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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맛, 물맛

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물이다. 전문가들은 보드카, 위스키, 사케, 맥주 등의 네 가지 주종 모두 술의 맛을 결정하는 것 역시 물이라고 말한다. 프리미엄 브랜드일 수록 물을 강조한다. 알고 마셔야 할 때다.

프로필 by ELLE 2010.07.02


*위스키
“위스키 증류소의 입지를 결정하는 첫번째 요소는 물이다. 물이 풍부한가, 물 맛이 좋은가를 가장 먼저 생각한다.” 한국 위스키 협회 유성운 사무국장은 위스키와 물의 관계에 대해 가장 먼저 이렇게 말했다. 위스키를 만드는 많은 과정에 물이 쓰인다. 보리를 불려 발아시켜 몰트로 만들고, 몰트를 찌고 발효시키고, 증류된 증기를 식혀 액체로 만들고 희석하는 과정 모두에 물이 쓰인다. 위스키의 품질을 관리하기 위해 자연히 물의 양과 질이 중요할 수 밖에 없다. 스페이사이드 지역에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인 싱글몰트 위스키 브랜드인 글렌피딕, 맥켈란, 발베니 등이 몰려 있는 것도 수많은 지류가 존재해 증류소들이 각기 독립적인 수원지를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물이 부족한 아일라 섬의 대표적인 싱글몰트 위스키이자 라이벌인 라가불린과 라프로익을 생산하는 증류소가 수원지를 놓고 벌인 오랜 다툼은 유명하다. 이렇게 중요한 수원지를 관리하기 위해 위스키 증류소들은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오염을 막기 위해 수원지 주변에 가축과 사람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울타리를 설치하는가 하면 ‘로비듀’라는 이름의 수원지를 공동으로 사용하는 글렌피딕과 발베니는 로비듀가 흐르는 주변 150만평의 임야를 구입해 오염의 요인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위스키를 만드는 데 쓰이는 이상적인 물은 연수라고 알려져 왔다. 칼륨 성분이 적어 맥아의 발효가 잘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다. 유성운 사무국장은 “위스키를 만드는 데 전통적으로 미네랄 성분이 적은 연수를 사용해 온 건 경수를 쓸 경우 증류기에 불순물이 많이 생겨 관리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관리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생각과 반대로 경수를 사용하는 증류소가 있는데 글렌모렌지와 하이랜드파크를 생산하는 곳들이 그렇다. 발효가 늦은 대신 풍부한 미네랄 성분이 증류와 숙성과정에 영향을 미쳐 복잡한 풍미를 더한다. 스코틀랜드 지방에 풍부하게 퇴적된 피트는 맥아를 찔 때 연료로 사용되어 스카치 위스키 특유의 스모키한 맛과 향을 만들어 내는데 이 곳을 흐르는 물 역시 피트 성분이 함유되어 검붉은 빛을 띤다. 하지만 보기와는 달리 피트 성분의 함량이 미미해 그 물 자체가 위스키의 맛을 좌우하진 않는다는 게 통념이다.

글렌피딕은 수원지 ‘로비듀’가 흐르는 주변 150만평의 임야를 구입해 오염의 요인을 차단한다.




*사케
“예로부터 유명한 사케 생산지는 물 맛이 좋은 곳이었다.” 위스키와 비슷한 이야기. 롯데호텔 일식당 모모야마의 사케 소믈리에 김선희의 말이다. 하지만 사케는 위스키와 반대로 전통적으로 경수로 만드는 것이 더 일반적이었다. 철분이 풍부한 경수로 만든 사케는 활발한 발효로 인해 산이 많으며, 구조감이 좋은 풀바디한 풍미의 사케가 만들어지며 숙성될 수록 부드러워진다. 사케의 대표적인 생산지인 고베 지역의 사케가 경수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에도시대 중기엔 고베의 사케가 에도지방까지 전래되면서 에도 근처 효고현의 물맛이 더 훌륭함을 깨닫고 효고현에 사케 양조장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물맛으로 유명한 효고현의 사케 중 사케 소믈리에 김선희가 추천하는 건 고츠즈미 로죠 아리하나 준마이 다이긴죠. 연수로 만들어지는 사케에도 나름의 장점이 있다. 교토시 후시미구는 예전부터 세 줄기의 강이 합쳐져 물이 풍부한 곳이었다. 이 지역의 물엔 철분이 거의 없어서 발효가 천천히 진행되며 산이 적어, 마시기에 부드러운 사케가 만들어진다. 또, 술을 만드는 효모균과 철분이 만나 반응을 일으키면 술 색깔이 투명하게 나오지 않는데 이 지역의 사케는 자연히 투명한 빛을 띤다. 사케 소믈리에 김선희는 이 지역의 사케에 대해 “색깔 때문에 술을 담는 용기엔 철이 쓰이지 않는다. 철분 성분이 적은 건 운이 좋은 거다”라고 말한다. 이 지역의 대표적인 사케는 유기농 방식으로 제조된 다마노히카리 준마이 다이긴죠, 기자쿠라 긴죠 나마죠조 등이 있다. “그렇다고 다른 지역의 사케가 맛이 없는 것은 아니다.” 김선희의 말이다. 현대적인 방법을 이용해 약점을 보완하기 때문이다. 물맛이 좋기로 소문난 니가타, 홋카이도 역시 사케의 대표적인 생산지이며 최근엔 이곳에서 생산되는 사케가 일본 내 소비량 1,2위를 다투기도 한다.

