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느낌 좋은 공간을 만드는 디자이너는 누구?
공간의 분위기를 디자인하는 '오피스 조현석'의 조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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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앙(Nohant)의 플래그십 스토어. 브랜드가 전개하고 있는 옷에서 발견할 수 있는 ‘위트’를 공간에도 반영하려고 했다.
JO HYUN SEOK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 ‘플랏엠’에 몸담았다가 2019년에 독립했다. ‘오피스 조현석’의 시작과 방향성은
특별한 계기는 없었던 것 같고, 누구나 그렇듯 불확실성 속에서 일을 시작했다. 생각이나 태도가 굳어지는 것을 경계하고 다양한 방향으로 유연하게 흐르게 하는 데 관심이 있다. 하늘에 별을 흩뿌린다고 생각하며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10년쯤 지나 하늘을 올려다보면 별자리 하나쯤은 그려져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땐 사무실의 방향성에 대해 좀 더 쉽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해 여름 프리츠한센 주최로 열린 <Poul Kjærholm> 전시. 폴 케홀름의 디자인 언어와 태도를 반영해 그의 가구와 전시공간이 서로 닮아 있도록 조율했다.
이베이나 빈티지 쇼룸을 통해 꾸준히 빈티지 가구를 수집해 온 것으로 안다. 이런 디자인적 유산이 조현석의 미감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줬을까
직업으로서 디자이너이기 전에 건축과 가구의 열렬한 팬이었다. 나와 어울리는 가구를 찾고 수집하는 여정을 계속하는 건 일과 관계없이 개인적으로 큰 즐거움을 느끼는 일이다. 물론 좋아하는 가구를 곁에 두고 체득하면서 얻는 경험은 디자이너로서 새로운 지식과 영감을 얻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식물의취향’ 박기철 대표의 집. 의뢰 메일에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집에 살고 싶다’는 문장에 이끌려 시작한 프로젝트다.
디자이너로서 공간을 다룰 때 염두에 두는 것은
주어진 공간의 모든 가능성을 검토한다. 일의 특성상 완전한 백지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개인적으로도 ‘순수한 백지 상태’에서 출발하는 작업에는 큰 관심이 없다. 오히려 주어진 공간과 현실적 조건, 다양한 제약 속에서 최선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선택하는 과정이 나에겐 가장 고단한 동시에 흥미로운 지점이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고, 실현 가능한 방법을 실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특정 원칙이나 기준은 없다. 그렇지만 기본에 충실한 태도는 언제나 잊지 않는다.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요소들을 섬세하게 제거해 브랜드가 선명하게 보이는 순수한 공간으로 구성한 논픽션 신사와 논픽션 한남.
조현석의 공간에선 어떤 분위기가 느껴진다. 차분하고 감각적이며, 내가 서 있는 장소 그 자체를 기분 좋게 인식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공간의 분위기를 만드는 데 특별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압도적이지 않으면서 조용하고 소박하며,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선호한다. 공간의 분위기엔 여러 요소가 종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재료나 소리, 색, 질감, 형태, 사물 등이 제자리에서 고유한 목소리를 내지만 이런 개별적 요소가 있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이것들이 균형감 있게 조율되고, 일관성 있게 하나의 흐름을 형성할 때 비로소 공간은 고유의 분위기를 띠게 된다. 즉 물질적 요소들의 나열이 아니라 요소요소를 섬세하게 엮어 하나의 덩어리를 만들 때 비물질적인 ‘분위기’가 탄생하는 것 아닐까?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요소들을 섬세하게 제거해 브랜드가 선명하게 보이는 순수한 공간으로 구성한 논픽션 신사와 논픽션 한남.
다양한 재료의 물성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동시에 군더더기 없는 마감 처리로 차분한 인상의 공간을 만든다. 선호하는 재료의 조합이 있나? 작업할 때 디테일에 어느 정도 비중을 두는지도 궁금하다
재료는 가능하면 다양하게 사용해 보려고 노력한다. 특정 재료의 조합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 재료가 가진 고유한 속성에 집중해서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주 사용하는 재료는 목재, 금속, 유리, 페인트 정도다. 이처럼 평범한 재료로 평범한 어휘의 디테일을 활용하는 것을 즐긴다. 디테일은 공간을 만드는 과정에서 필수지만,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는 않는다. 다만 반대로 개별적인 디테일이 공간 전체를 이해하는 단서가 될 때도 있다. 경우에 따라 디테일에 공간을 대하는 태도를 새겨 넣기도 한다.

소재의 힘과 균형에 대한 탐구를 물리적·시각적으로 보여주려 한 S23A 알루미늄 가구 시리즈.
개인적으로 조현석의 가구에서 눈에 띄는 점 중 하나는 프레임이다. 가구 본연의 형상을 강조할 뿐 아니라, 부분과 부분 또는 서로 다른 재료가 만나면서 형성되는 경계를 보여주는 것 같다. 가구의 형상을 결정할 때 무엇을 중요하게 고려하나
가구를 디자인하는 것은 공간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공간 속의 또 다른 세계를 구축하는 일에 흥미를 느낀다. 가구를 디자인할 때도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과 유사한 태도로 작업한다. 가구에서 프레임이 강조되는 걸 인지하진 못했지만, 듣고 보니 흥미롭다. 최대한 정직한 방식으로 디테일을 풀어내려고 한다. 이를테면 소재의 두께나 결합 방식, 순서, 접합부의 구조 등을 감추려 하지 않고 이런 요소들이 순수하게 드러나도록 하는 편이다.

무대나 전시 부스에 사용되는 기성 트러스 구조물을 공간 중심에 행거로 배치해 브랜드의 실험적 태도와 독창적 시선을 제시한 혜인서 플래그십 스토어.
프리츠한센과 함께 프리츠한센 150주년 기념전 <영원한 아름다움 Shaping the Extraordinary>과 디자이너 폴 케홀름을 회고하는 전시 <폴 케홀름 Poul Kjærholm>의 공간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두 전시의 기획을 맡은 아넥스(Annex)의 정교한 기획 덕분에 전시공간 디자인 경험은 전무하지만 비교적 수월하게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 평소 공간을 대하는 방식과 관점이 전시공간에서도 유효하다는 걸 확인하는 유용한 경험이었다. 공간을 다룰 때 익명성을 만드는 것에 대한 관심이 있었는데, 전시 디자인을 통해 이런 익명적 성격의 공간 구성이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할 수 있다는 걸 실제로 경험했다.

크리에이티브 콜렉티브 CLT의 사진 스튜디오. 촬영에 필요한 기능을 갖춘 박스형 구조물을 내부 공간에 삽입해 독립적인 영역을 만들었다. 독립된 박스는 기존 공간과 명확히 구분되면서 기능적으로 연결된다.
수많은 공간과 디자이너들 틈에서 고유함을 지키는 비결을 공유한다면
비결이라고 하면 거창하고, 다만 아름다운 것들을 곁에 두려고 한다. 일상에 쉽게 영향을 받는 편이어서 눈에 들어오는, 손에 닿는 것들은 가능하면 아름다운 것으로 채우고 싶은 욕심이 있다. 꿈을 묻는 말에 “꿈은 없다”며 하루살이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재미없는 대답만 해왔다. 하루하루를 아름답게 보내고 싶은 바람에서 나온 대답은 아닐는지. 이렇게 소박하지만 큰 꿈이 나와 주변 그리고 내 작업을 아름답게 만들어줄 것으로 기대한다.
Credit
- 에디터 윤정훈
- 사진 안상미
- 아트 디자이너 김강아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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