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위는 덴마크 출신의 인테리어 브랜드다. 경쾌한 색감과 군더더기 없는 형태가 특징이다. 물병이나 꽃병, 보울, 트레이 등을 만드는데 꼭 그대로 사용할 필요는 없다. 물병엔 물 대신 꽃을 꽂아도 되고, 트레이는 부엌 대신 작업실에 놓아도 제 할 일이 있다는 뜻이다. 라위의 제품은 이곳저곳에서 이것저것을 담아도 두루 어울리며, 심지어 텅 비어 있을 때조차 아름다운 오브제로 기능한다. 그렇게 유연하고 풍요로운 브랜드는 누가 만들까? 오렌지색 빛이 쏟아지는 봄날에 더콘란샵에서 라위의 두 창업자 보 로하우게와 니콜라이 위그 한센을 만났다.
더 콘란샵에서 라위의 제품을 앞에 놓고 포즈를 취한 두 창립자, 보 로하우게와 니콜라이 위그 한센.
서로를 안 지는 꽤 오래됐다. 각자 다른 일을 하면서 사무실을 나눠 쓴 적도 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동업을 생각했다. 공동의 비전을 가지고 창의적인 일을 도모할 날을 기다려 왔다. 그러던 중 니콜라이가 덴마크의 한 뮤지엄에서 전시에 참여할 물품을 디자인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때가 됐다고 느꼈다. 저그와 꽃병을 디자인해 출품했고, 그게 스트롬 컬렉션의 첫 제품이자 라위의 시작이었다.
저그와 꽃병, 두 제품으로 브랜드를 시작했단 건가?
운이 좋았다. 인스타그램 계정만 생성해놓고, 그 어떤 광고나 마케팅도 하지 않았다. 그럴 예산도 없었고. 그런데 제품이 출시되자 세계적인 뮤지엄에서 우리가 만든 시리즈를 주목해줬다. 모마, 테이트 모던, 루이비통 재단 등에서 연락을 받았고, 그들에게 제품을 판매할 수 있었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뮤지엄을 사로잡은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쉽다는 것. 라위의 제품은 어느 공간이든 어울린다. 그런데 또 존재감도 확실하다. 풍성한 색채와 단순한 형태로 공간에 매력과 활기를 더해준달까. 범용성도 장점이다. 라위의 제품은 여러 목적으로 사용 가능하며, 사용하지 않을 땐 조각처럼 오브제로 두어도 될 만큼 멋지다.
차분한 말투와 인자한 미소로 인터뷰를 이어간 라위의 창립자 보 로하우게.
디자인에 대한 영감은 20세기 입체파와 원시미술에서 찾는다고.
원시미술엔 부연 설명이 필요 없다. 화려한 말로 포장하기보다 작품 그 자체로 의미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원시미술은 라위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과 맞닿아 있다. 한편, 모두가 아는 것을 색다른 방식으로 해석하는 입체파와 구성주의에서도 영감을 찾는다. 거기서 비율과 색감, 리듬의 힌트를 얻는다. 그래서인지 고객은 라위의 제품을 보고는 저마다 다른 감정을 느끼는데 그게 흥미롭다.
라위의 캔버스 컬렉션. 니콜라이 위그 한센은 사무실에선 연필꽂이로, 부엌에선 주방 도구를 정리함으로 활용한다. 라위는 제품을 사용하는데 각자의 창의력을 사용해보라고 말한다.
보(보 로하우게)는 라위 이전에 금융업에 종사했고, 나(니콜라이 위그 한센)는 디자이너 출신으로 라위에서는 아티스틱 디렉터를 맡고 있지만 보와 나는 전통적인 회사처럼 역할을 구분해 일하진 않는다. 열정과 미감을 공유하는 게 우리 방식이고 매 단계와 과정에서 충분히 대화를 나눈다. 우리가 특출난 구석은 의견을 나누고 논의하는 일이다. 라위는 대화로 운영되는 브랜드란 의미다. 공장의 직원과의 대화를 통해 생산을, 아티스트와의 대화를 통해 협업을 진행한다.
아티스틱 디렉터인 니콜라이 위그 한센은 1990년 디자인 스튜디오를 연 이래 의자부터 식탁, 조명, 세라믹 등 다채로운 디자인 작업을 해왔다. 그 여정을 지나 소품을 디자인하는 브랜드 라위를 창립했는데 그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현재 소품만 만나볼 수 있지만 당장 올해부터 선반과 스툴, 벤치 등으로 라인을 확장한다. 앞으론 부피가 더 큰 가구도 제작할 예정이다. 전통적인 가구뿐 아니라 테크 제품을 디자인할 수도 있고 아트에 관련된 프로젝트를 할 수도 있다. 하고자 하는 영역에 제한을 두고 싶진 않다. 라위는 창의적인 플랫폼이다.
라위의 띵 컬렉션. 스툴 혹은 사이드 테이블 등으로 사용할 수 있다.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신제품에 대한 고민이 라위의 동력이다. 지금까지 만든 라위의 제품을 하나도 빠짐없이 즐기고 아끼지만 그와 동시에 앞으로 나올 제품에 대해 고대하고 있다.
라위의 제품이 모두 핸드메이드라는 사실에 놀랐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제품과 차별화가 되는 부분이 있다고 믿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선택이다.
효율만큼이나 따뜻한 손길을 중요시한다. 라위의 모든 제품은 마지막 단계에서 사람을 거치는데, 한끗 차이지만 품질을 위해 결코 생략할 수 없는 요소다.
라위의 아티스틱디렉터. 니콜라이 위그 한센. 그는 인터뷰 내내 제품을 직접 들고 만지면서열정과 감출 수 없는 장난기를 드러냈다.
라위의 철학은 가식 없는(unpretentious), 노력하지 않은 세련됨(effortlessly stylish aesthetic), 단순함과 미니멀리즘(simplicity and minimalism)이다. 이를 사람에 빗댄다면?
코코 샤넬. 자신만의 스타일과 미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실용적인 방식을 유지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점점 공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공간을 꾸밀 때 팁을 전수해준다면?
화이트나 베이지, 브라운, 블랙 같은 보수적인 컬러의 공간에 작은 것이라도 밝은 컬러의 제품을 두는 것. 기분 전환에도 좋고 창의력 향상에도 도움을 준다. 색상의 활용이 정신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믿고 있기에 나 역시 과장되지 않는 선에서 색을 가능한 한 많이 활용해보려고 한다.
라위의 렐라이 컬렉션. 물이나 물체가 들어있을 때 빛이 반사하고 꺾이는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도록 디자인했다. @raawii.dk
요즘은 비싼 가격표가 좋은 취향과 동일시되기 쉬워 아쉽다. 그중에서 라위의 철학대로 ‘가식 없는’ 취향을 갖는 방법은?
값비싼 물건으로만 채우는 것이 세련된 취향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것에 동의한다. 새것과 오래된 것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다. 인테리어를 예로 든다면, 공간에 오래된 빈티지 가구나 포스터 등을 활용해보는 것이다. 값이 나가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추억이 깃든 소품을 활용하는 일도. 여행지의 추억을 불러오는 기념품, 동생과 서로 갖겠다고 경쟁하는 엄마의 5달러짜리 그릇 같은 물건 있지 않은가.
운 좋게도 로컬 세라미스트를 만나고 그들이 만든 제품을 집에 가져올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념할 만한 것은 아무래도 새로운 사람과 문화를 만나며 나눈 대화와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