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민 캐릭터의 창시자 토베 얀손과 외딴섬 이야기
매혹적인 스토리텔러, 무민 스토리를 창조한 토베 얀손의 오아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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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섬 클로브하루에서 화관을 쓴 토베 얀손.

1970년경 이른 아침, 항구에서 나가는 토베 얀손과 그녀의 파트너 툴리키 피에틸레.
“나는 돌을 사랑해요. 바다로 곧장 떨어지는 절벽, 오르기에 너무 가파른 바위 언덕, 주머니 속의 자갈, 땅에서 돌을 들어 올린 다음 가장 큰 돌을 언덕 아래로 굴려 바다로 떨어뜨리는 것 역시!” 올해로 80주년을 맞은 무민 스토리의 작가 토베 얀손은 파트너 툴리키 피에틸레(Tuulikki Pietilä)와 함께 거의 30년 동안 여름이면 핀란드의 군도 클로브하루(Klovharu)로 갔다. 얀손이 이 섬에 별장을 지은 것은 1964년의 일. 매해 토베와 툴리키는 5월 중 섬에 와서 낚시하고 일하고 파티를 즐긴 뒤, 9월이면 다시 섬을 떠났다.


나무 창고를 만들기 위해 작업 중인 툴리키 피에틸레.
클로브하루의 이야기는 토베 얀손의 책 <The Summer Book>(1972), <Notes From an Island>(1996)에도 등장한다. 바다 한가운데 나무가 없는 작은 섬. 무서울 정도로 외딴 군도에 여름 별장을 짓는 건 핀란드인에게도 생소한 일이다. 클로브하루는 면적이 약 6000㎡로 매우 작고 고립된 섬이었다. 토베의 오두막은 1964년 늦여름에 첫 삽을 떴고, 이듬해 봄까지 지어 1965년 7월에 완공됐다.

핀란드의 군도인 클로브하루.

토베 얀손이 그린 클로브하루와 오두막 스케치.
이곳 설계에 참여한 건축가 레이마 피에틸레(Reima Pietilä)는 오두막에 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들은 처음부터 작은 공간의 쓰임새를 정확히 논의하고 싶어 했고, 손수건을 포함한 특정 물건을 둘 장소에 대해 건축가와 논의할 정도로 세심하게 조율했습니다. 검은색 천장을 포함한 색상은 모두 토베의 바람에 따른 겁니다.” 오두막은 섬의 가장 높은 지점보다 약간 아래에 자리 잡았다. 토베가 늦가을에 섬에 설치한 텐트에 머물며 집을 지을 적합한 장소를 찾던 중 그 위치를 발견했다.

토베 얀손이 클로브하루에 관해 쓴 메모.

오두막의 위치를 정하기 앞서 토베 얀손은 섬에서 캠핑하며 적당한 자리를 찾았다. 선택된 위치는 나무가 없는 섬의 가장 높은 지점 바로 아래였다.

군도의 바다를 만끽하는 토베.
“폭풍과 겨울이 지난 후 빗물이 모이는 꽤 커다란 수영장도 있었습니다. 씻고 수영할 수 있는 곳이었죠. 오두막은 목조로 지었어요. 이 섬에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이라고 생각했죠. 오두막 지하실에는 핀란드인에게 꼭 필요한 작은 사우나도 꾸렸습니다. 별장 남쪽으로는 아름답고 매끄러운 해안 바위가, 북쪽에는 더 험준한 지형이 펼쳐졌죠.” 얀손과 피에틸레는 여름마다 이곳에서 많은 것을 했다. 함께 바위 웅덩이에 발을 담근 뒤 섬을 돌아다니고, 화관을 쓴 채 거친 파도 속으로 뛰어들고, 작은 원탁에 나란히 앉아 초를 켜고 각자 책을 읽었다. 책장에는 대부분 섬과 바다에 대한 책이 있었다.

토베 얀손과 라르스 얀손(Lars Jansson).
얀손이 글을 쓰면 피에틸레는 그림을 그리거나 8mm 카메라로 필름 촬영을 하기도 했다. 딱딱한 빵과 버터, 치즈, 생선, 통조림 등으로 단출한 식사를 만들어 먹었다. 이곳에서 토베 얀손은 온화하고 교양 있고 황홀한 자연의 아이가 되길 자처했다. 얀손과 그의 연인은 클로브하루에서 스스로를 먹이고 살리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나무를 자르고, 불을 피우고, 배를 저으며, 물고기 껍질을 벗겼다. 건축 작업도 했다. 코티지 앞에 바비큐처럼 생긴 나무 창고가 토베와 툴리키가 직접 지은 것이었다. 심지어 섬의 가장 높은 지점에서 감자 재배를 시도한 적도 있다. 물론 혹독한 기후와 폭풍 탓에 작농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핀란드 건축박물관 기록보관소에 있는 클로브하루 코티지의 설계도.

읽다 보면 꽤 파국적인 무민의 모험에서 토베 얀손이 묘사하는 자연은 다른 작가들과 사뭇 결이 다르다. 무민 스토리의 캐릭터들은 자연이 가진 맹렬한 힘에 사로잡힌다. 전쟁과 숲, 화재와 홍수, 거센 눈보라 등이 언급되는 무민 스토리는 수많은 자연재해가 이야기의 동력이 된다. 폭풍과 홍수와 눈으로 황폐해진 자리, 순간적인 고요함, 바람에 휘날리는 눈, 파도처럼 솟아오르는 절벽, 바위처럼 보이는 파도, 바람과 바다에 공명하는 등장인물까지. 매해 로빈슨 크루소의 삶을 찾아 험준한 지형의 외딴섬으로 흘러간 두 사람이 오랜 시간 그곳에서 찾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초록의 식물은 물론이고 흐르는 물과 전기도 없던 이곳을 토베 얀손은 자신의 위안으로 여겼다. 사생활이 보장되고 철저히 고립될 수 있지만 울타리가 필요 없는 외딴섬의 작은 집은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친밀감으로 가득한 곳이지 않았을까.


서향으로 설계된 내부. 방명록이 있는 왼쪽 탁자가 툴리키의 작업대였다. 토베의 작업대는 오른쪽 창문 옆에 있다.
클로브하루의 오두막은 예술가이자 작가인 토베 얀손의 독창성과 그녀의 인간적 존재감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토베가 <무민파파와 바다>에서 그린 등대처럼 클로브하루의 오두막 한편에는 사방으로 창문이 난 방이 있다. 토베와 피에틸레는 360°에서 지평선을 바라보고 바람과 폭풍이 오가는 것을 바라보곤 했다. 그리고 그들은 섬에서 보낸 많은 시간을 8mm 필름에 담았다. 영상은 훗날 루미필름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하루, 외로운 사람들의 섬>으로 선보였고, 클로브하루의 오두막은 1995년 펠린지 헤리티지 어소시에이션에 기증됐다. 현재 이곳은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Credit
- 에디터 이경진
- 아트 디자이너 이유미
- 디지털 디자이너 민홍주
- COURTESY OF MOOMIN.COM·ESTATE OF TOVE JANSSON·RAILI PIETILÄ·ARCHITECTURE & DESIGN MUSEUM HELSIN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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