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자컨이 대체 뭔데? 자컨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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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자컨이 대체 뭔데? 자컨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멤버들과 있을 때 내 아이돌은 어떨까? K팝 아티스트들의 필수 콘텐츠가 된 '자컨'의 세계. 그 치열함과 애틋함에 대하여.

이마루 BY 이마루 2023.08.20
K팝 아티스트와 관련된 글을 쓰다 보면 생기는 고민이 있다. 이걸 굳이 설명해야 할까? 팬이나 K팝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부연 설명이 필요 없지만 대중적인 고유명사나 밈으로는 아직 자리 잡지는 않은 것. ‘자컨’은 그중 하나다. ‘자체 컨텐츠’의 줄임말인 ‘자컨’은 K팝 아티스트가 기존 방송에 출연하는 대신 회사의 콘텐츠 팀과 협업해 제작하는 일종의 웹 예능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제는 덕질에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된 자컨은 아티스트를 둘러싼 각종 ‘짤’과 에피소드를 탄생시키는 콘텐츠의 보고다. 자컨 속 모멘트는 팬에 의해 ‘○○○ 모음’ 등으로 재업로드돼 멤버의 성격을 압축적으로 설명하거나, 팀 내 관계성을 효율적으로 보여주는 요약 영상으로 활용된다. ‘이 팀 웃기더라’ 같은 인식이 팀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 멤버 개인에게 새로운 커리어의 기회로 이어지는 것은 물론이다. 2년 전 자컨 ‘SKZ-Talker’에서의 “나는 네가 줏대 있게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어” 발언으로 얼마 전 갤럭시 광고까지 촬영한 스트레이 키즈의 창빈은 자컨 속 발언이 대중적 밈이 된, 가장 성공적인 아웃풋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다수의 K팝 그룹이 자컨을 선보이고 있는 2023년 현재. 자컨의 양대산맥은 단연 〈달려라 방탄〉, 그리고 〈고잉 세븐틴〉이다. 2015년 8월, 소소하게 시작했던 〈달려라 방탄〉이 BTS의 성공 요인 중 하나로 꼽히며 K팝 시장에 자체 콘텐츠 제작 열풍을 불러일으켰다면 〈고잉 세븐틴〉은 K팝 아티스트들의 해외 활동이 멈추고 볼거리를 필요로 했던 팬데믹 동안 10~30대 여성들의 ‘필수 예능’으로 자리 잡았다. 편당 조회 수 수백 만은 거뜬한 만큼 규모와 기획도 커졌다. 2019년부터 〈고잉 세븐틴〉에 참여하고 있는 한 제작진의 말에 따르면 촬영현장에 참여하는 평균 스태프는 약 30명. 독특한 기획으로 팬들의 지지를 받았던 ‘EGO’ 시리즈는 초기 기획부터 릴리즈까지 장장 5개월이라는 시간이 투입됐다. 세븐틴의 팬덤인 ‘캐럿’은 아니지만 〈고잉 세븐틴〉을 통해 13명에 달하는 세븐틴 멤버 각각의 매력과 팀을 둘러싼 각종 에피소드를 인지하게 된 이들을 가리키는 ‘큐빅’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을 정도다.
 
이쯤에서 고백하자면… 나는 ‘아이돌 자컨 중독자’다. 지금은 사라진 V앱 초창기 시절 〈달려라 방탄〉의 초기 에피소드를 브이앱 하트를 날려가며 지켜봤고 지금도 15%는 자료 조사를 핑계로, 85%는 취미생활로(나는 월요병이 없다. 〈TO DO × TXT〉 〈크래비티 파크〉가 올라오는 날이니까) 수많은 팀의 자컨을 본다. 자컨을 선호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오직 멤버들에게 집중할 수 있다! 별 관심 없는 MC나 패널의 리액션까지 지켜봐야 하는 기존 예능 포맷과 달리 자컨은 오직 이들만을 위한 기획으로 멤버들의 합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 둘째. 편당 길이가 25~35분 정도로 짧다. 아이돌 리얼리티 쇼는 예전부터 있어 왔지만 방송국 프로그램 편성에 맞춘 긴 러닝타임과 때때로 너무나 방송적인 연출은 ‘찐팬’이 아닌 이상 오히려 집중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었다. 셋째. 아이돌이 주인공이라는 특성상 표현 수위나 소재가 청정하다. 찜질방에서 게임을 하거나 농촌으로 MT를 떠나고, 연습실에서 체육대회를 하는 환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불쾌한 윽박지름과 부적절한 언어가 솔직함과 자극으로 포장되는 웹 예능 시장에서 자컨은 유튜브계의 실바니언 패밀리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아이돌 자컨은 어떻게 운영되는가. 대부분의 자컨은 앨범 활동기가 아니거나 장기간 투어로 인한 부재기, 팬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다람쥐 도토리 모으듯 차곡차곡 사전 제작된다. 컴백 티저가 올라올 때면 슬슬 한 시즌이 마무리되고, 그때부터 음악방송과 함께 기존 예능 프로그램을 순방하는 소위 프로모션 기간이 시작되는 식이다. 불과 1~2년 전까지만 해도 〈아는 형님〉이나 〈주간 아이돌〉에 출연하는 게 최고였지만 지금 대세는 〈문명특급〉이나 〈동네스타K〉 〈아이돌 인간극장〉〈할명수〉〈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 그리고 해외 팬들을 겨냥한 ‘hello82’ 같은 채널이다. 이미 나갈 곳이 충분히 많아 보이는데 자컨은 대체 왜 만드는 거냐고? 이는 자컨이 기본적으로 팬들을 위한 콘텐츠임을 간과한 질문이다. 내 아이돌이 이렇게나 바쁜 일정 중에도 빠짐없이 한자리에 모여 팬들을 위한 콘텐츠를 만들어준다는 것. 그 ‘마음’이 팬들에게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컨이 아니면 대체 어디에서 BTS 일곱 명이 바닥에 온통 비누칠을 한 미끌미끌한 링 위에서 축구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겠나? 현재 150회를 훌쩍 넘긴 〈달려라 방탄〉은 맏형 진이 입대한 2023년 새해에도 미리 촬영해 둔 ‘특별편’이 올라왔다. 개인 휴가를 떠난 멤버가 굳이 캠을 가지고 다니며, 휴가 중 자신의 모습을 담아 브이로그 형태로 선보이는 자컨은 콘텐츠의 내용이나 수준이 중요한 게 아니다. 개인적인 시간에도 ‘팬’을 생각하는 멤버의 마음과 의지가 그 자체로 감동인 것이다. 데뷔 15주년을 맞아 올해 처음으로 ‘자컨’을 선보인 샤이니를 비롯해 각각 데뷔 9년 차와 6년 차인 올해 자컨이라고 불릴 만한 콘텐츠를 선보인 몬스타엑스(〈몬 먹어도 고〉), 여자아이들(〈지맘대로 아이들〉)의 행보 또한 소통의 의지로 볼 수 있다. “자체 콘텐츠는 본업 이외에 아티스트의 색깔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예요. 아티스트와 함께 만드는 콘텐츠인 만큼 멤버 개인의 캐릭터가 잘 표현되기도 하고 본업에서는 볼 수 없는,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모습과 멤버간 케미까지 잘 보여줄 수 있죠. 이건 ‘자컨’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봐요.” 역시나 〈고잉 세븐틴〉 제작진의 말이다.
 
