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세계의 진짜 아름다운 도서관

여행지에서도 꼭 찾아가 볼만한, 오가다 잠시 들러 책에 파묻혀 볼만한, 그냥 멍하니 앉아서 종이 냄새에 흠뻑 빠져 볼만한, 전 세계의 아름다운 도서관들만 모았다.

프로필 by ELLE 2015.05.22





슈투트가르트 도서관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2011년 겨울, 네모반듯한 콘크리트 덩어리 같은 도서관이 하나 들어섰다. 무 깎듯 무심한 이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유럽 언론은 ‘책들의 감옥’이라며 온갖 비난을 쏟아냈다. 그러나 도서관이 정식 오픈한 이후 상황은 급반전되어 지금은 ‘책들의 신전’으로 칭송받고 있다. 왜 신전으로 불리는고 하니 1~4층 높이의 ‘명상의 공간’ 때문인데, 바닥 한복판에 가로 세로 1m 크기의 작은 연못(?)이 있고 천장에도 그와 정확히 마주보는 작은 창을 냈다. 이것은 로마 판테온에서 영감을 받은, 일종의 성스러운 구역으로 복잡한 바깥세상과 잠시 이별하고 마음을 정화한 후 책의 세계로 들어가는 의식 같은 공간이다. 이 ‘명상의 큐브’ 위 5층부터는 가운데가 뻥 뚫린 구조이며, 여러 층에 걸친 서가는 천장, 바닥, 계단, 책장 할 것 없이 온통 흰색이어서 우주기지 같기도 하고 비밀의 연구소 같기도 하다. 심오한 뜻을 가진 데다 압도적으로 아름답고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이 놀라운 도서관을 지은 사람은 누구일까?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한국인 건축가 이은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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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ilander Platz 1, 70173 Stuttgart
www1.stuttgart.de/stadtbibliothek








암스테르담 공공 도서관
북유럽 스타일보다 실험적이면서 모던한 네덜란드 디자인의 정수를 보고 싶다면, 디자인 박람회에 갈 게 아니라 이 도서관에 가봐야 한다. 1919년 문을 연 이후 2007년에 암스테르담 중앙역 근처의 10층짜리 신축 건물로 이사온 암스테르담 공공 도서관은 네덜란드 건축가 조 코넌(Jo Coenen)의 작품이다. 창밖의 운하가 잘 보이도록 디자인한 유리 건물엔 전면으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실내에는 디자인 가구가 가득하고, 조명이나 의자는 브랜드 쇼룸이 연상될 만큼 컨셉트가 확실하다. 어른 키를 넘지 않는 낮은 서가, 여기저기 가장 편한 자세로 ‘널브러질’ 수 있는 휴식 공간, 카페처럼 꾸민 식음료 공간, 어디 하나 경직된 느낌이 없다. 그 때문일까 도서관 내부는 쥐 죽은 듯 고요하지 않고 재잘거리는 사람들의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진다. 층마다 다른 컬러로 장서와 자료를 구분했는데, 기절할 정도로 많은 양의 음악 자료는 보물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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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sterdokskade 143, 1011 Amsterdam
www.oba.nl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
사무엘 베케트, 오스카 와일드, 조너선 스위프트가 책을 읽고 작품을 썼던 도서관이라면 한 번 가보는 것만으로도 문학적 소양이 마구 길러질 것 같다. 아일랜드 최고 명문 대학인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은 1592년에 세워졌다. 500년 역사의 화룡점정은 올드 라이브러리의 ‘롱 룸(long room)’. 이름처럼 긴 방은 64m에 달하는데 여기엔 이집트 시대의 파피루스부터 인쇄술이 없던 9세기에 손으로 쓴 라틴어 복음서 <켈스의 서> 원본을 포함해 500만 권의 고서들이 가득 차 있다. 서가에서 책을 꺼내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곳이라기보다 문화유산 급의 공간과 책을 ‘관람’하는 곳이라 관광객들과 함께 줄을 서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제한된 구역만 볼 수 있지만, 수백 년 된 책에서 풍기는 냄새와 세월의 더께를 경험하기에는 충분하다.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2에 등장하는 가상 도서관, 제다이 아카이브가 이 도서관에서 모티프를 가져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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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llege Green, Dublin 2
www.tcd.ie/Library








타이베이 베이터우 공공 도서관
베이터우는 타이베이 북쪽의 온천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여기저기서 미스터리한 유황 연기가 피어 오르며 나무와 흙을 보고 만질 수 있는 베이터우 공원 안에 자연친화적 도서관이 숨겨져 있다. 베이터우는 대만 일제시대의 잔재로 오래된 일본식 건물들이 많은데, 이 도서관은 대만의 전통 가옥을 형상화한 독보적인 모습이다. 예쁘장한 산장 느낌의 도서관은 친환경을 적극적으로 실천한다. 자연 채광을 극대화해 실내 점등률을 낮췄고, 격자무늬 나무로 설계한 외관은 복사열을 차단해 실내 온도를 조절하며, 지붕 위에 태양열 집열판과 잔디밭을 설치했다. 빗물을 받아 화장실에 사용하기도 하고, 친환경 페인트로 내부를 마감했다. 덕분에 습하고 더운 날씨라 해도 이 도서관으로 피신하면 궁극의 쾌적함을 경험할 수 있다. 이용하는 사람만큼 책도 쾌적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외부로 반출됐다 돌아온 모든 책은 살균 기계를 거쳐 보관된다. 공간 어디에서나 나무 향이 바람에 실려와 책을 읽으며 공감각적 심상에 젖을 수 있는 곳이다.