기자쿠로 긴죠 나미죠조는 교토 후시마국 지방 튜유의  징대로는 특유의 물맛이 잘 느낄 수 잇는 사케다라




*보드카
보드카라는 이름 자체가 러시아어로 물을 뜻하는 단어인 ‘voda’에서 왔다. 무색, 무취, 무향의 잡맛없이 깨끗한 맛을 추구하는 보드카는 까다로운 증류과정을 거쳐 순수한 알콜을 얻어내는 과정만큼이나 물이 중요하다. 밀, 보리 등을 증류해 얻는 순도 95%의 에틸 알콜을 40% 정도로 마실 수 있도록 희석하는 과정에 들어가는 재료는 오직 물뿐이기 때문이다. 시간과 비용을 들여 여러번 증류를 반복하는 과정이 불순물 없는 알코올을 뽑아내기 위한 것이라는 걸 떠올려보면 보드카의 맛을 결정하는 건 물이라고 잘라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보드카 브랜드들은 어떤 주류보다도 제조 과정에서 쓰이는 물을 힘주어 강조한다. 조건은 당연히 깨끗함과 순수함. 프리미엄 보드카 시장이 커지면서 보드카의 물은 점점 더 중요시 되고 있다. 몇몇 보드카 브랜드에서는 여과된 물이나 또는 역삼투 처리된 물을 사용하지만 특정 지역의 고유의 맛 과 개성을 투영시킬 수 없어 프리미엄 보드카에는 잘 쓰이지 않는다.
사용되는 물의 성질이 곧 그 술의 이름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캐나다의 프리미엄 보드카인 아이스버그 보드카는 1만 2천년 전 캐나다 북동부 뉴파운드랜드에 형성된 빙하를 녹인 물로 만든다. 헤비 워터 보드카의 경우엔 스웨덴 지역에 빙하기에 형성된 땅 속 호수의 물을 길어다 쓴다. 호수의 물은 D2O라는 동위원소가 포함된 중수(重水)다. 그래서 헤비 워터. 전세게에서 유일하게 중수로 만들어지는 보드카다. 헤비워터 보드카의 부드러운 목넘김과 긴 피니시는 바로 이 독특한 성분의 물 덕분이라는 게 제조사의 설명이다. 물의 성질을 술의 이름을 쓰지 않더라도 고급 재료를 강조하는 프리미엄 보드카들은 저마다 물에 대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프리미엄 보드카 유행을 선도한 그레이구스는 프랑스의 고원지대인 마시프 산맥을 흐르다 샹피뉴 석회암을 통해 자연 여과된 물을 쓴다. 미세하게 염분이 함유된 물이 보드카의 맛을 부드럽고 우아하게 만든다. 청정지대로 이름난 뉴질랜드에서 생산되는 42 빌로우 보드카는 뉴질랜드 북섬에 위치한 휴화산의 지하 1000피트에서 뽑아 올린 화강암 암반수를 사용한다. 제조사는 보드카를 병에 넣기 전, 암반수로 병을 한 번 더 씻어 내는 과정까지 홍보할 정도다.

42빌로우의 제조사는 보드카를 병에 넣기전 암반수로 병을 한번 더 씻어내는 과정까지 홍보할 정도다.




*맥주
맥주의 90%이상이 물이다. 그리고 맥주 한 병을 생산하는 데는 그 보다 열 배에서 스무 배 많은 양조 용수가 필요하다. 물은 맥주의 맛과 품질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맥주를 만드는 데 가장 좋은 물은 자연적으로 형성되어 다른 곳에선 구할 수 없는 다양한 미네랄 성분이 들어 있는 수원지에서 길어 온 것이다. 맥주의 맛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성분은 칼슘과 마그네슘이다. 이 두 화학 원소가 많이 함유된 물이 경수인데, 설겆이나 빨래를 하는 데는 좋지 않지만 부드러운 풍미를 가진 맥주를 만드는 데는 필수적이다. 경수에는 이외에도 다양한 미네랄이 함유되어 있어 맥주를 만드는 과정에 다양한 화학 작용을 일으킨다. 대표적인 맥주 생산지인 뮌헨의 맥주들이 경수로 만든 맥주다. 맥아의 향기가 짙고 감미로운 맛이 난다. 아일랜드의 더블린 지방 역시 경수로 유명한 지역, 기네스의 부드러운 거품과 진한 풍미는 마시기에도, 씻기에도 적합하지 않은 경수가 빚어낸 것이다. 워낙 물의 경도가 강해 물 대신 독한 진과 위스키를 마셔 나빠진 더블린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수도사들이 기네스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영국의 버튼이라는 지역의 물엔 석고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 이 물 역시 그냥 마시기엔 좋지 않지만 상큼한 맛이 매력적인 페일 에일을 만들기엔 최적의 재료다. 다른 지역에서 페일 에일을 만들 때 물에 석고 성분을 넣을 때 ‘버튼화시킨다’고 말할 정도다. 가장 경도가 높은 물로 만드는 맥주는 독일 도르트문트 지방의 라거 맥주다. 발효도가 높고 산뜻하며 쓴 맛이 적다. 반면 연수로 만드는 맥주들도 있다. 경수로 만든 맥주의 부드러움과 달리 맥주 제조에 연수를 쓰면 강하고 자극적인 풍미가 난다. 체코의 필젠 지방은 연수가 풍부해 물 좋기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이 곳에서 1842년부터 필스너 우르켈이 생산되고 있다. 우리가 현재 일반적으로 마시는 맥주의 원형인 필스너 우르켈은 호프의 강렬한 쓴 맛이 그대로 살아 있는 풍미가 매혹적이다.

필스너 우르켈은 현대 맥주의 원형이다. 연수로 만드는 맥주다운 쌉쌀한 맛으로 지금도 훌륭한 맥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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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CHUNG KYU YOUNG
  • PHOTOGRAPHER OH YOON SOOK
  • 리터칭 한석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