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책 볼 맛 나네, 프랑스국립도서관 조명의 재탄생

디에디트 서울에서 만난 도미니크 페로 X 오존 ‘퍼티브’ 컬렉션.

프로필 by 윤정훈 2025.03.11

1989년, 프랑수아 미테랑(François Mitterrand) 대통령은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 ‘그랑 프로제(Grands Projets)’의 일환으로 프랑스국립도서관 설계 공모를 진행했다. 기라성 같은 건축가들을 제치고 당선된 사람은 서른여섯 살의 도미니크 페로. 책을 상징하는 네 개의 거대한 타워로 둘러싸인 프랑스국립도서관은 가장 현대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도서관이라는 목표에 부합했다. 1996년에 지어진 이 도서관 덕분에 도미니크 페로는 세계적 건축가의 반열에 올랐다. 이 기념비적 공간을 위해 디자인된 테이블 조명이 ‘퍼티브(Furtiv)’라는 이름의 컬렉션으로 재탄생했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와 도미니크 페로 건축사무소에서 인테리어와 가구 설계를 총괄하는 가엘 로리오-프레보(Gaëlle Lauriot-Prévost), 프랑스 조명 브랜드 오존(Ozone)의 합작인 이번 시리즈는 건축가의 가구가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공간에 존재하는 조형물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운다. 디에디트 서울에서 도미니크 페로 그리고 가엘 로리오-프레보와 나눈 건축 속 조명, 조명 속 건축에 관한 대화.



두 사람은 동료이자 부부로서 오랜 기간 협력해 왔다. 협업은 언제부터 했나


1989년부터 함께 작업하기 시작했다. 가엘이 1988년 에콜 카몽도(E′cole Camondo)를 졸업한 직후, 런던에서 자하 하디드와 함께 일하며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도미니크 페로 아키텍처에 합류했다. 함께한 첫 프로젝트는 프랑스국립도서관으로, 이때 서로의 전문성과 파트너십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역할을 교차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건축 프로젝트에서 가엘이 아트 디렉터를 맡으면, 인테리어 프로젝트에서는 도미니크가 아트 디렉터를 맡으며 양방향에서 접근하는 방식을 따르고 있다.



많은 사람이 도미니크 페로의 건축을 생각하면 도시의 지형도를 바꾸는 거대한 건물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간의 프로젝트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건물 외형만 아니라 내부 공간과 가구에도 세밀하게 관여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디자인하는 모든 것은 크기와 상관없이 건축과 연결된다. S부터 X, XL, XXL 모두를 포함한다. 가구와 오브제를 건축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은 건축물’로 여기고 디자인한다. 완성도 높은 풍경을 이용자에게 제공하기 위해서다. 특히 금속 직물(Woven Metal)을 건축자재로 개발하는 데 관심이 많아 이 재료를 패션 디자이너처럼 세심하게 다루고, 건축가처럼 견고하게 설치해 왔다. 30여 년에 걸친 금속 직물 디자인 사례와 적용 노하우를 다룬 바이블을 준비 중이다. 올가을 출판을 앞두고 있다.



‘퍼티브’는 프랑스 조명 브랜드 오존(Ozone)과 재해석한 조명 시리즈다. 협업의 계기는? 컬렉션의 원형이 된 도서관 조명은 어떻게 디자인했는지


‘넥스트 도어 커넥션(Next Door Connection)’이랄까(웃음)? 오존의 창립자인 에티엔 구노(Etienne Gounot)와 에릭 얀케(Eric Jähnke)와는 파리 11구에서 알고 지낸 이웃 사이다. 퍼티브 컬렉션은 그들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도서관 열람실에 설치된 테이블 램프의 연장선으로, 넓게 퍼지는 빛을 제공하면서도 눈부심을 유발하는 광원을 종이 시트로 감춘 것이 특징이다. 1993년 당시 조명에 대한 요구사항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A3 크기의 문서를 500럭스의 균일한 조도로 비추고, 책을 보호하기 위해 적외선이나 자외선이 방출되지 않아야 했다. 이에 가능한 한 균일한 빛을 분배하도록 광섬유를 사용한 미니 스타디움 프로젝터 방식으로 설계했다. 단순히 기능적인 조명이 아니라 열람실 공간을 구성하는 작은 단위의 가구로서 디자인했다.


