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건축으로 지구를 구하는 '그린' 아키텍처의 세계

안드레스 자크에게 건축이란 지속 가능성을 위한 최적의 도구다.

프로필 by 윤정훈 2025.03.12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레그히오 초등학교. 독특한 질감을 자아내는 노란색 코르크는 유기 물질이 표면에 정착할 수 있는 특수 외장재다.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레그히오 초등학교. 독특한 질감을 자아내는 노란색 코르크는 유기 물질이 표면에 정착할 수 있는 특수 외장재다.

건축가 안드레스 자크는 건축을 통해 더 나은 세상으로 향하는 문을 낸다. 스페인에서 나고 자란 그는 마드리드와 뉴욕에 ‘정치 혁신 사무소(Office for Political Innovation)’라는 이름의 건축 디자인 스튜디오를 두고 여러 도시를 오가며 지속 가능한 건축의 표본을 새로 쓰고 있다. ‘2024 유네스코 지속 가능 건축상(2024 UNESCO Global Award for Sustainable Architecture)’ 수상자인 그가 실현하는 지속 가능한 공간은 보통의 기대치를 뛰어넘는다. 단순히 친환경 자재를 쓰거나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건축과 사람을 둘러싼 복잡한 이슈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독창적이고 재기 발랄한 공간을 선보인다. 안드레스 자크가 초대하는 친근하고 심오한 그린 아키텍처의 세계.

도시화로 황폐화된 교외 지역, 본래의 계곡 지형을 복원하고 그 위에 지은 ‘람블라 기후 하우스’. 가운데 정원을 둘러싸고 타원형으로 디자인된 주택은 자연이 회복돼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관측소다.

도시화로 황폐화된 교외 지역, 본래의 계곡 지형을 복원하고 그 위에 지은 ‘람블라 기후 하우스’. 가운데 정원을 둘러싸고 타원형으로 디자인된 주택은 자연이 회복돼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관측소다.


안드레스 자크에게 건축이란 지속 가능성을 위한 최적의 도구 같아요. 건축을 통해 환경에 대한 인식을 환기하고, 나아가 구체적 해결책까지 제시해 왔죠

학창시절 제가 받은 건축 교육은 매우 형식적이었어요. 디자인은 스타일의 문제로만 간주됐죠. 하지만 건축은 단순한 조형 작업이 아니라 사회와 생태, 정치 문제를 다룰 수 있는 매체라는 걸 점점 인식하게 됐어요. 쉽게 말해 건축은 페라리 같은 존재인데 시속 40km로만 운행되는 것 같았달까요. 그래서 다른 분야를 탐색하기 시작했어요. 정치생태학·테크놀로지·우주정치학을 다루는 이들을 찾아 나섰고, 과학 철학자 이사벨 스탕제(Isabelle Stengers), 인류학자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 건축학자 알베나 야네바(Albena Yaneva) 같은 연구자들에게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이에 따라 건축이 단순한 공간설계에 그치지 않고 사회와 생태계를 활성화할 수 있다고 믿게 됐죠.


당신의 프로젝트는 지속 가능성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과 연구가 담겨 있지만, 겉모습은 그리 심각해 보이지 않아요. 오히려 어딘가 유쾌하고 호기심을 자아냅니다

공간과 기술이 디자인을 통해 결합했을 때 그것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쉽게 말해 안으로 들어가고 싶게 만들죠. 제 건축은 결코 추상적이지 않아요. 오히려 현실적인 면으로 가득합니다. 이 사회가 지닌 복잡성을 함께 이해하고 나누자는 초대장이라고 생각하며, 이것이 배려의 건축이라고 봐요. 이런 점이 외관을 통해 전달되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MoMA PS1에서 선보인 ‘코스모’. 투명한 호스로 연결된 이 파빌리온은 미세 조류와 식물을 이용한 수질 여과 시스템으로 이뤄진 이동식 정수 장치다.

MoMA PS1에서 선보인 ‘코스모’. 투명한 호스로 연결된 이 파빌리온은 미세 조류와 식물을 이용한 수질 여과 시스템으로 이뤄진 이동식 정수 장치다.