add No. 251, Guangming Road, Beitou District, Taipei City
www.tpml.edu.tw







시애틀 공공 도서관
1998년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 시는 ‘모두를 위한 도서관’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벌였다. 스물아홉 개의 업체가 도서관 설계도를 제출한 가운데, 아방가르드한 11층 높이의 유리 건물을 구상한 렘 쿨하스가 시민 투표를 거쳐 건축가로 낙점됐다. 강철 구조에 유리로 뒤덮인 건물은 꼬마가 불규칙하게 쌓은 레고처럼 희한하게 붙은 단면들로 다면체를 이루고 있다. 시애틀의 ‘스페이스 니들’을 위협할 만큼 새로운 랜드마크가 됐다. 내부의 백미는 높이가 15m에 이르고 가운데를 텅 비운 ‘리빙 룸’이다. 도서관에 웬 리빙 룸이냐 하겠지만 이곳은 소설 섹션의 책들을 놓아두고 소파에서 쉬거나 인터넷을 즐기거나 자기 집 거실처럼 편안한 상태로 책을 접할 수 있다. 이 도서관이 책과 책 읽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풍경이 아닐 수 없다. 6층부터 9층까지 4개 층에 걸쳐 연결된 회전형 서고도 장애인과 어린이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어 실용까지 생각한 디자인 귀재들의 빛나는 결과물이라 할 만하다.

add 1000 4th Ave, Seattle, WA
www.spl.org





보스턴 공공 도서관
보스턴은 이름부터 ‘그 녀석 참 공부 잘하게’ 들리는 도시다. 보스턴의 학구열에 관한 역사는 아마도 보스턴 공공 도서관이 지어진 1848년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이곳은 미국 최초로 일반인에게 개방된 공공 도서관이자, 도서를 대여해 가는 시스템을 처음으로 도입한 도서관이다. 미국 의회 도서관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서관이고, 보스턴 시는 이 어마어마한 도서관에서 1년에 1만 개 이상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 한 해 시정운영비의 1% 이상을 쏟아 붓는다. 도서관 계의 아버지 같은 곳이라 전 세계에서 도서관을 설립할 때 반드시 이곳을 벤치마킹한다.

add 700 Boylston Street, Copley Square, Boston, MA
www.bpl.org





장크트갈렌 수도원 도서관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된 도서관, 8세기부터 15세기 사이에 쓰여진 필사본 2100권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역사적으로 중요하기도 하지만 이 도서관의 백미는 압도적인 비주얼이다. 수많은 도서관 사진을 추리는 과정에서 감흥이 떨어질 때즘 이곳 사진을 보자마자 제아무리 좋은 카메라로 찍은 멋진 사진이라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같은 문구나 ‘버킷 리스트’ 같은 용어는 지루할 대로 지루해졌지만, 이곳이라면 그런 수식어라도 붙여야 속 시원하겠다. 중세에는 수도원이 학문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수도원장이 소장한 책들이나 수사들이 읽거나 필사하던 책이 많이 모이면 그것이 그대로 도서관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장크트갈렌 수도원의 도서관 홀은 학자들 사이에서도 가장 뛰어나고 정교한 바로크 건축물로 꼽히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add Klosterhof 6D, 9004 St. Gallen, Switzerland
www.stibi.ch







서울 도서관
옛 서울시청 청사가 서울도서관으로 변신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많다. 2012년에 서울시청 신관이 완공된 후 건물 전체를 도서관으로 바꿨는데, 1929년 ‘경성부청’으로 문을 열었던 당시의 건물 골조를 전혀 건드리지 않고 내부만 조금 변형했다. 창틀과 창틀 사이의 좁은 공간까지 책을 빽빽이 채워 넣은 서가는 자로 잰 듯 네모반듯하게 짜 넣은 서가보다 멋이 살아 있다. 근처 직장인이라면 점심시간에 잠시 도서관 옥상정원에 올라가 보길 권한다. 두 눈을 의심할 정도로 탁 트인 시야로 서울 중심부를 내려다보면 긴 한숨도 가슴을 씻어줄 들숨으로 바뀔 것이다. 현재 서울도서관은 서울 시내 모든 도서관과 서점 정보를 모은 ‘도서관 & 지역서점 통합지도’를 만드는 중이다. 책 읽지 않는 서울 사람들을 바꾸는 조용한 변화의 시작이길.

add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 110
lib.seoul.go.kr


Credit

  • editor 이경은
  • photo 김정아
  • design 최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