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과 세균, 식물에 이어 이번에는 기후다. 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제대로 해보기로 마음먹게 된 계기는
〈한국 괴물 백과〉〈지상 최대의 내기〉 같은 책을 쓰고, 최근 〈심야괴담회〉 등의 몇몇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지만 이게 내 본령이자 본업이다. 17년간 화학회사 환경 부서에 몸담으면서 공장에서 나오는 폐수는 잘 관리되고 있는지, 공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연기가 사람한테 무해한지 등을 점검하는 일을 했다. 설비가 낙후된 것 같으면 개선하고, 법이 바뀌면 바뀐 기준에 따라 고쳐가면서. 너무나 중요한 일이고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정작 사람들은 별 관심 없는 그 괴리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줄이고, 분리수거를 잘하고, 장바구니를 활용해야 한다는 이야기 말고 환경을 위해 실제로 어떤 노력이 행해지고 있는지 좀 현실감 있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긴 시간 환경 분야에서 일하며 알게 모르게 쌓인 생각들이 이번 기회에 터져 나온 셈이다.

재킷과 데님 셔츠는 모두 Deum-Jig, 안경과 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퇴사 후 강연을 많이 했는데 두 곳에서 기후 변화에 대한 강연을 하며 ‘이런 이야기가 시민들에게 더 와닿겠구나’ ‘이렇게 이야기를 구성하면 기후 변화의 핵심적인 부분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겠다’는 감이 생겼다. 그러던 차에 출판사에서 연락이 온 거다.
어떤 환경 책을 쓰고 싶었는지
정론에 가까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기후에 관한 이야기가 하도 많으니까 요즘은 극단적인 주장을 해야 눈에 띄는 경향이 있다. ‘기후 변화로 우리는 다 죽을 거다’ 내지는 ‘기후 변화는 다 사기다’라면서. 그런 책이 실제로 인기를 끌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둘 다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 비율이 얼마인지 아나? 0.04%다. 한동안 0.03으로 유지되다가 0.04가 된 지 몇 년 됐는데 이것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큰일났다며 방방 뛰고 있는 거다. 이 극히 미세하고 미묘한 차이를 두고 지구의 운명을 운운하는 것이 기후 변화 문제라는 거다. 이 작은 차이가 전 세계 기후를 다 바꾸고, 사람들에게 전에 없던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지 않나? 이 농도 차이는 어쩌다 발견됐을까? 이걸 위험신호라고 볼 수 있는 근거는 뭘까? 파고 들어가다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끝도 없이 나온다.
탄소배출권거래제와 탄소 발자국, 재생에너지, 수소 생산 기술과 이산화탄소 활용 기술 등 과학과 기술을 아우르는 이야기가 책 내용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데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기후 문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사람도 책을 읽으면 적어도 기후 때문에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어떤 지점에서 합의가 안 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객관적인 지표가 포함된 기술적인 이야기는 내가 가장 재미있게 풀어낼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한데, 특히 기후 변화의 구체적 증거가 궁금했던 사람이라면 반길 부분일 것이다.
“기후 변화와 관련한 재난과 사고로 희생되는 사람의 숫자를 줄이기 위해 기후 변화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이지, 분노한 지구가 인류를 징벌하는 최후의 순간을 피하기 위해 기후 변화 문제에 대처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에 공감했다. 환경 문제에 대한 합리적 접근을 막는 가장 큰 방해물은 무엇일까
선악의 잣대를 들이미는 것. 지구를 생각하면 왠지 하면 안 될 것 같은 일도 따져보면 해야 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올여름에 최악의 더위가 찾아왔다고 가정해 보자. 사람들은 당연히 에어컨을 더 많이 튼다. 그러면 국가 입장에서는 누진세를 올려서 에어컨 남용을 줄이려 할 거다. 그래서 에어컨 사용료가 올해는 10만원이 아닌 60만 원이 나온다면 그 차이로 고통받는 사람은 누구일까? 당연히 체력이 약하고, 나이가 많고, 돈 없는 사람들이다. 전기세를 줄이려다가 온열 질환에 걸려 죽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다는 말이다. 에어컨을 많이 트는 일은 기후를 생각하면 ‘악행’인 것 같지만 정말 기후 문제가 심각할 땐 그런 ‘악행’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 전기를 덜 쓰게 하는 정책과 돈 없는 사람들이 에어컨을 걱정 없이 틀 수 있는 정책은 같이 나와야 한다. 이것이 합리적인 접근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풀어야 하는 기후 문제는 점점 더 복잡해진다. 개발도상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개발도상국 생활 수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지구 전체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유지하거나 낮춰야 한다. 경제적 문제, 나라 간 갈등으로 점철된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이런 고민이야말로 유의미하다. 개인적으로 ‘기후 악당’이라는 말을 참 싫어하는데, 그런 단순한 잣대가 진짜 문제에 집중하는 것을 막기 때문이다.
그런 논의가 꽃피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기후 문제를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닌, 여러 입장을 조율하는 과정으로 이해하면 좋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탄소 발자국을 계산하는 문제, 발전소를 짓거나 폐기하는 문제, 수소 생산 기술에 얼마큼의 돈을 투자할 것이냐 하는 문제 등 다양한 기후 문제를 놓고 신랄하게 토론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거다. 오늘날의 기후 문제는 개인보다 공동체적 접근이 훨씬 중요하다.

