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에게 패션이나 미식처럼 문화의 일부인 향수와 와인. 하이엔드 향수 브랜드
킬리안(Kilian Paris)은 전통적인 프랑스 럭셔리 분야를 자신만의 대담한 방식으로 창조한 킬리안 헤네시의 도전이다. 와인을 증류한 코냑을 만드는 헤네시가의 상속자로 태어난 킬리안 헤네시. 어린 시절의 경험 중 그가 빼놓을 수 없는 곳은 단연 코냑 저장고. 증류된 와인의 향과 오크 배럴의 스모키함, 설탕의 단내까지 우아한 풍미를 자랑하는 코냑이 삶의 일부분이었던 킬리안에게 브랜디가 아닌 향수로의 여정은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가문의 전통을 이을 만한 새로움을 찾던 킬리안은 자연스럽게 향으로 관심을 돌렸고, 다양한 원료를 접하며 복잡하고 미묘한 향수의 세계에 매료됐다. 향에 관한 논문을 준비하던 어느 날 젊은 조향사와 인터뷰할 기회가 찾아왔고, 그 사람은 현재 루이 비통의 전속 조향사가 된 자크 카발리에(Jacques Cavallier)였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으로 자크는 킬리안이 조향사로 활동하는 10년 동안 든든한 멘토가 돼주었다. 크리스찬 디올, 파코 라반, 알렉산더 맥퀸과 같은 굵직한 향수 브랜드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며 경험을 쌓아온 킬리안은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는 향수 제작에 대한 욕망이 끓어오르고 있음을 느꼈다. 우연히 파리의 바카라 뮤지엄에 들른 그는 한 세기 동안 바카라의 아름다운 병으로 제작된 향수에 매료됐다. 정교한 공예 기술에 넋을 잃은 킬리안은 명품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고객들에게 이런 경험을 선사하겠노라고 다짐하기에 이른다.
그 후 2007년 10월,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 ‘킬리안’이 탄생했다. 그의 명확한 취향과 안목이라는 기준에 칼같이 재단된 제품은 향수가 예술 작품으로 인식되던 19세기 전통 방식으로 돌아가되, 현대적 감각을 더한 것이 특징이다. 아르데코 정신을 반영한 보틀의 측면에는 아킬레스 방패에서 영감받은 문양이 각인돼 향수가 단지 유혹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보호하는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표현했다. 킬리안은 에코 럭스 철학을 기반으로 한 재활용 보틀, 킬리안만이 보여줄 수 있는 헤네시의 유산과 서사가 담긴 스토리, 오래 지속되는 어코드를 위한 퀄리티 높은 원재료까지, 대대로 물려받은 럭셔리 감성과 비전을 바탕으로 완벽한 결과물로 탄생했다. 한번 맡으면 잊을 수 없는 풍부하고 대담한 향은 마치 술에 취하듯 거침없이 마음을 끌어당겨 향수 애호가들이 지금까지 사랑하는 작품이 된 건 아닐는지. 헤네시라는 이름은 가계를 의미하지만, 킬리안이라는 이름은 열정의 개인화로 올해 창립 15주년을 맞는다. 이를 기념해 브랜드의 시작인 프랑스 유산을 재조명하며, 밤하늘을 관통하는 에펠탑의 화려한 빛을 패키지에 시각화했다. 전 세계 1,000개 한정 수량으로 제작된 15주년 기념 보틀을 비롯 굿 걸 곤 배드 바이 킬리안 · 러브 · 돈 비 샤이 · 엔젤스 셰어 등 킬리안의 시그너처 향수를 여행용 케이스와 구성한 아이콘 세트까지 어느 때보다 다채로운 구성으로 가득할 예정. 무색이었던 술이 숙성을 통해 황금빛으로 변하며 가치를 인정받듯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묵묵히 자신만의 희소성을 갖추기 위해 노력한 킬리안. 10월 파리를 시작으로 전 세계 15개 도시에서 15주년 기념 월드 투어를 시작한 킬리안 헤네시와 〈엘르〉 코리아가 이야기를 나눴다.
오크 앱솔루트, 시나몬, 통카빈, 코냑 에센스의 조합이 강렬한 엔젤스 셰어, 50ml 29만5천원 대, Kilian Paris.
