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은 ‘○○○ 배우’ 촬영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번에는 엄정화 ‘언니’를 찍는다고 말하게 되더라고요. 언니라는 말은 어때요? 모두의 언니이자 ‘공공재’ 같은 존재잖아요
좋아요. 다른 분들도 처음 만났을 때 스스럼없이 언니라고 부르거든요. 제게는 익숙한 일이죠. 왜 그런지 곰곰이 생각해 본 적도 있어요. 정답은 내리지 못했지만, 그냥 그 말이 좋아요. 쉽게 부르기 어렵잖아요.
데님 셔츠는 Levi’s. 팬츠는 Ami. 부츠는 Versace. 베레는 Poésie D’âme.
엄정화의 ‘여동생’들이 어떤 모습을 보고 싶어 할지 떠올려보니 디바의 카리스마도 좋지만, 그저 귀엽고 다정하고 꽤 자유분방한 얼굴도 있겠다 싶었어요
저 귀여웠나요(웃음)? 사람들과 작업하는 일이 즐겁고, 어렵게 느껴지지 않아요. 새로운 작품에 도전할 때 고민은 많이 하는 편인데요. 재미있게 읽히는 대본은 몇 페이지만 보고 결정하는 과감한 면도 있죠.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순간도 즐겁게 받아들여요.
쉴 때 아니겠어요(웃음)? 드라이브보다는 반려견 슈퍼와 산책할 때. 함께 발맞출 수 있으니까요. 슈퍼와는 세상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데님 셔츠는 Levi’s. 팬츠는 Ami. 부츠는 Versace. 베레는 Poésie D’âme.
지난여름 〈우리들의 블루스〉와 강렬하게 마주했는데, 올 초여름엔 〈닥터 차정숙〉으로 시청자와 만나죠. 짧은 머리에 의사 가운을 걸친 엄정화가 꽤 낯설게 다가와요
〈홍반장〉에서도 가운을 입었지만, 몇 컷 나오지 않았어요. 이번에는 낯설기보다 편했죠. 옷을 많이 갈아입지 않아도 되니까(웃음). 사실 의학 장르를 기다리던 차에 만난 작품이에요. 의사와 환자의 고충이 담긴 병원 이야기를 좋아하고, 차정숙이란 여자의 성장기에 모두 공감해 줄 것 같았거든요.
오버사이즈 코트와 슬리브리스 톱, 뮬은 모두 Bottega Veneta. 브리프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20년 차 주부에서 1년 차 레지던트가 된 정숙이 왜 그리 좋던가요
누구든 인생에서 무언가를 크게 자각하는 시기가 있는데, 그때 흔들리기보다 되려 과감한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늦었다고 푸념하거나 이제 와 무얼 할 수 있겠냐며 위축되거나 포기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냥 용감하게 뛰어드는 정숙이 좋았어요.
블레이저와 스커트는 모두 Ferragamo. 블랙 슬리브리스 톱은 Michael Michael Kors. 스타킹은 Valentino. 로퍼는 Marni.
엄정화도 30년간 좋아하는 일에 과감히 뛰어들었죠. 차정숙에게서 자신을 발견했나요
닮은 점을 발견했다기보다 그냥 이 여자가 가진 용기와 따뜻함을 사랑했어요. 가끔 촬영 끝나고 집에 가면서 속으로 ‘내가 이런 이야기를 그릴 수 있어서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했어요.
늘 또래 여자들의 다양한 인생을 보여주는 작품을 좋아한다고 말해 온 것과 일맥상통하는 선택이네요
40대 후반을 지나다 보면 가끔 슬픈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이렇게 살다 인생이 끝나는 건가 싶고, 신체적 변화도 크게 다가오고…. 순응할 것인지, 사소하더라도 스스로 변화를 줄 것인지 그 선택지가 담긴 작품이에요. 저는 늦었다고 생각지 말고 좋아했던 걸 다시 해보라고 응원하는 쪽이거든요. 요즘 다시 운동을 시작해서 꽤 자신감이 생겼어요. 원대한 꿈이 아니더라도 그냥 자신을 위해 해보는 거예요. 뭐든 하다 보면 새로운 시야가 열리죠.
직접 표현해 온 여성들의 말과 행동에 위로받은 적도 있나요
정숙이 ‘내가 이 집 부엌을 떠나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됐는데, 다시 그대로 머물 수 없지’라는 식의 대사를 뱉는데 쾌감을 느꼈어요. 집안일을 때려치우는 것에 방점이 있기보다 스스로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자는 거죠.
극중 남편인 서인호 역의 김병철 배우와 티키타카가 기대돼요. ‘진짜진짜 너무 좋아!! 김병철 배우를 만날 수 있어서 감사해!’라는 SNS 게시글 만으로도 케미가 느껴져요
정말 좋은 파트너! 피곤해서 분장실에 있으면 “밥 먹었어?” “요즘 어때?” 하고 슬쩍 먼저 얘기해 주고, 허심탄회하게 고충도 나누고요. 그 마음이 하나도 부담스럽지 않고 담백한 진심이 있는 사람이에요.
슬리브리스 톱은 COS. 미니스커트는 Acne Studios. 펌프스 힐은 Jimmy Choo.
스커트를 자주 입고 싶어요! 진짜 잘 안 입거든요.
