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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한 연대의 맛
처음부터 그랬다. 독립적으로 일하는 게 익숙했다. 사진과 영상 기반의 작가로 활동해 왔던 나는 도시재생사업이나 재단 외주를 받아 로고와 포스터, 굿즈 등 시각디자인을 중심으로 지역을 연구하고 있다. 업무 특성상 내가 나고 자란 도시 ‘부산’ 안에서 한정적으로 일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의심할 틈 없이 혼자 일해 오면서 작업실과 집을 오가는 쳇바퀴 같은 삶이 이어졌다. 어쩌면 부산을 떠나 타지에서 한 발짝 떨어져 생각해 보면 일과 휴식의 경계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지치지 않고, 오래도록 일하기 위해 워케이션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다.
첫 워케이션 장소는 통영이었다. ‘노마드맵(@nomadmap_)’에서 진행한 ‘아워 워케이션(Our Workation)’ 프로그램을 통해 나의 본격적인 워케이션 연대기가 시작됐다. 대학원에서 공공성과 유휴공간에 대해 연구하면서 호기심이 생겼던 ‘로컬스티치 통영’으로 향했다. 이곳은 오래전 극장이었다가 은행으로 쓰였던 건축물을 리모델링해 오피스 겸 주거 역할을 하는 공간이었다. 시간을 품은 건축물이 그 흔적을 얼마만큼 간직하고, 또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하는지 직접 경험해 보고 싶었다. 문을 열고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천장이었다. 커다란 골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고, 천장 부분을 깨서 투명한 유리창으로 바꾼 실내엔 따뜻한 햇살이 스며들었다. 1층에는 부산에서 시작한 커피 브랜드 프레져스가 들어서 있었다. 잊힐 뻔했던 낡은 건축물에 젊은 감각의 브랜드가 입점하면서 새로운 세대가 오가는 또 다른 장이 됐다.
통영에서 나는 오전 8시에 일어나 요가로 마음을 다잡고, 책상 앞에 앉았다. 연초에는 비교적 큰 프로젝트가 없는 시기였기에 간단한 포스터 디자인과 오래된 건축물을 기록하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며 조용히 지낼 작정이었다. 그런데 프리 워커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네트워크 프로그램에 참석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독립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노하우와 일에 대한 열정을 이야기하는 시간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뜨거웠다. ‘나의 인생에서 일이 가지는 비율은 몇 퍼센트인가요?’라는 질문 하나로 끊임없는 대화가 이어졌다. 이때 느꼈다. 프리 워커에게도 서로의 고민과 생각을 나누는 커뮤니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노마드 워커에게 인적 자원은 보통의 직장인 못지않게 중요하다. 지금도 나는 노마드 라이프를 지향하는 사람들과 커뮤니티 앱을 통해 느슨하지만 지속 가능한 ‘관계인구’ 형태로 연결돼 있다. 서로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이 한 도시에서 만나 하루에 두세 시간 카페에 모여 일하기도 하고, 다음 워케이션의 든든한 동행이 되기도 한다. 다양한 도시의 사람들과 각자의 개성, 문화를 향유하는 일은 기분 좋은 변화를 만든다. 워케이션이 끝나고 마주한 일상이 지나치게 소소하고 쓸쓸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바쁘게 적응하다 보면 이전에 없던 활기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또 다른 워케이션을 꿈꾸고 있다. 끊임없는 영감과 새로운 프리 워커들과의 연대를 위하여.
박보은
지역의 가치 있고 재미난 일을 찾아다니는 로컬 플레이어. 부산에서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