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트렌드를 읽어드립니다

시즌 스타트! 이번 시즌 가장 세련되고 강렬한 룩 등 패션 위크 현장 그대로 생생하게 담은 뉴 시즌의 신선한 아이디어를 총망라했다

프로필 by ELLE 2017.02.01


내가 유일하게 옷을 장만하는 때는 1년에 두 번, 패션위크를 앞두고서다. 그리고 지난 20년 동안 시즌이 바뀔 때마다 누구보다 쉽고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 나름의 쇼핑 규칙도 터득했다. 바로 2월 중순의 얼음장 같은 추위 속에 열리는 가을 컬렉션을 보는 동시에 분명 5월까지는 입지도 않을 가벼운 소재의 옷을 사는 것. 다시 시즌이 바뀌어 트위드와 니트를 걸친 모델이 런웨이를 걷는 모습을 볼 때 입고 있을 S/S 컬렉션 옷을 6개월 동안이나 보관한다고? 내겐 전혀 문제될 것 없었다.





지난 9월에 열린 2017년 S/S 컬렉션에는 지금과는 다른 독특한 요소들이 등장했다. 이 혼돈의 배경에는 런웨이 옷을 바로 구입할수 있는 현장 직구 형식의 ‘See Now, Buy Now’ 방식을 채택한 디자이너들이 있다. 물론 프로덕션 스케줄상의 이유로 늘 그래왔듯이 6개월 앞서 컬렉션을 공개하는 시스템을 여전히 유지하는 디자이너들이 대다수지만 뉴욕에서 열린 쇼에서 그 혼란스러움은 특히 더 가중됐다. 마이클 코어스는 60년대식의 영감인 플로럴 프린트 드레스와 스커트 등으로 여름을 몰고 오는가 하면 타미 힐피거와 지지 하디드가 화려하게 선보인 ‘Stop-and-Shop’ 컬래버레이션으로 가을을, 그리고 랄프 로렌은 5990달러에 달하는 스웨이드 재킷(실로 런웨이 피날레가 끝나기도 전에 솔드아웃됐다)을 비롯한 가을 컬렉션 아이템부터 봄기운 가득 풍기는 플로럴과 스프라이프, 화려한 프린트까지 시즌을 넘나드는 아이템들을 다채롭게 선보였다. 토리 버치나 탄야 테일러처럼 S/S 컬렉션과는 별개로 지금 바로 살 수 있는 ‘Buy Now’ 가을 라인을 별도로 선보이며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브랜드들도 생겨났다. 알렉산더 왕은 아디다스와 함께 ‘See Now, Buy Now’ 라인을 론칭하면서 리조트와 스프링 컬렉션을 합치기도 했다. 디자이너들이 이토록 헷갈리게 시즌 룩을 제안하는 뉴욕 컬렉션을 지켜보는 내내 나는 옆자리 동료에게 “지금 우리가 어떤 시즌의 쇼를 보고 있는 거지?”라며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리 혼란스러울 필요는 없는 듯하다. 어차피 트렌드라는 것이 디자이너들의 서로 다른 아이디어가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 것이라고 이해하면 될 터. 시즌을 구분하기 위해 봄 혹은 가을이라는 계절감을 강조할 수도 있겠지만 이유야 어쨌든 그들의 개인적인 취향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그저 또 다른 이야기이지 않은가. ‘다시 월페이퍼 패턴에 빠졌는가? 화려하게 과시하고 싶은가? 60년대 젯셋족이 되고 싶나? 대학 시절에는 퀸이었나? 모든 남자에게 사랑받는 영화 <맨발의 콘텐샤>의 여주인공인가?’ 짐작컨대 당신은 이 모든 질문 박스에 체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혼돈의 중심에 서 있는 2017년 봄 컬렉션으로 돌아가보자. 한편으로는 낙관적이고, 에너제틱하며, 스트리트와 팝에서 영감받아 소화하기 쉬운 룩들이 있는 기본적인 노스탤지어 요소를 감각적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해 자극적이고 복잡한 형태로 선보이는 룩이 다양하게 혼재돼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실루엣은 한껏 과장된 슬리브. 그밖에 구찌 쇼에 등장한(마치 웨딩 케이크 같았던) 티어드 주름 슬리브의 시폰 가운, 스텔라 맥카트니의 슈퍼 오버사이즈 코튼 드레스와 셔츠, 파코 라반과 데렉 램의 스페이스 에이지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트라이앵글 컷의 룩 등이다. 이런 실루엣들에서 포착되는 또 다른 변화는 솟거나 패드를 댄 숄더 라인이다. 멘즈 웨어에서 유연한 테일러링이 돋보였던 드리스 반 노튼, 힙 하이 실루엣의 드레스와 스커트를 선보인 발렌시아가, 비대칭 컷의 드레이핑 드레스를 선보인 발맹, 70년대 디스코와 80년대 퓨처리즘에서 영감을 받은 루이 비통 룩이 대표적이다. 


