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 소킨
시나리오 작가
<웨스트 윙>
<소셜 네트워크>
<머니볼>
<스티브 잡스>
<뉴스룸>
<스티브 잡스>
흔히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고 한다. 그만큼 감독의 역량이 8할 이상 차지한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애플의 공동 창립자였던 스티브 잡스를 소재로 한 <스티브 잡스>도 그중 하나다. 관점에 따라 연출자인 대니 보일의 세공술보다 각본가 아론 소킨의 인장이 더 눈에 띄고, 더 많은 말들을 만들어낸다. 실제로 마이클 패스벤더의 열연은 차치하고 영화에 대한 찬사와 비평의 상당 부분이 아론 소킨의 텍스트로 향했고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각본상으로 이를 대신했다. 아론 소킨은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가 높은 ‘이야기꾼’이자 ‘달변가’이다.
<스티브 잡스>는 주인공의 업적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고 마치 유희하듯 그의 다면성을 세밀하게 탐구한다. 여기에는 아론 소킨의 전용 레서피라 할 수 있는 리더형 인물, 인간관계의 갈등, 치열한 대사 공방전이 어김없이 도드라진다. 아론 소킨은 그간 일관성 있게 비범한 인물을 보통의 존재로 재단해 왔다. 오스카 각색상을 수상한 <소셜 네트워크>에선 페이스북 창립자인 마크 주커버그가 타깃이었고 <머니볼>에선 통계 분석 야구를 도입한 야구팀 단장이 핀 조명 아래에 섰다. 그에게 명성을 안겨준 TV 드라마 <웨스트 윙>과 <뉴스룸>은 백악관과 방송국으로 배경을 옮겼을 뿐 반목과 갈등 속에서 엘리트들의 인간적인 면모와 한계를 여과 없이 보여줬다. 그런 점에서 아론 소킨의 작품들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또 하나의 일관성은 날 선 대립이다. 첨예한 대립각과 신경전 속에서 주요 인물들은 고뇌하고 폭발하며 이면의 모습을 드러낸다. 한 사람이 가진 두 얼굴을 드러내는 발화점이 되기에 이만 한 무대도 없다. 그 무대에선 말의 성찬이 펼쳐진다. 탁구 경기의 랠리처럼 대사들이 빈틈없이 이어진다. 촌철살인 대사들이 벌이는 타격전은 액션영화 못지않게 흥미진진하다. <스티브 잡스>에서 마이클 패스벤더가 방대한 대사들을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연기는 기예에 가깝다. 아론 소킨의 영화 각본 데뷔작인 법정영화 <어 퓨 굿 맨>도 불꽃 튀는 설전이 백미였다. 어쩌면 그가 말 잘하는 엘리트형 인물들을 고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의외의 사실은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 후보에서 <스티브 잡스>가 제외됐다는 것이다. ‘문제적 스토리텔러’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수다스런 서부극 <헤이트풀8>도 함께 초대받지 않은 걸 보면 오스카는 말 많은 영화를 질색하는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