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식 파르테르 정원을 지나면 수영장으로 이어진다.
빈티지 리바이스 데님처럼 침실을 멋지게 꾸밀 수 있을까? 패션 디자이너 크리스 벤츠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컬러와 비율, 아이템 간의 조합을 고려해 하나의 룩을 완성하는 것처럼 방을 꾸미는 것도 그와 다르지 않아요. 진정성이 느껴지면서 모든 것이 서로 어울리는 분위기를 자아내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현관. 벽면에 걸린 그림은 카초 팔콘의 작품. 펜던트는 Original BTC.
벤츠가 1880년대에 지은 이 낡은 저택을 구입할 때만 해도, 그는 이곳을 가끔 주말 별장 정도로 쓸 계획이었다. 그러다 팬데믹이 장기화되자 시골생활을 본격적으로 즐기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4년 전, 뉴욕 벨포트에 남겨진 19세기 농가를 소유하게 된 그는 애인이자 변호사인 피터 툼베키스와 함께 이 집을 샀다. 이후로 벤츠는 여러 방을 틈틈이 개조하고 멋들어지게 꾸몄다.
맞춤형 새장으로 중심을 잡은 거실. 디스코 볼 모양의 화분과 라탄 칵테일 테이블, 일본식 모기장 커튼, 펜던트 등은 모두 벼룩시장과 엣시, 이베이에서 구했다. 소파와 가죽 윙 백 의자는 Ralph Lauren.
아무래도 그의 패션 경력이 집 꾸미기에 많은 도움이 됐을 것이다. 벤츠는 인테리어에 관해 어떤 교육도 받은 적 없다. 하지만 과거 제이크루에서 여성복과 크루 컷 디자인을 담당한 수석 부사장 경력 때문일까. 그는 자신만의 미적 감각을 인테리어 디자인에 접목해 유쾌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크리스 벤츠는 제이크루에 다니기 전에 이미 패션 디자이너로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경매장과 이베이에서 구한 앤티크 침대, 빈티지 코튼 셔닐 이불로 유니크하게 단장한 게스트 룸.
한때 마크 제이콥스에서도 일했으며 자신의 이름을 딴 여성복 컬렉션을 발표한 적도 있다. 브랜드 월쇼프(Wallshoppe)의 벽지 시리즈를 포함해 인테리어 신 프로젝트에도 여러 번 참여했다. 브루클린의 집을 팔고 벨포트의 고전적인 농가에 정착하면서 크리스 벤츠에게는 인테리어 전문가라는 ‘부캐’도 생겼다. 벤츠는 이 저택의 창문과 문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전체적으로 리모델링하는 작업을 지휘했다.
프렌치 리넨 이불은 엣시에서 구입했다. 깅엄 체크 베개는 West Elm. 캐노피 침대는 E. J. Victor. 19세기풍의 소파 의자는 Holler & Squall.
삼나무 널로 지붕을 마감한 외관은 빅토리아 시대에 지어진 농가의 모든 건축양식을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정문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수십 년 동안 세심하게 배치된 가구와 장식품이 다양한 방식으로 독특한 성격을 드러낸다. “벼룩시장 분위기를 좋아해요. 그림들도 벽에 기대 놓죠. 벽난로 위에 걸어놓는 것보단 이렇게 레이어드해서 진열하면 짜릿한 전율이 느껴져요.”
넓은 소나무 원목 바닥은 원래 있던 것을 보존했다. 모마 스토어에서 구입한 티크 원목 프레임으로 둘러싼 벽걸이 TV ‘더 프레임’은 Samsung.
벤츠는 타고난 컬러 감각으로 대조적인 색깔을 유기적으로 배치했다. 저택 곳곳은 서로 상반되는 색깔들이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그럴싸하게 이어지도록 연출됐다. “많은 사람들이 과감한 색 사용을 두려워하는데 전혀 그럴 필요 없어요. 컬러에 저마다 의미를 부여하되 놀이공원 도깨비 집처럼 보이지 않게 하면 된답니다. 컬러가 서로 조화를 이루는지 가끔 잘 확인하고요.” 형광 옐로 컬러로 장식된 거실 천장부터 세련되고 화려한 가구까지. 이 집 곳곳에서는 생동감이 느껴지는 따뜻한 분위기가 풍겨 나온다.
사실 벨포트에 자리 잡은 이 집은 그가 자신과 툼베키스를 위해 꾸민 다섯 번째 집이다. 벤츠는 브루클린의 타운하우스 역시 인테리어를 직접 개조하면서 리모델링했다. 당시 4층짜리 건물은 더욱 도시적 분위기로 재탄생했는데 강렬한 컬러를 다양하게 씀으로써 독창적인 개성을 표현했다. “새로 살 집에 나만의 존재감을 꼭 담아내요. 영역 표시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거죠.” 팬데믹 이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주말에 쉴 만한 휴양지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 벨포트에 매료된 것이다. 목가적인 풍경의 해변 마을이 지닌 독특한 매력과 뉴욕 시에서 편리하게 오갈 수 있는 거리와 동선, 즉 롱 아일랜드의 노스 포크에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고풍스러운 갤러리와 상점이 즐비한 시내 거리를 지나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수백 년 된 집과 오두막이 구불구불한 길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며 시골 자태를 뽐낸다. 벤츠와 툼베키스가 처음 이 지역을 둘러봤을 때, 그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마을의 절제된 아름다움이었다.
삼나무 널로 만든 지붕을 얹은 대저택. 앤 여왕 시대에 빅토리아 스타일로 지은 농가를 1996년에 개조했다.
유서 깊은 마을이지만 햄프턴에 비하면 확실히 좀 더 소박해 보였다. 툼베키스는 이렇게 표현했다. “햄프턴은 ‘관종기’가 다분한 동네죠. 외적으로 보여지는 것도 중요하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보고 싶어 안달 난 지역이랄까. 이 동네는 달라요. 그런 것에 전혀 관심 없는 것 같아요. 노출되는 걸 꺼리는 사람들이라면 여길 좋아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