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고기와 배, 달걀 그리고 맥주 머랭
훈연한 배를 얇게 저며서 그릇처럼 깔고 그 위에 타르타르로 다진 생사슴고기를 올린 후, 달걀노른자 퓌레를 조금씩 짜서 장식한다. 맨 위에 부숴서 꽂은 머랭은 맥주로 만든 것. 고소한 풍미를 더한다.
팝업 다이닝 때마다 조셉 셰프가 직접 그리는 디시 일러스트레이션. 그림을 배운 적도 습작해 본 적도 없던 그는 한국인에게 글보다 직관적인 방법으로 요리를 전달하기 위해 식재료와 요리법을 그리기 시작했다.
<미슐랭 가이드> 스타 셰프의 레스토랑을 두루 경험한 조셉 리저우드(Joseph Lidgerwood) 셰프는 다양한 나라, 다양한 문화권을 거치며 언제나 퀴진에 얽매이기보단 로컬의 가장 맛있는 식재료에서 색다른 음식을 상상해 내는 방식을 즐겼다. 호주 출신으로 육류와 해산물을 고루 먹고 만들며 자랐고, 런던의 톱 레스토랑이자 직접 운영하는 농장에서 ‘팜-투-테이블’을 실천해 온 레드버리(Ledbury) 등에서 일하는 동안 식재료가 좋으면 다 좋다는 걸 몸소 체험했다. 지난해, 조금 더 실험적인 시도로 셰프들이 전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일주일간 팝업 다이닝을 여는 ‘원 스타 하우스 파티’의 크루로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그는 다양한 식재료와 평범한 것이라 해도 한국산에서만 나는 특별한 맛에 완전히 매료됐다. 한국에 다녀간 지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다시 서울에 돌아온 이유다.
그는 한식 조리에서 재료를 쓰는 방식이 거의 정해져 있고, 파인 다이닝으로 가면 갑자기 격식에 짓눌리는 게 안타까웠다. 파인 다이닝이라도 충분히 가볍고 재미있는 시도들을 해보고 싶었다. 한국적인 음식으로 당연하게 김치나 밥류, 장이나 젓갈을 떠올렸다면 그 역시 선입견이다. 조셉이 <엘르>를 위해 선택한 재료는 사슴고기, 토끼고기, 키조개 등으로 토종 한국인조차 바로 떠올릴 수 없는 식재료였다. 그가 낯선 한국산 재료들을 모던하게 해석한 파인 다이닝은 팝업 레스토랑 형태로 서울 곳곳에서 기습적으로 만날 수 있다. 4월엔 이태원이었지만, 5월에는 또 어딘가에서 열리겠지. 그의 인스타그램(@josephkorea)을 수시로 염탐하면 그가 차린 테이블을 만날 수 있다.
키조개와 미역 그리고 물김치
키조개를 물김치에 5일간 담가 숙성시키면 ‘슈퍼 소프트’한 질감이 된다. 키조개를 말아 꽃모양으로 놓고 불린 미역을 함께 세팅한다. 그 위에 말린 키조개와 말린 알을 강판에 갈아 가루로 만들어 뿌린다. 마무리는 물김치 국물을 자작하게 붓는 것.
두릅과 따듯한 염소유 폼 그리고 설탕에 조린 호두
따듯한 염소유 거품과 살짝 소금 간을 한 두릅을 수프처럼 담고 위에 두릅 잎, 설탕에 조린 호두와 신선한 호두를 부숴 올린다.
토끼고기와 당근 그리고 생감자
사각형으로 썬 토끼의 다리 부위와 둥글게 썬 등심 부위를 각각 부드럽게 데치고, 당근 퓌레, 당근 김치, 절인 완두콩, 생감자를 곁들이고 잣을 흩뿌렸다. 생감자는 얇게 슬라이스해서 하룻밤 정도 물에 담가두는데, 2시간마다 물을 갈아줘서 전분기를 제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