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스타들의 '트렌치 코트' 포착

세월의 흐름 속에서 그다지 드라마틱한 형태의 변형도, 혁신적인 과감한 변신도 거의 없었다. 참호 속에서 탄생해서일까. 전우애처럼 믿음직스러운 그것, 트렌치코트의 역사적인 모멘트.

프로필 by ELLE 2012.09.25


1970 / Jacqueline Kennedy Onassis
영부인 시절엔 필 햇과 트위드 재킷이 시그너처 룩이었지만 1963년 케네디의 미망인이 되고, 1968년 선박왕 오나시스와 재혼한 후부터 그녀는 삶의 변화만큼이나 패션의 궤적도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는다. 그러면서 그녀의 뉴 시그너처 아이템으로 주목받은 것이 바로 트렌치코트와 빅 선글라스였다. 여기에 간혹 에르메스 실크 스카프를 머리에 두르기도 했던 타임리스 스타일 아이콘 재클린 캐네디. 1970년 아직 쌀쌀한 초봄인 2월의 어느 날, 와이드 라펠의 클래식한 디자인의 프레시한 트렌치코트를 입고 기분 좋게 런던의 한 호텔을 나서고 있다. 이 무렵 촬영된 상당수의 파파라치 컷에서 그녀는 트렌치코트를 즐겨 입고 있었다. 지금 바로 꺼내 입어도 유행에 뒤처지지 않는 모던한 감각이 돋보인다.



1930 / unknown model
원래 1853년 아쿠아스큐텀의 창립자인 존 에이메리(John Amerie)가 레인코트를 최초로 만들긴 했지만 1880년 토머스 버버리(Thomas Burberry)가 방수기능을 제대로 갖춘 혁신적인 원단인 개버딘을 개발하면서 전세가 역전되기 시작해 트렌치코트의 본격적인 역사가 시작됐다. 원래 군인들이 적으로부터 몸을 숨기거나 탄환을 피하기 위해 일정한 깊이 이상으로 땅을 판 트렌치(Trench), 즉 ‘참호’라는 말에서 유래된 트렌치코트는 초창기엔 방수, 방오(防汚; 오염을 방지하는 기능)라는 실용성이 가장 중요했다. 이렇게 탄생한 트렌치코트는 제1차 세계대전 후, 30~40년대의 패션 아이콘 마들렌 디트리히가 마치 애인의 트렌치코트를 빌려 입은 듯 루스하게 걸친 채 강렬한 포스를 발산하며 등장하면서 더 이상 트렌치코트는 참호 속을 누빌 때 입는 옷이 아닌 패션 아이템으로 등극하게 된다.



1980 / LADY DIANA SPENCER
<사랑과 전쟁>의 한 장면 같은 아이러니한 구도의 사진. 다이애나 빈의 표정에 어두운 그림자가 서려 있다. 찰스 황태자와의 결혼 1년 전인 1980년의 이 사진 속에서 그녀는 루미 트렌치코트의 깃을 세우고 주머니에는 무심하게 양손을 넣은 채 파파라치의 시선이 못내 불편한 듯한 기색이다. 다이애나 옆에는 당시에도 찰스 황태자와 오랜 내연 관계였던, 그리고 지금은 아이러니하게도 황태자 비의 카밀라 파커 볼스가 다소 어색한 거리를 두고 걷고 있다. 찰스 황태자가 출전하는 영국의 대표적인 경마 게임인 러들로 레이스(Ludlow Race)를 관람하기 위해 찰스의 두 여인이 함께 자리했고, 1년 후 다이애나는 세인트 폴 성당에서 동화 같은 결혼식을 한다. 롱 트렌치코트를 입은 다이애나의 시크한 매력만큼은 카밀라가 극복할 수 없었다.



2004 / BRAD PITT
영화 <오션스 트웰브 Ocean’s 12> 촬영현장에서의 브래드 피트. 크림 컬러의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서 있는 그는 어둡고 칙칙한 차림새의 스태프들 사이에서 군계일학! 단연 돋보인다.
흡사 영화 <카사블랑카>의 험프리 보가트의 포즈를 연상시키는 포즈의 브래드 피트. 한 손엔 커피, 다른 한 손엔 담배 그리고 주머니엔 영화 대본을 찔러 넣은 채 어슬렁거리고 있을 뿐인데 이보다 멋진 트렌치코트 룩이 또 있을까? 설정이 아닐까 싶은 완벽한 스타일링을 연출하도록 한 아이템은 버버리 프로섬의 정통 더블브레스티드 트렌치코트. 벨트를 다소 단호하게 로 웨이스트에서 질끈 묶으니 마초적인 매력이 물씬 풍겨난다.



