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EE 강금실

INTERVIEWER 김동희

김동희가 입은 재킷과 이너는 모두 Prada.
김동희 기후 변화나 환경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이 늘어났다고 느낍니다. 팬데믹도 이런 관심에 영향을 미친 것 같고요. 앞으로 해결할 과제가 많은 상황에서 우리가 염두에 두고 나아가야 할 부분이나 방향이 있을까요
강금실 코로나19 이후 기후 위기, 생태 위기에 대한 각성이 커졌다는 말에 공감해요.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가 고민스러울 때는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도움이 되죠. 20세기 초중반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야기한 핵 발전과 자연 파괴, 문명의 경쟁, 글로벌 산업 성장 등 이 많은 것이 역사적으로 서로 얽혀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1948 세계인권선언’ 같은 노력도 있었고요. 하지만 이제 UN보다 더 구속력 있고 더 많은 연대와 압력이 필요해요. 세계인권선언을 넘어서는 새로운 선언인 ‘지구권’ 선언을 위해서 말이죠. 인권선언이 인간의 존엄을 위한 선언이었다면, 지구권 선언은 지구와 지구의 모든 생명체에 대한 선언이에요. 가치 중심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지만 이를 차별하고 반대하는 힘이 많죠. 이럴 때일수록 목표와 방법이 분명해야 해요. 그래서 청년기후포럼 같은 젊은 세대의 움직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부정적인 힘을 이기기 위해서는 더 결속력 있는 목표와 실천이 필요한 법이니까요.
김동희 지난해에 〈지구를 위한 변론〉을 발간했습니다. 지구 환경에 관한 다양한 이론과 국제적 협약들이 정리돼 있어 지구에 대한 인간의 시선과 인식 변화를 알 수 있었어요. 책의 핵심은 지구법학으로 바라보는 생태와 환경일 텐데, ‘지구법학’이라는 아직은 생소한 학문에 대해 대표님의 언어로 정의를 내리신다면
강금실 2022년 2월 이탈리아가 ‘환경보호 의무’를 헌법에 명시했습니다. 발전 · 보상에 대한 국가의 규제는 있었지만, 자연보호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의무, 자연의 권리는 없었는데 헌법에 의무로 명시됐다는 것은 인식의 커다란 변화를 의미합니다. 이처럼 인간이 계속해서 개발하는 것을 막고, 자연과 생명이 살 권리를 법으로 인정하자는 것, 이게 지구법학입니다. 한국에서 구체적인 안건은 비무장지대(DMZ)가 있을 수 있는데요. 오랫동안 인간 출입이 제한되며 자연화된 그곳에 사는 생명들의 점유권을 법으로도 인정하자는 거죠. 지구 환경에 대한 위기와 관심을 촉발한 1972년 스톡홀름 선언(유엔인간환경회의) 이후 환경법이 제정됐는데, 환경법은 인간을 위해 쾌적한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지 그 땅에 사는 생명 자체를 보호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이제 환경권 패러다임은 끝났어요. 다음 단계로 자연을 권리화·의무화하는 것, 환경법학이 아닌 지구와 자연 그 자체를 보호하는 개념으로 ‘지구법학’을 말할 수 있겠네요.
김동희 기후 변화를 바라보고 해결하는 데는 다양한 시선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과학자로서 환경과 기후 변화에 대해 자연현상 자체를 분석하고 정의하는데, 대표님처럼 법학자가 기후 변화를 보는 시선은 또 다를 것 같아요. 환경보호 부분에서 법학자의 역할에는 어떤 것이 있다고 믿으시나요? ‘지구와 사람’의 지향점과 맞닿는 부분도 있겠습니다
강금실 바라본다는 표현이 좋네요. ‘바라본다’, 시각이라는 것에는 세계관이 반영돼 있기 마련이니까요. 노예해방, 여성운동처럼 ‘인간은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인권에 대한 시각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처럼요. 하지만 기후 변화에 있어 인권만 생각해서는 ‘쓰레기를 줄이자’ ‘탄소 배출을 줄이자’는 말밖에 안 나와요. 이제는 시각의 전환, 세계관이 바뀌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거죠. 인간만 존중받는 게 아니라 지구와 공존해야 한다는 각성이 필요해요. 근본 생태학(Radical Ecology)은 이런 근적 시각의 전환을 요구합니다. 근대에 와서 모든 시민, 모든 인간이 권리가 있다는 시각이 인류에게 공유된 것처럼 이제 한 번 더 시각의 전환이 필요해요. 결국엔 그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어요. 생각이 바뀔 때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생각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는 시점에 세상이 바뀌어요. 지구법학은 사람들에게 시각의 전환을 요구하는 새로운 대안적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죠.

