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진아

인생을 말하게 된다는 점에서 가사는 제 삶의 지표 같은 존재예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노랫말에 자신의 이야기를 입히는 여성들이 한데 모인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물론 〈엘르〉 창간 30주년을 축하하는 진심과 함께.
첫 가사 작업 당시를 떠올려본다면
싱어송라이터가 될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고, 회사에 들어와서 곡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제대로’ 됐다고 생각하는 곡은 정규 2집 〈나의 모양〉의 ‘운이 좋았지’다. 자작곡은 이전부터 써왔지만 꽤 서툴렀던 것 같다. 경험과 치열한 고민이 쌓여 만든 결과물이라 마음에 든다.
‘여행가’의 한 구절을 나를 표현하는 가사로 꼽은 이유는
‘여행가’를 쓸 당시 엄청난 해방감을 느꼈다. 그간 똑바로 걸어가려고 애쓴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조금 서툴러도 하고 싶은 걸 분명히 찾고, 그것을 온전한 내 힘으로 해보자고 마음먹고 만든 곡이다. 이제야 진짜 나답게 살 수 있겠다는, 재미있게 인생을 즐길 수 있겠다는 결심이 담겼다. 눈앞에 장막이 하나 걷히고 피부에 새살이 돋는 것 같았던 당시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여행가가 되겠다’는 당찬 가사와 달리 멜로디와 가창에서는 슬프고 짠한 일면이 느껴지는데
지난날을 견딘 내가 기특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묻어 있기 때문일까. 다음 세상으로 기쁘게 한 발짝 나서야겠다는 결심과 과거의 나를 추억하는 애틋함이 담겨 있다.
권진아의 가사 특징을 꼽아본다면
대부분 부담 없이 쓴다. 멋진 가사를 쓰겠다고 마음먹기보단 떠오르는 것을 툭툭 쓰는데, 완성하고 보면 꽤 마음에 든다.
“내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진심이다. 내가 느끼지 않은 것에 대해 써본 적 없다”고 음악적 방향에 관해 얘기해 왔다
스스로를 고백하는 건 꽤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대중에게 내가 담긴 노래를 소개하는 직업을 가졌으니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면이 있고 아닌 면이 있고, 또 사람들이 생각하는 내 모습과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에 어느 정도 괴리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곡을 쓰고 스스로 세상에 드러내는 과정에서 감정이 정리되고 심리 상태가 안정되기도 한다. 작사는 심리치료하는 기분이 든다(웃음).
노래 속 화자들의 특징을 꼽자면
예전에는 주로 상처받은 사람들이 등장했는데, 요즘에는 단단한 존재들이 주인공이 된다. 특징이 변했다기보다 상처받은 이들이 성장한 모양새다. 어쩌면 그건 ‘나’의 모습일 수도 있다. 어릴 땐 상처도 많이 받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숱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지금의 나는 성숙해지고 단단해졌다. 그 에너지가 노래로 표현되는 것 같다.

가사의 힘을 실감한 경험은
곡을 쓰면 주변에 들려주곤 한다. ‘운이 좋았지’ ‘나의 모양’ 등 자전적인 곡을 가족이나 친구에게 들려주면 엄청 마음 아파하고, 가끔 울기도 하더라.
내가 부를 노래에 내 언어를 입힌다는 건
인생을 말하게 된다는 점에서 가사는 삶의 지표 같은 존재다. 이 나이쯤 이런 감정을 느꼈다는 걸 기록할 수 있고, 훗날 다시 꺼내볼 수 있으니까. 타인과 공유하는 일기장 같다.
‘진심이었던 사람만 바보가 돼’라는 곡으로 새롭게 선보일 가사는 어떤 내용인가
내 노래 중 가장 직관적인 발라드다. 누구나 진심이었는데 바보가 된 경험이 있지 않나(웃음). 이 노래가 원망하는 마음을 대신해주었으면.
앞으로 펼쳐질 당신의 이야기는
앞으로 내가 어떻게 변화하고,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올지 모르겠지만, 아무쪼록 꽤 흥미로운 것이길 바란다. 이 인터뷰를 읽는 모두가 흥미로운 자신만의 삶을 여행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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