1960 / FRIENDS OF HARDY AMIES
1960년 런던의 거리 한복판에 트렌치코트를 입은 다섯 명의 건장한 남자가 나타났다
. 이들은 영국의 패션 디자이너이자 1950년대 런던패션협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하디 에이미스의 친구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옷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들 중 한 사람인 그는 주로 영국 상류층 귀족들의 의상 디자인을 맡고 있는 디자이너로 영국 왕실로부터 ‘커맨더 오브 더 로열 빅토리언 오더 (Commander of the Royal Victorian Order)’ 칭호를 받았고 훗날 기사 작위도 받았다. 그는 여성 테일러드 수트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이날은 자신이 디자인한 다양한 컬러의 트렌치코트를 선보이기 위해 그의 친구들을 모델로 내세운 것.



1994 / ANNETTE BENING
세 번이나 리메이크된 추억의 영화 <러브 어페어> 속의 명장면. 테리 맥케이 역의 아네트 베닝이 워렌 비티를 그리며 트렌치코트로 몸을 감싸고 있다. 그리고 그리움에 젖은 채 멀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보이시한 쇼트 커트 헤어스타일과 트렌치코트가 시크하게 어울린다. 이렇게 영화 속에서 트렌치코트는 멜랑콜리한 분위기를 극대화하는 주요한 소품처럼 등장한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는 오드리 헵번이 두 사람의 해피 엔딩을 기약하는 정표처럼 입고 나왔고, 반면 슬픈 사랑의 추억을 담은 영화 <애수>에서는 엇갈린 두 연인의 비극적 운명에 힘을 실어줬던 의상이 바로 두 연인이 입은 트렌치코트였다.



2007 / katie holmes
두 살배기 딸 수리 크루즈를 안고 있으면서 이렇게 새하얀 트렌치코트를 입을 수 있는 건 초보 엄마라서 나오는 미숙함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무심함일까? 수리가 들고 있는 우윳병이 행여 쏟아질까 불안하지만 엄마이기 이전에 패셔니스타로서 스타일을 포기할 수는 없었던 초보 엄마 케이티 홈스는 별로 개의치 않는 듯 보인다. 현대판 재키 스타일을 선보이곤 하는 케이티의 선택은 역시 재클린의 시그너처 아이템이기도 했던 프레시한 느낌의 화이트 트렌치코트. 앞쪽에 소개된 재클린의 화이트 트렌치코트와 얼핏 유사하지 않은가? 그녀가 입고 있는 넓은 라펠의 더블브레스티드 벨티드 트렌치코트는 토즈 제품.



1968 / YVES SAINT LAURENT
1968년 6월 26일 CBS 채널의 스페셜 프로그램 에 출연한 이브 생 로랑. 60년대는 패션사에 길이 남을 이 아름다운 남자의 벨 에포크였다. 트렌치코트에 화이트 머플러를 두르고 숲을 거니는 모습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이기에 더욱 아련하다. 특히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입은 트렌치코트가 레더 소재라는 것! 당시까지만 해도 주로 개버딘으로 트렌치코트가 제작되었던 데 반해 그는 누구보다 앞서가는 디자이너로서 레더를 과감하게 트렌치코트에 적용시켰던 것이다. 1966년 남성의 턱시도를 변형시켜 여성의 룩에 접목시킨 ‘르 스모킹’으로 전 세계 패션계를 뒤흔들어 놓은 이브 생 로랑의 센티멘탈한 모멘트.



1970 / COLOMBO
미국의 TV 시리즈 <형사 콜롬보 Lieutenant Colombo>의 주인공 콜롬보 반장 역의 피터 포크(Peter Falk)가 사시사철 유니폼처럼 입고 다닌 것은 트렌치코트였다. 마치 힘 나게 하는 삼손의 머리카락처럼 트렌치코트를 입어야만 명민하게 사건의 실마리를 풀 것 같은 형사 콜롬보. 그 캐릭터를 확실하게 세워준 일등공신이 바로 비가오나 눈이 오나 입고 다녔던 전천후 아이템 트렌치코트였다. 밀리터리 아이템에서 출발해서일까, 트렌치코트는 뭔가 전투적이고 이지적인 이미지를 형상화시키는 아이템으로 인식된다. 콜롬보 이후로 수많은 형사들이 트렌치코트를 입었고, 지금도 를 비롯한 미드 수사물 속 주인공들은 트렌치코트를 입고 등장한다. 심지어 만능 형사 가제트까지도!



1940 / HUMPHREY BOGART
트렌치코트를 얘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영화 그리고 한 명의 배우가 있다. 바로 영화 <카사블랑카>의 험프리 보가트! 물론 함께 등장한 잉그리드 버그만이 입은 트렌치코트도 잊을 수 없는 전설의 아이템. 험프리 보가트가 스크린에서 트렌치코트로 압도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트렌치코트는 한낱 실용적인 아이템이자 일종의 유니폼 같은 아우터웨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을 ‘잇’ 아이템이자 패션 아이템으로 업그레이드시킨 주인공이 바로 험프리 보가트였으니, 중절모를 눌러쓰고 한 손에는 담배를 든 채 우수에 가득 찬 눈빛을 발산하는 그야말로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가장 강렬한 포스를 지닌, 진정한 트렌치코트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10월호를 참조하세요


 

 

Credit

  • EDITOR 최순영 PHOTO BURBERRY PROS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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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멀티비츠 WEB DESIGN 오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