블레이저와 팬츠 셋업 그리고 셔츠는 모두 Deum-Jig, 슈즈와 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대기업과 국가의 행동력이 훨씬 중요한 것은 맞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기후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고 있는 걸까?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는 분명 목소리를 내고 있거든. 국회의원을 뽑을 때 기후 관련 정책을 많이 준비한 후보 A, 아무 생각 없는 B, 기후 문제에 관심은 있지만 과격한 방식을 선호하는 C 중에 누굴 뽑을지 고민하는 과정은 충분히 의미가 있는 거다. 회사에서 자재를 수급하는 일을 맡고 있다고 하자. 여태까진 단가만 보고 결정하다가 이제부터 탄소 발자국까지 고려해서 결정하기로 했다면 전부 다 간접적으로 참여하면서 커다란 변화를 도모하고 있는 거다. 각자의 분야에서 각자가 하는 일이 커다란 일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다 맞물려 있다.
기후와 관련해 최근 긍정적으로 느낀 변화가 있다면
불과 5년 전만 해도 기후 의식이라면 ‘착하게 사는 것’ ‘미래를 위해 좋은 일 하기’ 이런 식으로 막연하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몇 년 사이 정말 많이 바뀌었다. ESG 경영이 주식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주요 지표가 되기도 하고. 이젠 많은 사람들이 기후 문제가 경제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외교 관계와 국력, 알력에 의해 좌우된다는 걸 절감하게 된 것 같다. 기후 문제에 관한 좀 더 현실적인 감수성이 생겼달까.
이번 책은 전작 〈곽재식의 미래를 파는 상점〉 속 배터리와 바이오 연료, 기후 변화 적응 기술에 대한 이야기가 확장된 결과로도 볼 수 있다. 이번에도 역시 다음 책의 모티프로 염두에 둔 부분이 있을지
책 초반부에 기후 변화는 많은 생물이 목숨을 잃게 만들 수 있을 정도의 큰 사건임을 말하면서 그 예로 전라북도 부안의 상왕등도 근처 바닷가에서 발견된 매머드 이빨 이야기를 했다. 원래는 육지였던 곳이 빙하기가 끝나고, 얼음이 녹아 침수되면서 그로부터 몇만 년이 지난 오늘날에 이르러 바다 한가운데서 매머드 뼈가 발견되는 일이 발생한 거다. 이 외에도 4만 년 전쯤 경상남도 합천에 떨어진 운석으로 마을 하나가 통째로 날아가는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의 이야기, 충청북도 단양 금굴에서 원숭이와 사자, 코뿔소 뼈가 발견된 사연 등 한반도의 오래전 과거에 대한 상상력을 펼쳐봐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돈 룩 업〉이 다룬 서사가 3년 전 출간된 소설집 〈지상 최대의 내기〉 속 단편 〈체육대회 묵시록〉에서 일찍이 다뤄졌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여러 번 ‘리트윗’했던데(웃음)
정작 나는 영화를 못 봤다. 다만 지구 종말론은 80~90년대 이후로 쭉 인기 있었던 서사이기 때문에 그런 우연이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지난해에 출간된 김초엽 작가의 소설 〈지구 끝의 온실〉을 비롯해 환경의 대전환을 다룬 SF 이야기는 아직도 우리 주변에 굉장히 많다. 물론 좀 과도한 경향이 없지 않아 있지만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고민이 있으니 이런 이야기도 계속해서 나오는 거라 생각한다.
최근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학과장에 임명되며 앞으로 환경에 대해 보다 전문적인 역할을 떠안게 됐다. 환경 전문가로서 어떤 역할을 의식하고 있나
수많은 전문가가 환경에 관해 겁을 준다. 그게 정말 중요한 발견일 수도 있지만 초보 학자로서 나는 맨 처음 말했듯이 오물이 어떤 원리로 깨끗해지는지, 이 정화 기술이 앞으로 더 발전할 여지가 있을지, 그러려면 어느 정도의 돈과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한지, 이런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는 데 집중하려 한다. 작년 말에 요소수 대란이 있었지 않나. 그 전까진 요소수가 무슨 기능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누군가 자동차 매연을 줄이기 위해 뭘 넣고, 어떤 장치를 달지 수없이 고민했고 그 결과 요소수란 것이 개발돼 자동차에 달리게 된 거다. 없으면 안 되는데 정작 사람들은 모르고 살아가는 것. 이런 기술적인 노력에 대해 더 많이 말하고 싶다. 환경을 논할 때 결코 빠질 수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곽재식은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이자 과학적 상상력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개하는 SF 작가다. 그의 신간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기후 교양서다.
세계적인 팝 스타들이 앞다퉈 아프리카 기아를 위한 자선 공연을 열던 시기가 있었지만 기아에 시달리는 인구 비율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중국과 인도, 동남아시아의 식량 수준은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세상이 좋아지고 있다는 건 기록으로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이런 흐름대로라면 다음 세대는 우리보다 훨씬 보는 눈도 높고 똑똑할 거다. 그러니 지금의 기후 문제 같은 답답한 문제들로 골머리를 썩을 순 있어도 인류는 결국 해답을 찾을 것이고, 세상은 결국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거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