강금실 법 제정 운동 또한 모두 정치활동입니다. 법은 최종적인 결과물이죠. 현실에서 정치적인 움직임과 행동이 있어야 법이 제정되고, 집권 운동 또한 법을 바꾸거나 만들기 위해 이뤄지는 것이니까요. 어마어마한 노력 끝에 환경법이 만들어진 것처럼요. 더 많은 사람의 대화와 참여를 통해 여론을 형성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 낙관합니다.
김동희 사람들과 생태적 세계관에 대해 공부하는 학술 공동체 ‘지구와 사람’처럼 저도 기후변화와 다양한 관심사를 논하고 행하는 200명 규모의 청년 네트워크 ‘기후변화청년모임 빅웨이브’를 통해 사람들과 환경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같은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강금실 빅웨이브와는 저희도 2018년부터 생태문명 국제 컨퍼런스와 기후 변화 콜로키움을 기획하고 협업했죠. 청년단체와의 연대는 저희에게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2015년 국내에 지구법학이라는 개념을 소개하고, 책도 번역해 내며 ‘지구와 사람’을 연구재단으로 등록한 것에 보람을 느낍니다. 옳다고 믿고 열심히 하면 성과가 나는구나, 결국 인생은 신념을 갖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답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처음 시작할 때는 단체가 이렇게 커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지구와 사람’은 각 영역을 하나로 통합하는 ‘통합 생태(Integral Ecology)’를 지향하고 있어요. 공동대표인 송기원 연세대 생화학과 교수가 과학 스터디를 이끌고, 예술 분야에서는 ‘지구아이’라는 예술 플랫폼을 출범해 최근 또 다른 배움과 만남의 기쁨을 느끼는 중이에요. 다만 어느 한 특정 분야에 집중해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 · 학술적 · 예술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결과를 내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점, 이런 점이 후원을 받는 데 어려움으로 작용하기는 합니다. 그래도 ‘잘되겠지’ 싶어요. 제가 워낙 낙천적이라(웃음).
김동희 연극 플랫폼 ‘지구아이’ 같은 예술과의 접목이 필요하다고 느낀 이유는
강금실 처음부터 ‘학술, 교육, 문화’로 방향을 잡고 이를 유지해 왔어요. 지성과 감성이 통합되는 예술 영역은 시대를 가장 빠르게 나아가요. 먼저 변화를 감지하고, 공감을 통해 전파되며, 학술보다 더 큰 효과를 만들어내죠. 2018년 국제컨퍼런스 문화세션에서 가리왕산 벌목 이슈를 다루는 퍼포먼스를 했는데, 국내외 전문가 모두 그 세션의 퍼포먼스가 가장 가슴에 와닿았다고 하더군요. 백 마디 말보다 하나의 동작이 사람의 가슴을 더 울리는 거죠.
김동희 본업인 법학에서 정치, 환경운동까지, 대표님에게 도전이란 무엇인가요
강금실 올해 65세인데 돌아보면 고민의 연속이었어요. 결국은 자기를 발현하고 전개하는 것, 자기를 찾아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해요. 내가 하려는 것이 분명하고 그걸로 생활이 해결된다면 그게 최고의 인생이죠. 정신적 가치, 어느 정도의 물질적 삶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해요. 부처도 너무 가난하면 도를 닦을 수 없다고 했잖아요(웃음). 돌아보면 저도 결국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판사로 재직했던 80년대에는 ‘법’을 하기 싫다고 전통무용을 배우러 다녔는데, 결국 이렇게 법학을 다시 하고 있죠. 그때 좋아했던 문화활동도 ‘지구아이’를 통해 여전히 하고 있고요.
