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인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뮤지션 사카모토 류이치는 세계적 영화 음악 거장으로 알려져 있지만, 음악은 클래식으로 시작했으며 1970년대 YMO(Yellow Magic Ochestra)로 시대를 앞서간 전자음악을 선보였던 인물입니다. '사카모토 류이치'보다 '류이치 사카모토'라는 성명 배열이 익숙한 건 그가 서구권에서 먼저 이름을 날렸기 때문이죠. 이를테면 '김철수'가 '철수킴'으로 유명해지는 바람에 '철수킴'이 활동명처럼 굳어진 것과 같아요. 그래서 일본에서는 그를 '세계의 사카모토(世界の坂本)'라고 부르며 자랑스러워 합니다.
얼마 전 70세 생일을 맞이한 사카모토 류이치는 두 번째 암과 싸우고 있습니다. 2014년 중인두암 진단을 받았는데, 당시에는 1년 만에 복귀작을 발표하고 아베 신조 정부 반대 시위에 참가하는 등 정력적인 모습을 보였죠. 그러나 2021년 1월, 사카모토 류이치는 또 다시 암 투병을 시작했다고 알렸습니다. 암이 발생한 직장과 전이된 부위 몇 군데를 적출하는 수술은 당초 예정된 8시간을 넘어 20시간이나 걸렸습니다. 그를 사랑하는 팬들보다 사카모토 류이치 자신이 가장 힘들었겠죠.
약 1년 반 동안 크고 작은 수술들을 버티며 지낸 사카모토 류이치는 일본 문예지 〈신초〉에 '나는 앞으로 몇 번이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라는 에세이 연재를 시작했어요. 이는 2009년에 발표한 자서전 〈음악은 자유롭게 한다〉 이후 10년 간의 활동과 인생을 돌아보는 프로젝트로, 자서전의 속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글의 제목은 '암과 살다'로, 사카모토 류이치가 직장암 판정과 함께 당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6개월 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 소견을 들었을 때의 충격 등이 담겼습니다.
그는 '암과 살다'를 쓰며 위궤양으로 49세에 병사한 소설가 나츠메 소세키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만약 첫 번째 암을 발견한 2014년에 62세를 일기로 죽었다고 해도, 나츠메 소세키와 비교하면 충분히 오래 살았다는 소회였죠. 그는 "70세를 맞이한 지금 앞으로의 인생에서 앞으로 몇 번 보름달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모처럼 살아 왔기 때문에 경애하는 바흐나 드뷔시와 같이 마지막 순간까지 음악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두 번째 암 투병 중에도 그의 활동은 멈추지 않았어요. 영화 〈베킷〉, 〈미나마타, 〈애프터 양〉의 음악을 만들었으니까요. 마지막까지 음악을 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대로 12월11일에는 사카모토 류이치 피아노 솔로 콘서트가 2년 만에 온라인으로 열립니다. 타이틀은 '류이치 사카모토: 플레잉 더 피아노 2022'입니다. 홈페이지에서 티켓을 구매하면 당일 공연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이 공연은 사카모토 류이치가 "일본에서 가장 좋은 스튜디오"라고 했던 NHK 509 스튜디오에서 하루에 몇 곡씩 연주한 영상을 편집한 것인데요. 그는 콘서트를 준비하며 "라이브로 콘서트를 할 체력이 안 된다. 이런 형식으로 연주를 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