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정체불명의 꼼 데 가르송, 레이 카와쿠보의 최초의 순간들

속을 알 수 없는 무심한 표정과 속내를 지닌채 정체불명의 옷을 선보이는 레이 카와쿠보. 현존하는 디자이너지만 형용할 수 없는 그런 디자이너로 꼽힌다. 꼼 데 가르송의 옷을 정의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우며 꼭 맞아 떨어지는 절묘한 단어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꼼 데 가르송의 역사를 되짚으니 그녀가 이뤄낸 패션의 최초의 순간들을 만날 수 있었다.

프로필 by ELLE 2012.10.05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레이 카와쿠보의 의외로 마케팅 부서에서 일을 시작했다. 스물네 살 무렵 광고부에서 일하던 그녀에게 TV광고 스타일링을 담당해보라는 제안이 들어왔고 점차 그 일에 빠져든 카와쿠보는 프리랜서 스타일리스트로 독립을 선언한다. 이것이 바로 일본 최초의 스타일리스트의 시작이다.

카와쿠보는 ‘꼼 데 가르송(Comme des garcons)’이란 브랜드로 일본의 패션계를 이끌며 성공적인 길을 걸었다. 그녀에게 세계 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파리 패션쇼에서 카와쿠보와 요지 야마모토를 초청한 것. 시작은 아주 작았다. 소규모의 컬렉션을 제작해 6명의 모델들에게 입혔고 쇼는 호텔 방 안에서 이뤄졌다. 쇼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다. 비평가들은 비대칭 컷과 너덜너덜한 미완성의 의상들을 두고 원자폭탄의 후유증, 히로시마 시크라고 비판했다. 여성의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서구 패션에 대항하는 안티 패션은 충격과 이슈 그 자체였던 것. 그러나 신랄한 비평은 곧 ‘추(醜)의 미학’으로 해석되며 새로운 패션을 구현했다.

레이 카와쿠보는 고집이 세고 완고한 아방가르드 시각을 지닌 디자이너였다. 다시 태어나면 디자이너를 하지 않겠다며 고개를 젖는 그녀지만 일년 365일, 강하고 새로운 옷을 만들기 위한 패션 철학은 여전하다.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그 무언가를 발견하기 위해 여느 디자이너들과는 다른 새로운 소재와 신선한 조합에 힘쓴다. 매 컬렉션마다 자신이 직접 직물은 디자인하고 수공예적 기법을 이용한 독창적인 소재를 만들어왔다. 동일한 소재를 반복해서 쓰거나 한 번 사용한 부자재를 다시 쓰지 않았다. 혁신이라 일컫는 그녀의 도전과 실험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레이 카와쿠보는 글래머러스하고 아름다운 패션이 주를 이뤘던 파리를 강타한 핵폭탄과 같은 존재였다. 너덜너덜하고 찢어진 의상들은 혹평을 받았지만 그녀는 굴하지 않았다. 마침내 패션계는 카와쿠보의 새로운 패션 미학의 놀라움을 발견했고 그 전위적인 의상들에 빠져들었다. 지금도 그녀의 전위적인 의상들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인터뷰에 당최 나타나지 않는 그녀가 한 마디 내뱉은 말을 되뇌며 컬렉션을 보고 해석한다. 꼼 데 가르송은 곧 레이 카와쿠보 자신이며, 컬렉션, 매장, 그 외의 모든 것은 그녀를 표현하는 분신과 같다.
현재 아방가르드 패션 철학의 명맥을 소신 있게 이어가고 있는 앤트워프 3인, 마틴 마르지엘라, 앤 드뮐미스터, 드리스 반 노튼은 모두 레이 카와쿠보의 영향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최고의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이 되며 진정한 패션의 선구자라 불리고 있다.




Credit

  • ELLE ONLINE EDITOR 유리나 PHOTO GETTYIMAGES
  • IMAXTREE
  • COURTESY OF COMME DES GARCONS
  • YOHJI YAMAMOTO
  • METROPOLITAN MUSEUM WEB DESIGN 오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