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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르보이스] 신묘한 육아의 세계

엄마가 되었습니다! 임현주 아나운서가 중독된 고되고 보람찬 육아의 세계

프로필 by 임현주 2024.01.10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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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한 육아의 세계

저쪽 방에서 아리아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아리아는 내가 품고 있던 작은 인간이 몇 달 전 세상에 태어나면서 갖게 된 이름이다. 아리아의 울음은 점점 더 극적으로 변하고, 나는 어느새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다. “다니엘, 안 되겠어. 이번까지만.” 우는 아이보다 우는 내가 더 걱정된다며 남편은 결국 아이를 넘겨주었다. “아리아, 많이 먹어. 이번까지만이야.” 내 품에서 평온을 찾은 아리아에게 속삭인다. 나는 아이와 젖을 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이런 고민을 하게 될 줄 몰랐다. 출산 전에는 모유수유에 대해 어떤 강한 의지나 계획이 전무했으니까. ‘되는대로 하지 뭐’라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본능적으로 달려들어 젖을 물고 얼굴이 빨개지도록 온 힘을 다해 집중하는 모습을 보며 경이로운 감정에 빠지고 말았다. 예상하지 못한 행복이었다. 힘들다는 새벽 수유를 할 때도 어둡고 조용한 세상에서 우리 둘의 공간은 환하게 빛나는 듯했다. 조금씩 길어지는 아이의 속눈썹을 바라보며, 따뜻하게 체온을 나누며, 작은 손이 움켜쥐는 생명력을 느끼며 같이 잠들곤 했다.
 
문제는 아이가 커가면서 모유량이 성장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 시작됐다. 아이가 분유와 모유 중 하나를 선택하는 때가 온다는데, 아리아는 모유를 좋아했고 분유를 거부하는 비중이 늘었다. 잠을 푹 자지 못하고 자주 깨는 아이의 모습을 본 친정엄마는 충분히 배가 부르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아이가 잘 자고 잘 먹어야 한다며 조심스럽게 젖을 뗄 것을 권했다.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이 연결감, 이 사랑을 어떻게 포기해. 엄마는 내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지만 그건 아이를 위한 게 아니라고 덧붙였다. 이게 뭐라고 이토록 섭섭하고 눈물이 나던지. 그렇게 매일 나는 다짐하고, 아리아는 울고, 다짐은 무너지고, 다시 젖을 물리곤 한다. 겨우 잠든 아이를 보며 자책한다. 내가 독하지 못해서, 이기적이어서 아이가 힘든 것 아닐까. 부모가 아이에게 왜 죄책감을 갖는지 비로소 알았다. 아직 말하지 못하는 아이의 생각이나 입장을 알 수 없으므로 오직 아이의 울음과 몸짓으로 신호를 읽고 부모가 반응하고 결정해 줘야 한다는 것. 그게 얼마나 큰 책임감으로 다가오는지. 가끔 아이의 울음소리에 정신이 혼미해지고, 진이 빠진 기분이 들곤 한다.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걸까? 아무리 잘하려고 노력해도 낙제점을 받는 기분이다. 그게 스트레스나 우울감을 동반할 수도 있고, ‘잠깐 생각 좀 하고 올게’라고 멈춤 버튼을 누를 수 있는 것도, 언제 끝날 거라는 마감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감정에 빠져 있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진다. 이보다 더한 멘탈 트레이닝이 있을까.
 
 
가끔 이 사랑이 나를 삼킬까 봐 아찔할 때가 있다. 이 존재가 너무 귀해서 온 집중을 다 하고 싶어진다. 이 또한 당혹스럽고도 놀라운 감정이다. 새해가 되면 출산휴가가 끝나고 다시 직장과 방송에 복귀할 것이다. 그렇게 결정해 놓은 것이 다행이다 싶다. 이렇게 아이가 잠든 틈틈이 글을 쓰는 일도 내겐 더욱 중요한 일이 됐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려면 계획을 촘촘하게 세우기보다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 모두의 하루는 똑같은데 아이를 돌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늘었으니 나를 위한 시간은 쪼개고 쪼개 귀하게 쓸 수밖에 없다. 지친 마음이 들 때면 잠시 산책한다. 아이를 키우는 데 완벽함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걸 머리와 마음속에 꼭 붙들고 있자고 다짐하면서, 엄마는 정말 위대하다고 생각하면서 집에 돌아오는 발걸음은 어김없이 평소보다 빨라지고 만다. 돌아와 다시 아이를 힘껏 안는다. 머리에 입을 맞추며 맡는 아이 냄새가 벌써부터 그리워진다. 나는 매일 오르락내리락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지만, 아이는 꾸준히 자라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이토록 고되고 보람된 육아의 세계에 중독되고 말았다.
 
임현주 
듣고, 쓰고, 읽고, 말하는 MBC 아나운서. 좋아하는 것을 하며 신중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나날을 담은 책 <아낌없이 살아보는 중입니다> <다시 내일을 기대하는 법> 등을 썼다.

Credit

  • 에디터 이마루
  • 아트 디자이너 김민정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