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파리 오트 쿠튀르 컬렉션에서 만난 '드 피노'의 디자이너
과장된 실루엣으로 파리지앵 쿠튀르의 우아함과 현대적이고 젠더리스한 미학을 동시에 그려낸 그의 첫 번째 런웨이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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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북쪽 오베르빌리에(Aubervilliers)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만난 드 피노 창립자이자 디자이너인 가브리엘 피귀에레도.
정말 기뻤다. 브랜드를 이끌어가는 데 있어 미래에 대해 좀 더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 브랜드를 시작한 지 4년째지만 그동안은 룩북으로만 컬렉션을 선보였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스토리를 전달하는 방법에 한계가 있었다. 이번 패션쇼 덕분에 내 머릿속에 있는 비전을 100% 보여줄 수 있어서 무엇보다 흥분된 순간이었다.


브랜드를 시작한 지 4년이 지나자 뭔가 정체된 느낌이 들었다. 브랜드를 성장시키기 위해 일종의 돌파구나 터닝 포인트가 필요한 것 같아 다른 사람들과 일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모든 걸 혼자서 했지만 지금은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았다. 주변에 믿고 함께할 수 있는 팀이 생겼기 때문에 런웨이 쇼가 가능했다.

컬렉션을 위한 이미지 작업.
쇼를 보러 온 사람들 대부분 쇼 시작 전부터 끝날 때까지 즐거운 분위기가 유지돼 기분 좋았다는 평을 해줬다. 쇼는 물론 시종일관 웃음을 띠고 관람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행복했다. 우리가 패션에 열광하는 이유는 이렇게 꿈꿀 수 있고, 행복할 수 있어서가 아닌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앞으로 1년에 한 번씩 쇼를 선보이고 싶고, 패션에 대한 초심을 잃지 않기로 스스로 다짐했다.

두툼한 솜으로 만든 드 피노의 드레스.
브뤼셀의 라 캉브르(La Cambre)에서 패션을 공부했는데, 그때부터 나만의 브랜드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졸업하고 나서 이미지를 만드는 게 좋아서 파리로 돌아와 꽤 오랫동안 유명 스타일리스트의 어시스턴트로 일했다.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만드는 게 그리워 다시 메종 마르지엘라에서 자수 작업을 하는 디자이너로 일하기 시작했고, 지금도 병행하고 있다. 내 컬렉션을 만들고 싶어도 시간이 없어서 불가능했는데, 팬데믹 기간에 시간적 여유가 생겨 첫 컬렉션을 만들 수 있었다. 처음엔 재미로 만든 컬렉션이었는데 예상외로 반응이 좋았고, 주변의 친한 스타일리스트 덕분에 내 작업이 다양한 화보에 실리는 행운을 누렸다. 내 컬렉션이 상업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본 거다.

할머니의 성이다. 할머니는 재능 있는 재봉사로 나에게 처음 재봉을 가르쳐줬고, 언제나 무한한 영감을 주는 분이었다. 내가 일곱 살 때 처음 만든 드레스 역시 할머니와 함께 만들었다.
이번 컬렉션은 어디에서 영감을 받았나
이번 컬렉션을 시작하면서 내가 가진 패션에 대한 열정이 어디서 왔는지 뒤돌아봤다. 어릴 적 패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때를 떠올리며 그 시절을 다시 탐험하고 싶었고, 그래서 2000년대 후반 컬렉션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중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만든 발렌시아가 겨울 컬렉션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사실 만들고 보니 내 머릿속의 기억이 왜곡되기도 해서 그 시절의 패션을 내 방식으로 재해석한 컬렉션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기억이 어떻게 변형되는지를 작업하면서 느꼈고, 내가 패션을 사랑한 계기와 그 시대 패션에 대한 경의를 표한 컬렉션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과장된 셰이프의 첫 번째 런웨이 피스들.
앞서 말한 니콜라 제스키에르 외에도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가 만든 2000년대 패션에도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당시 패션은 아주 세련되고 엄숙했는데, 거기서 영감을 받아 좀 더 재미있고 유쾌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기억과 연결되는 볼륨감 있는 디자인이 나오게 됐다.
오트 쿠튀르 기간에 컬렉션을 선보인 특별한 이유는
첫 런웨이 쇼이기 때문에 상업적 제안이 아닌, 내 정체성과 비전을 온전히 보여주고 싶었다. 드 피노를 통해 선보이고 싶었던 건 쿠튀르 정신을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오트 쿠튀르 기간에 선보인 건 당연한 결정이었다. 9월에는 이 컬렉션을 바탕으로 좀 더 상업적인 컬렉션 라인을 쇼룸을 통해 선보일 예정이다.

독특한 셰이프의 헤드피스.
사실 가장 큰 도전은 내가 정말 보여주고 싶은 것을 결정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고민도 많고 불안해서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았다(웃음). 처음 결정할 때 시간이 좀 걸리는 스타일이다. 막상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점점 자신감을 얻었고, 나를 도와주는 주변 사람 덕분에 담담하게 잘해낼 수 있었다.
지금 당신에게 영감을 주는 건 무엇인가
런웨이 쇼에서 느낀 에너지와 사람들의 반응이 아직도 나에게 영감이 되고 있다. 아마도 이번 쇼를 통해 더 많은 가능성을 보게 되었기 때문 아닐까. 메종 마르지엘라에서 일한 경험 역시 나에게 큰 도움을 주는 동시에 영감이 되고 있다.

과장된 셰이프의 첫 번째 런웨이 피스들.
아티스트 친구와 함께 10월에 있을 이에르 패션 페스티벌에서 선보일 설치미술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빌라 전체를 아우를 만한 커다란 설치미술 작업이다. 개인적으로 패션 외에도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해보고 싶은데, 이번 프로젝트가 그 시작이 될 예정이다.
Credit
- 에디터 이하얀
- 컨트리뷰팅 에디터 김이지은
- 사진가 MICKAËL LLORCA
- 아트 디자이너 구판서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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