김동희 저도 대학을 졸업하면서 취업과 대학원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결국 제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니 답이 나오더라고요. 환경 공부를 통해 깨닫게 된 ‘나’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나 삶의 의미가 있다면
강금실 행복해지는 방법을 깨달았어요. 우리는 마음이 상처 없이 온전해야 삶을 잘 살 수 있거든요. 마음을 비우고 깨끗한 상태가 되어 자신을 찾아 나설 때 갈등을 헤쳐나갈 힘이 생겨요. 지금 제가 낙천적일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김동희 ‘낙관’과 ‘긍정’으로 무장한 대표님도 무력감을 경험한 적 있을지
강금실 무력감은 매일 시시각각 느낍니다. 기본적인 외출과 교류가 제약된 팬데믹 상황도 그렇고, 물리적 폭력 대신 언어 폭력이 극심한 지금의 사회 분위기도 힘들죠. 상대방이, 사람이 얼마나 상처받는지에 대해 생각하질 않아요. 어떤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합당한 벌을 받고 달라진 뒤 돌아와야 건강한 사회 구조인데 그게 안 되고 있어요. 합당한 처벌 자체가 이뤄지지 않거나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과도한 비난과 벌을 받기도 하죠
김동희 혐오가 문화가 됐다고도 하니까요. 기후 변화에 대한 두려움도 무력과 우울함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조언이 있다면
강금실 사람이 사는 방식은 근본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더라고요. 성과주의에서 자유로워져 공감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격려하며 나아가면 돼요. ‘이걸 반드시 해낼 거야’가 아닌, ‘내게는 이게 의미 있는 일이니 이만큼이라도 계속해나가겠다’는 마음 자체가 삶이라는 것, 그런 삶에 가치를 둬야 하죠.
김동희 ‘여성 최초 법무 부장관’ ‘여성 최초 서울시장 후보’ ‘여성 최초 법무법인 대표’…. 타이틀 자체로도 의미가 있는 한편 성별에 초점이 맞춰져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부분도 있다고 느끼실까요. 여전히 여성이 고위직으로 나아가는 데 유리천장이 존재하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강금실 저는 1% 세대예요. 300명의 판사 중에 세 명이 여자였으니 유리천장을 깨야 하는 과업이 주어진 세대죠. 2003년 법무부 장관을 제안받았을 때도 여러 위험 요소가 있었음에도 수락한 가장 큰 이유는 소명감이었어요. 내가 회피하면 여성이 ‘최초’가 되는 기록 자체가 더뎌진다는 것. 미투와 페미니즘이 지금 뜨겁게 들끓는 이유는 여성들의 의식과 능력은 동등해졌는데 구조가 뒤처졌기 때문이라고 봐요. 법조계만 한정해 봐도 이미 2000년대 초반 검사직에 합격하는 여성이 40%에 육박했어요. 여성들은 충분히 준비된 셈인데 제도는 바뀌지 않았죠. 의식의 변화에 맞춰 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폭력과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에요. 20년 전에 제도가 바뀌었다면 그 의식의 토대에서 성장한 남성들이 지금의 20~30대가 됐을 텐데 그렇지 않다 보니 현실과의 괴리 때문에 반발이 극심할 수밖에요. 망하거나 바뀌거나, 둘 중 하나예요. 이는 기후 변화나 지구법도 마찬가지죠.

강금실은 저서 〈지구를 위한 변론〉을 통해 지속 가능 발전 · 탄소 중립 · EsG 경영, 그린 뉴딜 정책 등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지금, 시대의 패러다임의 전환을 제시한다.
강금실 저는 그래도 한국의 미래를 낙관합니다. 왜냐하면 참고할 세계 각국의 좋은 선례가 이미 많으니까요.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세상의 경험을 통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잖아요. 어떻게든 세상은 앞으로 나아가더라고요. 미리 앞선 사례들을 연구해 공론화하고, 제도적 변화가 뒷받침되면 사회가 갈등을 줄이고 나아갈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은 그 갈등의 막바지고요.
김동희 ‘10대를 비롯한 미래 세대의 감수성에서 희망을 바라본다’고 말한 적 있습니다. 다음 세대의 여성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강금실 기후 변화는 미래 세대에게는 현실입니다. 이들에게 가장 기대하는 바는 수평적 네트워크에 훨씬 강한 세대라는 점이에요.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 또한 인간과 자연이 대등하다는 시각 아래 가능하죠. 지금은 여전히 과거의 방식으로 경쟁을 통해 성공한 사람들이 권력을 쥐고 있는 세대입니다. 미래 세대는 그보다 소통에 있어 자유로워요. 다만 우리가 사는 세상이 복잡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보다 깊고 폭넓게 세계를 바라보길 바랍니다. 기후 위기를 기점으로 인류 전체 역사는 전기와 후기로 나뉠 거라고 생각해요. 그 위기를 겪고 살아남은 인류는 인간이 독점한 지금의 홀로세(Holocene) 인류와 같을 수 없겠죠. 그 후기를 열 세대는 지금의 30대 이하, 수평적 문화에 자유로운 세대가 될 것이라고 봐요. 그 세대가 새로운 방식으로 국가의 벽을 넘어선 전 지구적 네트워크를 만들 때, 그 움직임은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