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이프 모헤어 스웨터는 System Homme.
네이비 컬러의 터틀넥 풀오버와 트위드 팬츠는 모두 System Homme.
파리에서 돌아오자마자 만재도라니 정말 극과 극을 경험했다(웃음). 차승원, 유해진 선배님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스친 적 없었거든. 고민 없이 달려갔다.
막내 노릇은 잘했나 선배님들이 아기 다루듯 잘해 주셨지만, 내내 긴장을 풀 수 없었다. 뭘 해야 될지 모르겠더라고. 3일쯤 지나니 좀 가깝고 편안해진 느낌이었는데 금방 떠날 때가 돼서 아쉬웠다. 역시 두 분 다 멋진 분들이었다. 나도 저런 어른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배우고 느끼게 되는 것들이 많았지. 삼시 세끼 밥만 먹고 온 건 아니었다.
유럽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그렇다. 파리에 도착한 순간부터 골목이며 건물이며 모든 것에 반했다. 그리고 그곳에도 나를 아는 해외 팬들이 있었다! 나랑 완전히 다르게 생긴 사람이 다가와서 사인해 달라니 신기하더라. 고마운 마음에 일일이 같이 사진도 찍었다. 김치가 당길 만큼 현지 음식도 많이 먹어봤고. 그 자체로 힐링이 되는 시간이었다.
<상류사회>라는 숙제를 끝낸 소감은 한 단계 도약한 느낌이다. 한 가지 색깔만 있는 줄 알았던 박형식이 다른 색깔을 보여줄 수 있었던 소중한 작품이다.
실장님도 아니고, 무려 ‘본부장’ 역할을 맡았다 처음에는 나 역시 의구심이 들었다. 스물다섯인 내가 과연 스물아홉 본부장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운 좋게 작가님이 <상속자들> 이전에 <나인> 같은 정극에 출연했던 나를 기억하고 믿어주셨다. 감독님도 직접 만나보니 생각보다 어른스러운 면모가 있다며 가능성을 봐주셨고.
결코 평범하지 않은 대사들을 잘 소화하더라. 때론 섹시하기까지 했다 “나는 낮에도 이기고 밤에도 이기는 남자다” 같은 대사(웃음)? 느끼한 대사가 엄청 많았는데, 캐릭터의 힘을 빌려 부담스럽지 않게 표현된 것 같다. 틱틱대고 능글거리는, 그러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 아닌가. 본래의 나와 전혀 다른 스타일이기 때문에 연기하는 게 더 재미있었다. 촬영하는 동안 창수를 정말 사랑했다.
‘유창수’는 이전에 봤던 재벌 2세 캐릭터들과 좀 달랐다 순수함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래서 창수가 흔들리고, 울고, 지이(임지연)를 선택하게 된 거다. 극 속에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깊게 와 닿았던 고두심 선배님의 대사가 있다 “순수하다는 거, 불순물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게 아니라 온갖 잡탕을 정제하고 단련시켜서 순수성이 되는 거야.” 작가님의 필력에 정말 감탄했다. 순진함과 순수함의 차이는 평소에 나도 고민했던 부분이거든. 매 작품마다 연기뿐 아니라 인생을 배우는 것 같다.
‘발연기’ 소리를 들은 적 없는 아이돌 출신 연기자다 실은 발연기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모르는 거다. <나인> 이전에도 작품을 했는데 그때는 기자들이나 대한민국 국민이 나한테 관심이 없었다. 지금 보면 매 맞을 수준이다(웃음).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깃든 작품에 민폐 끼치지 않도록, 내가 맡은 역할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마음이 여기까지 오는 원동력이 됐다.
책임감뿐이었을까? 본인도 몰랐던 재능은 아니었을까 글쎄,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지만 이제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내가 감정을 표현하는 일을 좋아한다는 걸. 직업적인 특성상 힘들어도 아닌 척, 밝은 모습을 보여야 할 때가 많다. 그런데 연기를 하면서 내 안에 쌓아뒀던 감정들이 밖으로 새어 나오는 거다. “그래, 이게 바로 인간 박형식이지”라고 느끼는 것, 그게 연기하면서 얻은 가장 큰 행복이다. 그러다 무대에 올라가면 또 가수로서 무대에 최선을 다한다. 나는 노래하는 것도 사랑하거든.