물론 자컨의 세계가 마냥 실바니언 패밀리 같이  밝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업로드 간격이 띄엄띄엄해지거나 기획력이 부족하다고 느낄 경우에는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된다. 아무리 내 아이돌에 대한 애정으로 본다지만 담력 체험, 일일 카페, MT, 골든벨, 게임방송, 체육대회, 토론, 플라잉요가 등 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비슷한 기획들이 답습될 때도 마찬가지다. 소속사별 연습실 벽을 이제는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 NCT는 이 돌고 도는 자컨 유니버스를 창의적인 방식으로 돌파하는 팀이다. 스무 명에 달하는 멤버, 고정 팀을 제외하면 유기적으로 팀 구성이 변화하는 만큼 하나의 프로그램명을 내세우기보다 활동곡의 컨셉트나 시기에 맞춘 콘텐츠를 시의적절하게 구성하는데 각각의 OAP나 구성 수준이 높다. ‘이 많은 멤버들이 과연 모두 친할까?’라는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다양한 조합의 투 샷을 볼 수 있었던 ‘어색하지만 괜찮아’는 다인원 팀의 장점을 살린 기획력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피원하모니는 시트콤 형식의 자컨을 만드는 시도를 했다. 멤버들이 고수를 만나 ‘딱밤’과 ‘독수리슛’ 비법을 전수받는다는 황당한 설정의 ‘전설의 필살기’를 선보인 이 팀은 팬들을 대상으로 자컨의 방향성에 대한 설문조사를 대대적으로 진행할 정도로 진심이다. 에이티즈의 자컨에서 멤버들이 수면 내시경을 받는 모습을 볼 때는 ‘이렇게까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렇다면 멤버들에게 자컨은 어떤 의미일까? 대부분의 K팝 아티스트 대부분은 자컨이 중요한 소통 창구이자 무대 아래서 자신들의 자연스러운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라는 것에 동의하는 듯하다. ‘즐겁게 멤버들과 놀러간다는 기분으로 촬영한다’ ‘예전에 촬영해 둔 콘텐츠가 업로드되면 당시의 추억이 떠오른다’ 실제 아티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종종 들을 수 있는 답변이다. “멤버들이 얼마나 재미를 느끼느냐가 중요하해요. 멤버들이 콘텐츠에 흥미를 느껴야 기획도 극대화되고 편집된 영상도 재미있게 나오기 때문이죠”라는 〈고잉 세븐틴〉 제작진의 말은 9년 차에 접어든 세븐틴의 자컨을 향한 진심을 보여준다. ‘인생은 콘텐츠’라고 말하는, 르세라핌 멤버들처럼 비장하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물론 여전히 가장 중요한 것은 ‘본업’,  무대 위 모습이다. 나는 어떤 팀의 자컨을 서른 편 넘게 정주행하는 동안, 그들의 뮤직비디오는 단 한 편도 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괜한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예능 콘텐츠로 유입된 라이트한 팬을 무대까지 찾아보는 팬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은 결국 좋은 곡과 실력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이토록 수많은 팀이 쏟아져 나오는 지금 무대든 편집된 쇼츠든, 이름과 얼굴이 한 번 더 각인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컨은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내는 것 아닐까? 그러니 일단 유튜브를 켜길. 당신의 소년소녀가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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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이마루
    아트 디자이너 김려은
    디지털 디자이너 장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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