동을 위한 구획을 정의하는 시스템이 담겨 있습니다. 이는 어떤 공간 개념을 탐구한 건가요
작업으로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것들에 대해 ‘왜 그런가’를 묻고 싶었어요. ‘Planar Configurations’는 사막의 외딴 오두막을 위해 만든 구조물이에요. 자고, 먹고, 쉬고, 어울리는 데 필요한 모든 기능을 담고 있죠.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가구와는 전혀 달라요. 기하학적 구조 안에 각 활동을 위한 다양한 표면이 배치돼 있었죠. 전통적인 거주 공간의 구획 방식에 의문을 던지고, 그렇게 정의하는 방식 자체를 새롭게 보려고 했습니다. 집과 거주 활동에 대한 관념을 재조명한 것이죠.

‘A-Z Management and Maintenance Unit: Model 003 (large)’, (1992).
예술과 삶의 경계가 흐릿한 삶을 지속한다는 건, 그 자체로 하나의 살아 있는 설치미술 작업 같기도 해요. 이런 방식은 심리적으로도 깊은 영향을 미쳤을 것 같아요
처음엔 제 삶을 작업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주 순수하게 느껴졌어요. 삶이 곧 예술이고, 예술이 곧 삶이었죠. 모든 행위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순환 구조였고, 제 작업을 퍼포먼스가 아니라 ‘구현된 삶’으로 받아들였어요. 예술과 삶을 통합한 지 10년쯤 지나면서 점점 복잡해졌어요. 2004~2005년 무렵 ‘A-Z West’를 찾는 방문자가 너무 많아서 결국 공개 투어를 운영하게 됐어요. 그때부터 집을 늘 깨끗하게 유지해야 했고, 제 삶이 항상 전시되고 있다는 압박감이 커졌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삶이 예술을 더 현실적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예술이 내 삶을 더 비현실적으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그 후 결국 ‘A-Z West’를 떠났고, 지금은 공개되지 않는 집에서 지내고 있어요.
현재 모하비 사막 근처에서 거주하며 조각과 드로잉, 회화, 비디오, 텍스타일, 설치미술 작업을 통해 삶에 대한 실험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곳의 일상은 어떤가요
약 3년 전 ‘A-Z West’에서 몇 마일 떨어진 작은 집으로 거처를 옮겼어요. 아침에 반려견과 산책하고, 스튜디오에 들어가기 전까지 독서나 글쓰기를 해요. 가끔 명상도 하고요. 최근 몇 년간 매우 사적이고 고요한 생활을 이어가면서 어시스턴트 없이 혼자 작업하고 있습니다. 간혹 마을로 나가거나 ‘A-Z West’에 들러 운영을 돕기도 하죠. 고립된 생활은 평온함과 생산성을 동시에 가져다줍니다.

‘A-Z Aggregated Stacks’, (2010) .
올해 9월, 베를린의 스프루스 마거스(Spru..th Magers) 갤러리에서 열릴 개인전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아직 초기 단계인 걸로 아는데 어떤 주제를 탐구하고 있나요
최근에는 ‘공적 삶과 사적 삶의 경계’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이는 ‘A-Z West’에서 한 걸음 물러나게 된 개인적인 이유이기도 하고, 현재의 제 삶과 마주하는 문제이기도 해요. 최근 작업은 이전보다 더 개념적이고 간결해졌어요. 공공의 자리에서 우리가 어떻게 ‘자신을 연기하는가’라는 주제로 작업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이후에는 이에 대응하는 형태로, 사적 영역을 다룬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에요.
Credit
- 에디터 권아름
- 아트 디자이너 이유미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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