(왼쪽부터) 도미니크 페로와 가엘 로리오-프레보. 프랑스국립도서관의 테이블 램프를 새롭게 재해석한 퍼티브 컬렉션. 종류는 펜던트 램프, 테이블 램프, 월 램프, 플로어 램프 총 네 가지.


앞서 가구와 오브제를 작은 건축물로 여긴다고 말했듯이 이 조명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잘 지은 건축물 같다. 캔틸레버 구조를 연상케 하는 생김새에 디테일한 마감 처리, 알루미늄과 니켈 도금에서 오는 산업적 면모가 일상 공간에 사뭇 다른 분위기를 가져올 것 같다


우리는 기념비적인 것에서 일상적인 것으로의 전환에 관심이 많다. 산업적 오브제를 가정용 오브제로 변환하는 작업을 예전부터 꾸준히 시도해 왔다. 예를 들어 산업 시설의 필터나 여객선 바닥재로 널리 사용된 금속 직물을 태피스트리나 월 커버링으로 변환하거나, 대중교통과 석유화학 공장에서 대량으로 쓰이는 안전 조명 튜브(Safety Lighting Tubes)를 호텔이나 가정, 레스토랑의 조명으로 변형시키는 작업이었다. 퍼티브 컬렉션의 기본 접근은 공동 공간을 위해 디자인된 오브제를 ‘집’의 세계로 가져오는 것이었다. ‘은밀하다(Furtive)’라는 이름에도 조명의 특징이 숨어 있다. 주변 환경을 반사하는 재질 덕분에 결국 오브제는 사라지고 빛만 남아 있는 모습을 상징한다.



반사성은 도미니크 페로의 건축에서 종종 목격되는 특징이다. 베를린 벨로드롬과 DC 타워, 르 메르디앙 강남 호텔 부지에 들어설 고층 건물도 반사하는 재질로 주변 환경을 담아내지 않나. 반사적 특성을 통해 오브제를 지우는 일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빛을 내는 오브제보다 빛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에 따라 견고하면서도 볼 때마다 새로움을 주는 재료를 고려했다. 따라서 이 조명의 컬러는 재료에서부터 피어난다.


책을 상징하는 네 개의 건물로 이뤄진 프랑스국립도서관과 내부 열람실.

책을 상징하는 네 개의 건물로 이뤄진 프랑스국립도서관과 내부 열람실.


퍼티브 컬렉션은 건축적 헤리티지의 산물이다. 도미니크 페로 아키텍처는 프랑스국립도서관을 비롯해 다양한 도시를 배경으로 건축적 유산을 남겨왔다. 서울에는 강남국제환승센터(GITC, 영동대로 광역복합환승센터)가 한창 진행 중이고. 예술과 디자인은 언제 유산이 될까


창작물의 지속 가능성은 영속성에 달려 있다. 이번 컬렉션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하지 않는 프랑스국립도서관의 미적 회복력을 기념하고 있다. ‘5년 사용 후 폐기’되는 부동산 정책에 반대한다. 문화적 배경과 개인적 소신 등 모든 면에서 그렇다. 우리의 창작물이 일회용이 아니라 모두의 유산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장소와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문화와 애착, 감정을 창출하며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닌 작품을 구상한다. ‘2030서울플랜(2030서울도시기본계획)’을 목표로 여러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특히 강남국제환승센터 설계 프로젝트 ‘라이트워크(Lightwalk)’에 공력을 다하고 있다. 지하에 큰 갤러리를 조성하고 자연광으로 채워 지하철, 기차, 버스, 택시, 자전거 등이 사람과 연결되는 중심지를 만들 예정이다. 수십만 명의 일상을 좀 더 나아지게 변화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Credit

  • 에디터 윤정훈
  • 사진가 김현상
  • 아트 디자이너 김강아
  • 디지털 디자이너 김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