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와 마초 사이, 톰 하디 || 엘르코리아 (ELLE KOREA)
STAR

순수와 마초 사이, 톰 하디

동시대 연기파 마초들을 긴장시키는 배우, ‘강하다’는 단어를 이렇게 신선하게 느끼게 하는 남자는 오랜만이다.

ELLE BY ELLE 2015.07.13
DEXT5 Editor

 

영국이란 나라는 어쩜 이렇게 다양한 매력의 사내들을 길러 내는 걸까. 킹스맨의 신사적 매너에 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브로그가 있든 없든 옥스퍼드 슈즈 따위는 그 자리에서 집어던질 것 같은 남자에게 빠지게 됐으니 말이다. 몇 년 전부터 ‘범상치 않은 영국산 배우’라는 소문을 들어왔음에도 ‘내 스타일은 아냐’라고 생각했던 톰 하디. 그러나 극장에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를 영접하고 나자 테스토스테론이 폭발하는 이 어마어마한 남자를 다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톰 하디는 내게 ‘진짜 얼굴’이 불분명한 배우였다. 그건 그가 그만큼 매번 다른 작품, 평범하지 않은 인물을 연기해 왔기 때문이다. 영국의 악명 높은 죄수 찰스 브론슨의 실화를 담은 <브론슨>에서는 삭발과 체중 증량으로 가족도 못 알아볼 변신을 했고,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악당 ‘베인’을 연기할 땐 줄곧 마스크를 쓰고 나와 육중한 목소리가 더 기억에 남았으니까. 톰 하디의 얼굴을 비교적 선명하게 인식하게 된 영화는 <로우리스: 나쁜 영웅들>. 무법 시대를 살아가는 불사조 3형제의 사납고 과묵한 리더 ‘포레스트’와 혼연일체된 그의 연기는 실로 강렬했지만, 한편으론 거친 남성성을 지나치게 과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톰 하디는 내 머릿속에 뒤뚱거리는 걸음걸이, 웅얼대는 발음, 인문학 책 한 권 독파한 적 없을 것 같은 근육질 마초의 이미지로 굳혀졌다(그의 필모그래피 중 유일한 로맨틱 코미디인 <디스 민즈 워>를 봤더라면 좀 더 일찍 그에 대한 호감도가 상승했을지도).

 

 

 

 

 

 

‘개 바보’ 톰 하디가 참여한 PETA 광고 캠페인.

 

 

뒤늦게 맹렬히 탐색한 톰 하디는 영화 속 주인공 못지않게 흥미로운 스토리를 지닌 인물이었다. 작가인 아버지와 예술가 어머니를 둔 유복한 집안의 외아들이었던 그는 상당히 떠들썩한 10대를 보냈다. 자동차를 훔치고 술과 코카인에 중독된 불량 학생. 퇴학당한 사고뭉치를 받아주는 곳은 드라마 스쿨밖에 없었다. 질풍노도의 시기는 20대 중반까지 이어졌으나 2003년 어느 아침, 거리에서 피와 구토물이 범벅된 상태에서 깨어난 일을 계기로 재활원에 들어가 정상적인 삶을 되찾았다. 일각에서는 메소드 연기라 평하는, 역할에 완전히 몰입해 자신의 한계를 밀어붙이는 듯한 그의 연기는 ‘중독적인 성향’이 치환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의 그는 영화에서처럼 늘 미간을 좁히고 있는 심각한 남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상남자 이미지를 상쇄시키는 엉뚱하고 재미있는 면모가 많다. 톰 하디를 구글링하는 순간 쏟아지는 우스꽝스러운 셀카 사진들은 남친의 비밀 폴더를 클릭한 것마냥 당황스럽기까지 하다(속옷만 입은 거울 속의 모습을 찍은 셀피는 대체 왜!). 우연히 마주친다고 해도 못 알아볼 것 같은, 티셔츠 차림에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아저씨 풍모로 거리를 활보하는 것은 물론이고 팬들과 스스럼없이 찍은 인증 샷도 많다. 자신을 치장하지 않는 태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솔직한 매력은 인터뷰에서도 잘 드러난다.

 

 

 

 

 

 

오는 9월 영국에서 개봉하는 <레전드>. 실존했던 쌍둥이 갱 크레이 형제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로 톰 하디가 1인 2역을 연기했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 촬영을 스타벅스에 빗댄 것처럼 돌직구와 유머, 욕설이 섞인 인터뷰는 하품 나올 틈이 없다. 톰 하디의 가장 매력적인 발견은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 앞에서 한없이 부드러운 남자라는 점이다. 현재 그의 옆을 지키고 있는 여자는 배우 샬럿 라일리. 두 번의 결혼 실패 후 영국 TV 드라마 <폭풍의 언덕>을 통해 만난 그녀와 세 번째 결혼식을 올리고 그의 인생에서 가장 안정적인 사랑을 이어가고 있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이 만났으니 그 자체로 로맨틱하다. 두 번째 아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루이스와 반려견들 또한 그를 무장 해제시키는 존재. 소문난 애견가인 그는 언제라도 강아지가 내민 혓바닥에 얼굴을 내줄 준비가 돼 있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와 관련한 인터뷰마다 10대 시절에 키웠던 애견 ‘맥스’에 대한 애틋한 이야기를 빠뜨리지 않으며(한 손에는 콜라, 한 손에는 강아지를 안고 학교에 다니는 남다른 소년이었다), 최근에는 현재 키우고 있는 유기견 우드스톡과 함께 PETA의 동물 입양 캠페인 모델로 나섰다. 톰 하디는 자신이 겉으로 보이는 만큼 공격적이고 남성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어린 시절에는 보통 남자아이들과 달리 예민하고 여성적인 면이 많았다고 고백한다. 그는 자신을 ‘얼간이’ ‘미숙아’라고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연기를 통해 강인하고 다양한 인간성을 경험하는 데 열중한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노장 감독 조지 밀러는 “톰 하디는 터프한 동시에 연약하다. 그리고 이 점은 무비 스타의 필수 요소”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이 불안한 에너지를 지닌 사내에게서 예상을 뛰어넘는 새로운 마초의 모습을 끌어냈다. 폭주하는 자동차에 매달려서도 끝내 살아남아 여자(퓨리오사)에게 군말 없이 운전대와 총을 양보하는! 반전 매력을 지닌 연기파 마초, 톰 하디에게 당분간 벗어나고 싶지 않다.  

 

 

팝업 닫기

로그인

가입한 '개인 이메일 아이디' 혹은 가입 시 사용한
'카카오톡, 네이버 아이디'로 로그인이 가능합니다

'개인 이메일'로 로그인하기

OR

SNS 계정으로 허스트중앙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회원이 아니신가요? SIGN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