여타 브랜드와 달리 향수 원료의 이름을 제품명으로 짓지 않습니다. 좋은 향수는 후각적으로 완성되기 전에 훌륭한 이야기부터 시작하죠. ‘장미’ ‘백단향’이라는 이름이 어떤 정서를 표현할 수 있을까요. 백단향으로 향수를 만들면 ‘신성한 나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게 훨씬 와닿을 것 같아요. 원재료의 품질, 공급 방식을 개선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어요. 저는 진정한 명품은 영원히 지속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킬리안의 향수병은 리필이 가능하도록 제작했어요. 그래서 소비자가 구매하는 킬리안 향수병은 평생 간직할 수 있습니다. 킬리안은 모두가 선망하는 명품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쓰레기를 줄이고 지속 가능성에 앞장서 왔습니다. 이제 많은 브랜드가 매장에서 향수 리필을 제공하는 데 동참하고 있습니다. 킬리안은 브랜드 론칭부터 이 부분을 지켜온 주요 이념이었고, 저는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향수에 담긴 스토리를 ‘시나리오’라고 표현하더군요. 킬리안은 향수의 이름 그 자체로 감정을 전달하는 독특한 제품명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까지 작업한 향수 중 순식간에 시나리오가 떠오른 제품이 있나요
최근 창작물인 ‘코롱, 실드 오브 프로텍션(Kologne, Shield of Protection)’이 완벽한 사례인 것 같아요.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 몇 달간 뉴욕에서 머물렀습니다. 마침내 집(파리)으로 돌아가게 됐을 때, 기내 화장실에 비치된 클라랑스의 오 디나미상트(Eau Dynamisante) 보틀이 눈에 띄었죠. 병의 절반을 저에게 쏟아부었습니다. 마치 18세기에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코롱을 사용했던 것처럼요. 비행기가 착륙하자마자 조향사이자 평생 함께해온 친구 칼리스 베커(Calice Becker)에게 “나만의 보호막이 필요하다”며 작업을 시작했고, 그로부터 석 달 만에 ‘코롱, 실드 오브 프로텍션’을 완성했습니다. 저는 모든 것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예술과 음악, 영화, 문학에서 영감을 얻곤 하지만 늘 고민하는 건 가족의 헤리티지와 문화, 개인적인 삶과 연결된 진정한 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 킬리안이 선보인 향수의 이름은 독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전적입니다. 킬리안 향수는 곧 저에 대한 모든 것이죠.
그 자체가 브랜드인 킬리안의 창립자 킬리안 헤네시.
당신의 조향 인생에 헤네시 가문은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향수와 코냑을 만드는 일은 많은 부분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특히 시간이 지남에 따라 깊어지는 복잡한 창조물이라는 점에서요. 킬리안 향수는 설탕과 알코올, 오크 배럴 등 코냑 저장고에 대한 후각적 기억을 담고 있습니다. 가령 ‘엔젤스 셰어’는 헤네시 가문이 사용하는 용어로, 코냑 숙성 기간 동안 일부가 자연적으로 증발하는 비율을 의미합니다. 신에게 바친다는 뜻을 갖고 있죠. 킬리안 향수 중 가장 개인적인 향이자 시그너처 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향수를 제작하는 데 14년이 걸렸으니 코냑과 닮은 건 맞네요.
진정한 럭셔리는 영원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반짝 유행하고 사라지는 향기가 아닌, 세대를 잇는 마스터피스로 말이죠. 킬리안의 마스터피스를 꼽는다면
킬리안 향수는 향의 계열에 따라 다섯 가지로 구분됩니다. 더 프레쉬, 더 나르코틱스, 더 셀러, 더 스모크, 더 리쿼. 마스터피스를 하나만 꼽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러브, 돈 비 샤이(Love, don’t be Shy)’라고 답하겠어요. 러브, 돈 비 샤이는 더 나르코틱스 계열에 속하는 향수로 15년 전 조향사 칼리스와 협업한 첫 번째 향수입니다. 출시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킬리안의 톱 셀러에 속하는 향이죠. 오렌지 블로섬과 바닐라가 블렌딩된 마시멜로 향에서 영감받아 사랑하는 연인을 깨물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맛있는 향입니다.
엔젤스 셰어, 로즈 온 아이스, 보드카 온 더 락스, 루흐 베르트, 애플 브랜디 온 더 락스 등 브랜드의 시그너처 향수들이 미니어처로 구성된 15주년 미니어처 세트, 32만원대, Kilian Paris.
어느덧 2022년의 마지막을 앞두고 있습니다. 수많은 연말 행사를 앞두고 있겠군요. 얼마 전 파리에서 진행한 15주년 파티에서 대담하고 화려한 ‘킬리안’식 나이트라이프를 몸소 체험하고 왔습니다. 킬리안에게 ‘나이트라이프’는 무엇을 의미하나요
15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로 전 세계 15개 도시에서 15개의 파티를 주최하며 킬리안 브랜드의 모든 친구, 고객들과 축하하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10월부터 시작해 파리, 밀란, 런던, 베를린, 두바이, 쿠웨이트에서 행사를 마쳤고 다음 도시에서 이어질 파티에 무척 들떠 있어요. 당신이 파리에서 느낀 그대로 나이트라이프는 제 모든 창작물과 캠페인에 표현된 우리 브랜드를 구성하는 DNA입니다. 저에게 밤은 무한한 가능성입니다. 더 이상 성별이나 계급 같은 요소는 중요하지 않아요. 플레이풀하고 포용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무한한 가능성만 있을 뿐이죠. 우리 향수와 캠페인에 담겨 있는 모토는 언제나 동일합니다. 러브, 돈 비 샤이!
향수 외에도 메이크업 쪽에 신경 쓰고 있습니다. 입술과 눈은 향수와 더불어 여성의 궁극적 유혹의 무기이기 때문이죠.
킬리안 향수의 시나리오처럼 인터뷰의 제목을 직접 지어주신다면
‘Straight to Heaven with Kil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