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스 슬립 드레스에 금속 체인으로 장식한 묵직한 미니 백을 매치해 무게감의 차이를 표현했다.
로마에 근간을 둔 펜디 하우스의 세계를 탐험하는 킴 존스가 자신 의 비전을 펼쳤다. 이번 2023 S/S 오트 쿠튀르 시즌에 그는 이탤리 언의 고유 미학을 패션으로 풀어냈다. 그 중심에는 ‘스프레차투라 (Sprezzatura)’ 정신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탈리아어로 ‘거만하게 굴 다, 무시하다’는 뜻의 이 단어는 르네상스시대를 거치면서 ‘어려운 일을 쉬운 것처럼 해내는 능력, 힘든 일을 세련되고 우아하게 다루 는 방식’이라는 의미로 진화했다.
드레이핑을 더해 유연하게 흘러내리는 실루엣을 강조한 룩.
이탤리언은 이 정신을 최고의 미 덕으로 삼는다. 미켈란젤로, 스트라디바리 같은 천재들이 자신의 작업방식을 철저히 비밀에 부친 이유도 바로 이 스프레차투라 정신 때문이다. 킴 존스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착안해 패션 필드에서 가 장 진중하고 엄숙한 오트 쿠튀르 컬렉션에 ‘가벼움의 미학’을 불어넣 었다. 우리 몸이 가장 가벼운 상태, 즉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태에 가까운 란제리를 핵심 요소로 삼은 컬렉션을 선보인 것.
“가벼움에 집중하고 싶었어요. 저에게 오트 쿠튀르는 항상 무겁고 심각하게 느껴졌거든요.” 그의 말을 듣고 나니 우주선처럼 새하얗게 칠한 패 션쇼장이 궁극적인 가벼움을 실현하는 무중력 공간처럼 느껴졌다. ‘무게’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각을 시각적으로 풀어낸 킴 존스의 표현도 탁월했다. 갑옷처럼 묵직한 금속이 연상되는 메탈릭 실버 드 레스를 오프닝 룩으로 시작해 베이지와 파스텔 핑크, 스카이 블루 등 점점 더 밝고 옅은 컬러가 등장했고 소재 역시 레이스와 시폰, 튤 처럼 얇고 속이 비치는 소재로 변주됐다.
쇼의 흐름을 따라 무거운 것이 점차 가벼워지는 변화를 담아낸 것. 하나의 룩 안에서도 무게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가볍게 하늘거리는 튤 드레스에 등산용 카 라비너 모양의 묵직한 이어링과 메탈 하드케이스 백을 매치하는 식 으로 무게 대비를 강조한 것. 킴 존스가 의도한 가벼움의 미학은 펜 디의 장인 정신을 통해 더욱 정교하게 실현됐다. 금속 체인을 촘촘 히 엮은 것처럼 보이는 실버 글러브는 레이저 커팅 기법으로 정밀하 게 가공한 가죽을 사용해 금속의 단단함과 가죽의 유연함을 동시 에 담아냈고, 선녀의 날개처럼 기다랗게 늘어지는 윙 슬리브는 탈 착이 가능해 한층 더 가벼운 스타일이 됐다.
이렇듯 킴 존스는 오트 쿠튀르의 전형적인 표현 방식인 과장된 화려함에서 벗어나 오히려 시간을 두고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그 속에 감춰진 섬세함을 발견 할 수 있는 새로운 아름다움을 제시했다. 그것도 ‘무심한 듯하지만 세세하게, 유유자적하면서도 능수능란하게’로 함축되는 스프레차 투라의 정신을 완벽하게 계승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