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천선란의 〈천 개의 파랑〉은 은퇴를 앞둔 경주마 ‘투데이’를 위해 등장인물 모두가 힘을 합치는 이야기다. 말에게 주로를 달리는 기쁨을 한 번 더 선사하고자 뭉친 이들 중에는 고등학생, 조력자인 성인 여성, 심지어 로봇까지 있다. 김초엽은 소설 〈지구 끝의 온실〉 작가의 말에 다음과 같은 말을 부친다. “우리가 이미 깊이 개입해버린, 되돌릴 수 없는,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이곳 지구를 생각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세계를 마주하면서도 마침내 그것을 재건하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정세랑 작가의 에세이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수는 없어〉는 어떤가. 뒤표지에 붙은 “사랑하는 이들의 세상이 갑자기 무너지지 않기를, 어디선가 다정한 대화들이 계속되기를”이라는 다정한 문장을 보면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기분이 든다.
80~90년대에 태어난, 젊은 여성 SF 작가들이 써 내려간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 이야기 속에는 세상을 이기겠다는 엄청난 야망이나 극단의 대립은 없다. 대신 선함과 강인함이 자리한다. 내가 진짜 인간의 본성이라고 믿고 싶은 것들. 예를 들어 평범한(때로는 비범한) 사람들이 가진 선의와 애정이 조금씩 현실을 바꾸는 것, 때때로 그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상실과 고통을 기꺼이 함께 나누며 삶을 이어가는 법을 아는 것. 나보다 어리고 약한 존재를 당연하게 지키는 것….
어쩌다 보니 최근 두 번의 집회에 참여했다. 누가 같이 가자고 한 것도 아닌데, SNS에서 소식을 접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마음이 움직였다. 그 첫 번째는 지난해 11월 7일 시청앞광장에서 열린 고 홍정운 군 추모 집회였다. 특성화고 학생이었던 홍정운 군은 현장실습 중 제대로 된 설명이나 장비 없이 요트 아래서 따개비를 따는 작업을 하다가 익사했다. 여수에서 직접 서울까지 올라온 그의 친구들 앞에 한 명의 어른이라도 더 있는 게 힘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집회 장소에 갔고, 친구의 영정을 들고 선 얼굴들이 내 상상보다 너무 앳돼 보자마자 눈물이 터졌다. 청와대 앞까지 이어진 행진 동안 나는 “학교에서 노동교육 강화하라!”를 함께 외쳤다.
올해 2월 27일에 참여한 집회는 다른 의미로 특별했다. ‘2022 여성혐오 대선 규탄 시위’는 참가 자격을 얻는 것부터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안티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운 언론과 정치권을 비판하고, 페미사이드를 멈출 것을 요구하는 집회인 만큼 참여를 원하는 사람이 ‘여성’임을 입증하는 사전 절차가 필수였다. DM을 보내 대화방 링크를 받고 신분증과 영상, 통화로 내가 여성임을 입증해야 했다. 폴라 티셔츠 때문에 ‘울대’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영상을 다시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는 ‘아니 뭐 이렇게까지 해?’ 하는 마음이 솟는 한편 슬펐다. 공개 페미니스트 선언을 한 이들의 신상을 파헤치거나 얼굴을 ‘박제’하는 사이버 불링 때문에 필요해진 절차일 테니까. 우리는 ‘한국에는 여전히 페미니즘 필요하다/혐오 눈치 보지 말고 여성인권 지지하라/민주당의 성범죄를 국민들은 기억한다’ 같은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마스크와 모자 때문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음에도 집회에 참여한 대다수가 30대 중반인 나보다 훨씬 어린 여성임은 분명해 보였다. 환호 틈틈이 앳된 웃음소리가 섞였고, 우리는 여성가족부 건물 앞에서 “여가부 파이팅!”을 외치기도 하고, “저는 잘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페미X’ 같은 욕이 오가는 교실에서는 잘살 수가 없습니다”라는 중학생의 발언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또래 집단이 중요한 시기를 벗어나고, 취업의 문턱을 넘어 ‘여초’ 직장에 근무하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절박함과 위기의식이 그 자리에 있었다.
20대 대한민국 대통령선거가 끝났다. 0.7% 득표율로 희비가 갈린 역대 초박빙 대선이었다. ‘젠더 갈등’은 이번 대선 내내 중요한 이슈였다. 특정 커뮤니티의 의견을 공적 여론처럼 보도하거나 반페미니즘 정서를 적극 활용하며 어느 때보다 떠들썩하게 2030 남녀를 나눴지만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 결과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 것은 60대 64.8%, 70대 이상 69.9%로 압도적으로 윤석열 후보를 지지한 노년층이었음이 드러났다. 물론 20대 남성의 58.7%가 보수 정당을 택했다는 것은 충분히 높은 수치다. 그러나 36.3%의 20대 남성은 언론의 호도와 다른 선택을 내린 것이다. 20대 여성의 58%가 1번, 33.8%가 2번을 택하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는 것은 그럼에도 많은 점을 시사한다. 22%라는 젠더 간 지지율 격차는 그 어떤 연령대에서도 보이지 않은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큰 격차를 보인 30대만 해도 윤석열 당선자 지지율은 남성 52.8%, 여성 43.8%로 9% 정도로 급격히 감소한다. 20대에 한해서는 사실상 대선후보 대결이 아니라 이준석과 박지현의 싸움이었다는 분석에 수긍하게 되는 이유다.
2020년, N번방 최초 신고자이자 보도자인 추적단불꽃의 르포 에세이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이봄) 발간을 계기로 추적단불꽃과 이메일 인터뷰를 한 적 있다.
대선 이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으로 임명된 박지현 씨가 추적단불꽃의 ‘불’과 ‘단’ 중 한 사람인 ‘불’로 활동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디지털 성착취의 끔찍한 현실을 하나하나 목격한, 20대 초반의 대학생이 지금처럼 얼굴을 드러내기 전에 진행했던 인터뷰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다. ‘후배가 지인 능욕 방에 올라온 것을 목격하고, 아는 사람이 성착취 방에 들어온 것을 발견한 적도 있다. 국회나 언론, 사법부에 실망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다고 믿는 힘은?’ 그 물음에 두 사람은 정세랑 작가의 작품을 인용해 답했다. “〈보건교사 안은영〉에 이런 대사가 있다. ‘어차피 언젠가는 지게 돼 있어요. 친절한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을 어떻게 계속 이겨요. 도무지 이기지 못하는 것까지 친절함에 포함돼 있으니까 괜찮아요. 져도 괜찮아요. 나중에 다시 어떻게든 하면 될 거예요.’ 우리도 같은 마음이다”라고.
37세의 나는 결혼도 하지 않고 자녀도 없다. 특별히 사촌 조카를 예뻐하지도 않고, 친밀하게 지내는 어린이나 학생도 없다. 그럼에도 어떤 판단과 선택을 내리는 게 좋을지, 고민과 결정이 필요한 상황에서 내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은 내 다음 세대의 얼굴들이다. 어쨌든 더 많은 시간을 살아내야 하는 존재들. 변화와 희망을 유일하게 기대해도 좋은 대상들. 이런 마음이 어디서 오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우선은 지금 떠오르는 몇몇 얼굴이 안전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동료 시민이자, 어른으로서.
이마루 〈엘르〉 피처 에디터. 지방 도시 출신으로, 세상이 말하는 수도권 기준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풍경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엘르 뉴스레터 '엘르보이스'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