와이드한 라펠의 블랙 코트와 화이트 셔츠, 블랙 팬츠, 버클 장식의 앵클부츠는 모두 System Homme.
컬러 블록 장식의 터틀넥 톱과 팬츠는 모두 System Homme.
<진짜 사나이> 때도 그렇고, 대중의 호감을 쉽게 얻는 것 같다. 왜일까 데뷔 초창기에 멤버들이랑 토크쇼 같은 프로그램에 많이 나갔는데, 어찌 할 바를 모르겠더라. 그래서 아예 회사에 말했다. 나는 예능 말고, 내가 잘할 수 있는 다른 것을 열심히 하겠다고. <진짜 사나이> 출연 제안을 받고 미팅할 때도 “시켜만 주십시요!” 이런 말은 안 나왔다. 있는 그대로 하면 된다고 해서, 정말 있는 그대로 했을 뿐이다. 방송을 보면서 나는 귀 빨개지고 창피해 죽겠는데, 사람들이 좋아하는 거다. 그게 어떤 포인트인지 이해가 안 됐다. 박형식이란 아이의 솔직한 모습 그 자체를 좋아해 준 것 같다. 그래서 부모님에게 더욱 감사하다. 결국 ‘나’라는 사람은 부모님이 만들어준 거니까.
박형식이 보는 박형식이란 지나치게 평화주의자고, 꽤 이상주의자다. 그런데, 나는 그런 내가 좋다. 현실적인 이득만 좇으면서 살아가고 싶지 않다. <진짜 사나이> 때 좌우명을 쓸 일이 있었는데 ‘서로 사랑하며 살자’라고 적었다. 나도 이게 어린아이 같은 소리인 줄 안다. 그래도 사랑한다면 좀 더 행복해질 거라는 믿음을 버리고 싶지 않다. 그게 바로 나를 지켜주는 힘인 것 같다.
멤버들과 숙소 생활을 하다가 최근 독립했다고 들었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었겠다 숙소에 들어가면 멤버들이랑 얘기 나누고 이따금 술 한 잔 기울이곤 했는데, 그런 소소한 교감이 그리워지더라. 활동하면서 요즘처럼 쉬어본 적이 없다. 어쩌다 짬이 나도, 다음 날 스케줄을 소화하려면 체력을 아껴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이렇다 할 취미 하나 없이, 혼자 뭘 할 줄 모르는 바보가 돼 있는 거다. 그래서 이제는 밖으로 나가서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나씩 해볼까 한다. 요즘 알아보고 있는 건 ‘스피어피싱’이라고 물속에서 작살로 물고기를 잡는 건데, 국내에도 동호회가 있더라고.
부쩍 생각이 많아 보인다고 주변 사람들이 귀띔하더라 사춘기가 다시 온 것 같다. 머릿속에서 생각이 계속 바뀌는 거다. 이를테면 “난 아메리카노가 좋아” 했다가 “아니, 카페라테가 더 좋은 것 같아”라고 왔다갔다 하는 거지. 예전에는 질문을 받으면 뇌도 안 거치고 대답이 튀어나왔는데, 이제는 “이건가? 저건가?” 혼란스러운 거다. 어떤 것도 금방 정의 내려지지 않고,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정말 그런가? 이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옆에서 매니저 형들이 걱정을 많이 했지.
그래서 지금 마음 상태는 솔직히 많이 흔들렸는데, 이제는 좀 편안해졌다. <힐링캠프>에 출연한 것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 제동이 형이 본인도 집에서 혼자 천장 바라보고 있다고 재미있게 표현하셨는데, 내가 정말 그랬다. 하는 일 없이 있으면서도 머릿속이 참 바빴다. 정신 없이 달리다 보니, 내게 ‘쉼’이라는 게 필요했던 것 같다. 지금까지 배운 것들이 이제 차차 내 안에서 정리가 되는 느낌이 든다. 내가 일찍 철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오만했던 거다. 아직까지도 그냥 애다, 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