스포츠 기어들은 꾸준히 트렌드의 중심에서 별다른 위축 없이 인기를 이어갈 전망이다. 베르사체에 등장한 나일론 트랙수트는 스포츠 트렌드가 저물 거라는 부정적인 예측을 비웃기라도 하듯 한껏 더 화려하게 등장했다. 럭스 트랙 팬츠를 등장시킨 펜디와 오프 화이트도 이런 무드에 동참했다. 프로엔자 스쿨러의 국기에서 영감받은 스트라이프 보디 콘 니트 드레스, DKNY의 경쾌한 트리밍이 돋보이는 플라이트 수트도 스포츠 룩의 열기를 이어갔다. 그 밖에도 판초나 실용적인 베이식 아이템들을 네온 실크로 선보인 시스 마잔(Sies Marjan)이나 크리에이처스 오브 컴포트, 시퀸 스커트 위에 후드가 달린 레인 슬리커 톱을 매치한 디온 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번 시즌 마술처럼 부드러움을 강조하는 데 일조한 건 리넨이다. 신사실주의 감성을 리넨 소재의 오리가미식 플리츠로 표현한 마르니와 40년대 바이브로 풀어낸 크리에이처스 오브 더 윈드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잔잔한 플리츠로 드라마틱한 볼륨을 선사한 질 샌더와 J. W. 앤더슨의 튜더 왕조시대의 화이트 리넨과 코튼 드레스 역시 시골풍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드러냈다.


그 외 신선한 아이디어들도 대거 쏟아져나왔다. 매니시한 복싱 로브는 미우미우를 통해 밝고 섬세한 세공기법을 거친 퍼 코트로 재탄생했다. 자수가 들어간 레더와 레이스를 함께 섞은 알렉산더 맥퀸, 란제리 실크에 멘즈 셔츠를 스타일링한 알렉산더 왕, 모터사이클 재킷과 부츠를 영화 <the wild one >의 웨스턴풍의 프린지와 결합한 코치 1941 등의 기발한 아이디어들을 눈여겨보길. 프라다, 크리스토퍼 케인, 알투자라에서는 브라톱이나 탱크톱, 브리프를 노출시키기도 했다. 마크 제이콥스가 90년대 레이브 음악 ‘A La Deee Lite’를 반복 재생하는 동안 캐롤리나 헤레라는 메탈릭 소재를 우아하게 풀어냈으며 디자이너들은 저마다 하트 우븐, 컷아웃 그리고 아플리케들을 풍성하게 썼다. 로다테 쇼에서는 자수가 들어간 레이스와 보, 글리터, 프린지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지기도 했다. 


뉴 시즌은 그 어느 때보다 여성의 권리를 강렬하게 부르짖는 시즌이 될 전망이다. 그리고 크리스챤 디올 역사상 첫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데뷔 쇼에 선보인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돼야 한다”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보는 순간 이는 공식화됐다. 그런가 하면 그녀가 떠난 발렌티노에 홀로 남은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는 프레스코 벽화 레이스 드레스와 60년대 재키 스타일의 케이프 드레스로 성공적인 솔로 데뷔를 치렀다. 유난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교체가 많았던 뉴 시즌의 새 얼굴들을 살펴보면, 우선 생 로랑의 안토니 바카렐로는 드라마틱한 원 숄더 미니드레스와 장난감 같은 스윗하트 목걸이로 위트를 주었으며 부시라 자라는 유동적인 스트라이프 멘즈 웨어로 랑방 하우스에 재미를 더했다. 조너선 샌더스는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의 새로운 수장으로서 컬러플한 마술을 선보였다. 올리비에 데스킨스는 띠어리를 떠난 지 2년 반 만에 자신의 이름을 딴 ‘쿨’ 걸들 일색의 완성도 높은 레이블로 돌아왔다. 뭐니 뭐니 해도 뉴 시즌 컬렉션에서 가장 돋보인 건 독창성이다. 더 이상 시즌에 구애받지 않고 디자이너들이 저마다 꾸준히 소비자 개개인의 취향과 각자의 패션을 리얼하게 탐구하면서 얻은 다채로운 아이디어들은 그 어느 때보다 독특함이 넘치는 시즌 컬렉션을 완성했다. 그만큼 선택의 폭도 넓어져 단언컨대 이번 시즌엔 쇼핑할 가치가 충분할 것이다. 



Credit

  • writer ANNE SLOWEY
  • PHOTO IMAXtree.com
  • CONTRIBUTING EDITOR 황기애
  • DIGITAL DESIGNER 전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