마지막 착장으로 입은 스커트가 정말 잘 어울리던데요. 매번 다양한 얼굴의 엄정화와 마주해 왔다고 생각했지만, 오늘 함께한 짧은 순간만으로도 ‘이 여자가 지닌 매력은 더 무궁무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요
뭐든 끝났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끝날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생각은 안 해요. 앞으로 계속 가고 싶고, 또 가야 하니까, 좋아하는 일이니까. 어쩔 수 없이 결점을 더 많이 보게 되는 시기인데요. 오늘은 그간 해왔던 화보 작업과 완전히 다른 느낌이라 컨셉트에 잘 어우러지고 싶은데 ‘과연 어울릴까?’ 걱정도 했죠. 하지만 모두의 응원이 느껴지니 ‘우리 얼마든지 만들 수 있어!’라며 즐겁게 나를 던졌는데, 저 좀 예쁘던걸요(웃음)? 이런 성취의 순간은 정말 기뻐요. 극과 극으로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 갈망은 항상 있으니까.
슬리브리스 톱은 COS. 미니스커트는 Acne Studios. 펌프스 힐은 Jimmy Choo.
왠지 엄정화의 경력쯤 되면 모든 것에 초탈할 것 같은데요
최근 ‘커피차 부자’가 됐죠. 김혜수부터 이병헌, 송혜교, 이효리까지 세상 커피차를 다 불러 모으더군요
일을 오래 해서 그렇죠 뭐. 저도 이번에 놀랐어요. 세트장에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거든요. 인증 샷들이 좀 철딱서니 없어 보여도 그만큼 기쁘고 고마우니까 꼭 ‘점프 샷’으로 찍어요.
슬리브리스 톱은 COS. 미니스커트는 Acne Studios. 펌프스 힐은 Jimmy Choo.
함께하는 사람들을 변함없이 좋아할 수 있는 비결은
정말 열심히 하잖아요. 그 마음이 숭고하다고 느껴져서 다 예쁘고, 안아주고 싶고, 잘 지내고 싶어요. 내가 현장을 불편하게 만들면 모두가 불편해지는데, 그들의 하루를 망치고 싶지 않거든요. 그건 스스로에게도 참 별로고요.
그럼에도 가장 날 서고 삐딱했던 시절을 돌이켜본다면
‘초대’와 ‘몰라’ 음반 활동을 할 무렵, 한창 바쁠 때였죠. 스케줄이 많아서 매니저들이 고생했어요. 한번은 너무 힘들어서 가발을 뜯어 바닥에 집어던지며 “난 못 가! 못해!”라며 드러누운 적도 있어요. 그래놓고 결국 가긴 가야 된다 싶어서 다시 주섬주섬 주워 부산까지 공연하러 갔지만. 차 안에서 직접 분장도 하면서(웃음).
슬리브리스 톱은 COS. 미니스커트는 Acne Studios. 펌프스 힐은 Jimmy Choo.
최근 유튜브 채널에 공개한 ‘내 구두 구경할래?’ 편 반응이 뜨거워요. 구두와 함께 걸어온 추억을 얘기하는 ‘찐’으로 신난 얼굴이 예뻤거든요. 유튜브로 소통하는 일은 즐겁나요
세대가 바뀌어도 좋아해 주는 분들과 계속 제 모습을 공유하고 싶어요. 사실은 그냥 재밌어서 찍는 거예요!
오버사이즈 코트는 Bottega Veneta.
오래 아껴온 구두처럼 자신을 두고두고 아끼는 팁이 있다면요
모두 자신에게 제일 가혹해요. 주변에서 괜찮다고 칭찬하는데도 아닌 것 같고. 얼마 전 효리와도 과거 영상을 보며 “우리 그때 참 잘했는데”라고 말했더니 효리도 “언니, 우리 잘했더라고요”라고 해요. 그런데 한 번도 스스로 칭찬한 적 없대요. 저도 그랬거든요. 물론 부족한 면을 채우려는 태도가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스스로 칭찬해 주는 연습을 해야 해요.
슬리브리스 톱은 Michael Michael Kors. 스커트는 Valentino. 블랙 힐 로퍼는 Tod’s.
사소한 순간인데요. 그냥 제가 잘 웃어서 좋아요.
오늘 화보에도 담긴 여유로운 웃음이 쉽게 만들어진 건 아니겠죠. 매 순간 엄정화를 지탱해 온 힘은
원하는 꿈을 계속 좇는 제가 좋아요. 물론 그 점이 다시 저를 힘들게 하지만요. 사실 제 꿈이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그럼에도 답은 ‘그냥 난 이 일을 계속하고 싶어’로 귀결되죠. 원하는 걸 정확히 알고, 멈추고 싶지 않은 마음이랄지.
홀터넥 드레스는 Tod’s. 데님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롤모델 엄정화’를 검색하면 기사가 쏟아져요. 후배들의 롤모델로 자리한 당신이 의지하는 존재는
〈댄스가수 유랑단〉에서도 함께하는 김완선 언니, 보아, 효리는 물론 화사도 마찬가지죠. 멋지게 자기 일을 해온 사람들이니까. 제 친구들인 이소라, 홍진경, 정재형, 김동률도 멋있잖아요. 시간이 흘러도 사라질 수 없는 존재들. 기운 빠질 때 전화하면 가벼운 한 마디만 들어도 힘이 나요.
‘어릴 때는 어리다고 생각 못 하던 내 어린 시절’이라고 SNS에 올린 과거 사진 한 장에서도 많은 의미가 읽혔습니다. 훗날 돌이켜보면 지금의 엄정화도 가장 어리겠죠
‘나 50대 너무 예뻤지’ 그러겠죠? 지금 60대 분들은 저를 보며 그때가 제일 어릴 때야, 하실 텐데(웃음).
차정숙은 인생 제2막을 리부팅하죠. 엄정화는 지금 몇 막쯤 와 있을까요
저도 2막. 한 챕터는 확실히 지나간 것 같고요. 시간상으로 또 다른 챕터가 끝나가고 있고, 어쩌면 이미 끝났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계속 갈 거니까요.
체크 패턴 재킷과 블라우스, 로퍼는 모두 Gucci. 데님 팬츠는 Khaite by M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