2015년 ‘영 아키텍츠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MoMA PS1에 설치한 ‘코스모(Cosmo)’는 당신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첫인상은 놀이기구 같지만, 실은 뉴욕 시의 물 관리 시스템을 시각화한 정수 시설이라는 점이 흥미로워요

우리는 도시를 작동시키는 큰 흐름을 볼 수 없어요. 예를 들어 파이프가 그렇죠. 우리는 파이프를 숨기려고만 했어요. 결국 이는 전문가의 영역으로 밀려나고, 딱히 이해하거나 논의하지 않는 무언가가 됐죠. 숨겨진 도시 인프라를 드러내 도시 환경과 물을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하게 했어요. 뉴욕 시의 복잡한 파이프 구조를 시각적으로 재구성하고, 관개 시스템을 갖춘 이동 가능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물을 정화하는 수단으로 화학물질, 가열, UV 여과처럼 에너지를 집약한 방식이 아닌 식물을 활용했습니다. 바닥에서 공급된 오염수가 투명한 호스를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중력에 따라 조류 주머니와 잔디 스크러버 등을 거쳐 정화되며 내려갑니다. 정화된 물이 음용 가능한 상태가 되면 그물망이 자동으로 빛을 내죠. 깨끗한 물체를 다루는 건축이 있는가 하면, 제겐 정화된 것과 정화되지 않은 것 모두의 만남을 중재하는 건축이 더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람블라 기후 하우스(Rambla Climate House)’는 환경 문제에 좀 더 적극적인 액션을 취한 프로젝트입니다. 도시화로 파괴된 토착 지형과 생태계를 복원한 주택을 설계했죠

‘람블라(Ramblas)’는 스페인이나 아프리카 남부처럼 건조한 지역에 있는 작은 협곡 지형을 뜻합니다. 1980년대 스페인 무르시아(Murcia) 외곽 지역을 중심으로 대규모 도시화에 따른 토지 평탄화가 이뤄져 지역 생태계가 크게 파괴됐어요. 동료 건축가 미겔 메사 델 카스티요(Miguel Mesa del Castillo)가 형의 가족으로부터 집짓기 의뢰를 받았는데, 이 집을 지역 생태계를 위한 기후 친화적 주택으로 짓기로 했습니다. 생태·토양 전문가들과 협업해 람블라를 복원하는 작업이 선행됐습니다. 집은 들쑥날쑥한 지형 위에 세워졌고, 가운데 정원을 둘러싸고 있어요. 여기에 사이트의 미기후를 감지하고 자동으로 최적화해 생태계 복원을 촉진하는 센서를 설치했습니다. 샤워나 빨래할 때 나오는 생활용수를 모아 정화하고 저장하면 습도가 낮아질 때 자동으로 미스트가 분사됩니다. 이곳의 수분과 온도 환경이 안정화된 지 1년이 지나자 중정에 새로운 존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사라졌던 토착 식물들, 곤충과 새, 토끼 같은 작은 동물이 이곳을 안식처로 삼고 있습니다.


람블라 기후 하우스의 스마트 관계 시스템. 생활용수를 정화해 재활용하는 친환경 미스트로, 생태계 회복에 최적화된 온습도를 자동으로 파악해 작동한다.

람블라 기후 하우스의 스마트 관계 시스템. 생활용수를 정화해 재활용하는 친환경 미스트로, 생태계 회복에 최적화된 온습도를 자동으로 파악해 작동한다.

러닝 클럽을 운영하는 카페 겸 도시형 테크노 농장 ‘런 런 런(Run Run Run)’. 주방과 식사 공간, 신선한 식재료를 조달하는 정원, 러너들을 위한 샤워장을 하나의 생태계처럼 결합해 독특한 컨셉트의 지속 가능한 공간을 완성했다.

