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맞잡고 피날레 무대에 등장한 버지니 비아르와 자비에 베이앙.
버지니 비아르의 뮤즈는 가브리엘 샤넬이다. 그녀는 살아생전 샤넬이 남 긴 발자취를 탐구하고, 가브리엘 샤넬이 느꼈을 기분과 감정을 상상하 며 자신만의 패션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번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위 해 그녀는 가브리엘 샤넬이 많은 시간을 보낸 공간이자 하우스의 근원인 캉봉가 31번지 아파트로 향했다.
평소에도 종종 그곳에 들러 마드모아 젤 샤넬의 숨결을 느끼곤 한다는 버지니 비아르는 2023 S/S 오트 쿠튀르 컬렉션의 영감을 찾던 중 눈길을 끄는 사물을 발견했다. 신비로운 오리 엔탈풍의 중국 병풍과 화려하게 빛나는 크리스털 샹들리에, 앤티크 분 위기 물씬한 원목 가구 사이에서 우화집 한 권이 눈에 들어온 것. 호화로 운 아파트 무드와는 사뭇 다른 사물이었다. 그러고 보니 가브리엘 샤넬 의 아파트에는 사자과 사슴, 새, 낙타 등 동물 모양을 한 오브제와 조각 이 가득한 게 아닌가.
벽을 메운 그림에도 여러 동물이 등장하는 것은 물론이다. 버지니 비아르는 샤넬이 수집한 동물의 세계를 둘러보며 한 편의 동화를 떠올렸다. 때묻지 않고 순수한, 낭만적이고 희망찬 동화같 은 컬렉션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 그리고 그 꿈을 실현해 줄 조력자로 아 티스트 자비에 베이앙을 선택했다. 몇 차례 샤넬과 호흡을 맞춘 적 있는 자비에 베이앙은 버지니 비아르의 영감에 자신의 상상력을 보탰다.
두 사람이 함께 쓴 동화같은 이야기는 오트 쿠튀르 컬렉션 이튿날인 1월 24 일,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자비에 베이앙이 재해석한 동물 모양의 거대 설치미술이 하나 둘씩 쇼장에 자리하자 그 사이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 스〉에 등장하는 토끼처럼 높게 솟은 중절모를 쓴 모델 비비언 로너가 사뿐사뿐 걸어나왔다. 비즈와 깃털로 장식한 미니스커트 위에 정갈하게
높이 솟은 톱 햇은 컬렉션에 동화적 무드를 더한다.
재단된 화이트 재킷을 입은 그녀는 아기자기한 인형극의 주인공처럼 보였다. 곧이어 짤막한 스커트를 매치한 트위드 세트업과 기다란 코트 드레스, 섬세하게 주름을 잡은 튤을 층층이 쌓아 뭉게구름처럼 부풀린 화 이트 드레스가 줄지어 등장했다. 버지니 비아르는 동화 속 동물 마을에 축제가 열린 모습을 상상하며 퍼레이드 요소를 컬렉션 곳곳에 심어 두었다.
거의 모든 룩에 등장하는 검은색과 흰 나비 보타이, 화이트 글러 브, 레이스 부츠와 새틴 망토가 그것이다. 샤넬이 펼쳐낸 동화는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더욱 흥미롭다. 컬렉션의 요소마다 숨겨둔 동물 모티프 를 찾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우아한 화이트 재킷에는 금색 실로 수 놓은 새와 사슴 모티프가 숨어 있고, 골드와 블랙 컬러로 촘촘하게 짜낸 트위드 수트에는 웰시코기 강아지의 얼굴이, 시퀸을 수놓은 벨트에는 곧 장 뛰어오를 것 같은 토끼 모티프가 우리 시선을 기다렸다는 듯이 반긴 다. 피날레를 장식한 화이트 미니드레스 역시 빠질 수 없는 하이라이트 룩이다.
섬세한 자수 장식 사이에서 사슴 모티프를 발견할 수 있다.
클래식한 트위드 룩에 나비 넥타이와 화이트 글러브로 위트를 더했다.
요정 같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베일과 드레스 전체에 제 비 모티프를 수놓아 낭만을 노래한 것. 이렇듯 사람들의 마음속에 잠들 어 있던 순수한 동심을 일깨운 버지니 비아르의 동화는 열광적인 기립 박수로 이어졌다. 지드래곤과 틸다 스윈턴을 필두로 수많은 관객이 자리 에서 일어나 환호성을 보냈다. 버지니 비아르는 이에 호응하듯 자비에 베 이앙과 함께 손잡고 무대 곳곳을 거닐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가브리 엘 샤넬이 전 세계에서 수집한 동물 오브제들이 버지니 비아르의 풍부 한 상상력과 하우스의 장인 정신을 통해 생명력을 얻은 순간이었다.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까지 정교하게 완성된 2023 S/S 오트 쿠튀르 컬렉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