러닝 클럽을 운영하는 카페 겸 도시형 테크노 농장 ‘런 런 런(Run Run Run)’. 주방과 식사 공간, 신선한 식재료를 조달하는 정원, 러너들을 위한 샤워장을 하나의 생태계처럼 결합해 독특한 컨셉트의 지속 가능한 공간을 완성했다.

건축과 환경 이면에 놓인 문제를 발견하는 데도 힘써 왔습니다. 202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티타늄을 주제로 한 리서치 설치미술 작품을 선보였어요

티타늄은 세계적으로 광택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물질입니다. 티타늄 산화물이 없었다면 아이폰, 대기업의 고층 건물 외벽이 지금처럼 반짝이지 않았을 거예요. 세계를 깨끗하게 유지하려는 노력은 결국 생물 다양성을 낮췄습니다. 광물이 추출되는 지역을 심각하게 오염시키고, 거주민들의 건강을 해치면서 말이죠. 건축 재료에 대한 실험을 이어간 또 하나의 프로젝트는 마드리드에 있는 초등학교 ‘콜레히오 레그히오(Colegio Reggio)’입니다. 학교 건물 외벽을 다른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장소로 만들었어요.


안드레스 자크.

안드레스 자크.

외벽이 노란 코르크로 덮인 학교 말이죠. 외장재만 친환경이 아니라 안팎으로 아이들에게 환경과 생태계, 에너지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하는 장치를 마련했다고 들었어요

대부분의 건축 외장재는 생물 부착을 방지하는 식으로 설계되지만, 이 학교는 반대로 생물 다양성을 위한 인프라로 역할합니다. 그 코르크 외장재를 개발하는 데만 2년이 걸렸어요. 시공사 바이펙(Vipeq) 연구팀과 함께 다공성 효율이 높은 외장재를 제작해 공기 중 유기 물질이 코르크 표면에 정착하고 다양한 미생물 군집을 형성함으로써 공기 질을 개선하도록 했습니다. 건물 중앙에는 너른 안뜰이 있어 아이들의 친환경 여가 공간이자 교실로 활용됩니다. 이 프로젝트의 경우 비슷한 규모에 사용되는 건축자재를 40%가량 줄였어요. 의도적으로 실내 마감을 최소화했기 때문이죠. 배수구나 덕트와 같은 설비 시설을 그대로 노출해 아이들이 시스템을 인지하고 호기심을 갖게 했어요. 교육은 고립이 아닌 관계를 맺으며 이뤄져야 하며, 이는 비인간 존재를 포함해야 합니다. 이에 보호와 격리보다는 돌봄과 호기심, 개방성을 강조하는 환경을 제공했어요.


탄소 배출 제로 야외 주방 ‘트랜스피시스 키친(Transspecies Kitchen)’.

탄소 배출 제로 야외 주방 ‘트랜스피시스 키친(Transspecies Kitchen)’.

채석 과정에서 다량 폐기되는 대리석으로 만든 조리 시설 겸 식기에 불과 전기 없이 오직 발효로 만든 요리를 담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채석 과정에서 다량 폐기되는 대리석으로 만든 조리 시설 겸 식기에 불과 전기 없이 오직 발효로 만든 요리를 담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인간 이외의 종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한 프로젝트.

인간 이외의 종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한 프로젝트.

당신의 건축물은 보이는 것 이상으로 복잡한 기능을 갖추고 있어요. 지속 가능성의 관점에서 볼 때 현대사회에서 이런 공간은 왜 필요할까요

1990년대까지 건축이 공간을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21세기 건축은 생태계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건축물을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생명체와 풍경, 인프라, 미생물과 상호작용하는 시스템으로 여겨요. 단순히 짓고 마는 건축이 아니라 실행하고 작동하는 건축, 즉 대사 작용을 하며 살아 있는 공간을 지향하죠. 궁극적으로 이런 건축을 통해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허물고, 현대에 걸맞은 지속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Credit

  • 에디터 윤정훈
  • 사진가 JOSÉ HEVIA
  • MIGUEL DE GUZMÁN
  • 아트 디자이너 김강아
  • 디지털 디자이너 정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