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 임박! 이민진 작가에게 직접 물은 #파친코 의 매력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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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임박! 이민진 작가에게 직접 물은 #파친코 의 매력

5년 전 출간된 소설 <파친코>가 동명의 애플TV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돌아온다. 타고난 스토리텔러 이민진 작가에게 직접 물은 이야기의 힘.

류가영 BY 류가영 2022.02.27
 
작가의 이력과 책이 미국에서 구가 중이던 뜨거운 인기에 대해 알지 못한 채 몇 해 전 〈파친코〉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이 책이 개정판이거나, 뒤늦게 국내 출간된 작품인 줄 알았다. 1·2권 합쳐 750여 쪽에 이르기도 하고, 1910년부터 1989년까지 4대에 걸친 재일교포의 삶을 다루는 이 역사소설은 출판계 트렌드를 역행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민진 작가가 재일교포라는 소재를 떠올린 것은 1989년. 당시 예일대학교 역사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그는 초청 강연을 듣던 중 조선계라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다 자살한 재일교포 중학생 남자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형용할 수 없이 부당한 감정을 느꼈다. 이후 국가적 정체성 문제에 골몰하기 시작했고, 원고를 통째로 뒤엎는 과정을 거쳐 2008년, 남편의 인사 발령에 따라 일본에 머물며 본격적으로 〈파친코〉 초안을 써내려갔다. 폐기된 원고에 몰두한 시간을 제하고도 꼬박 10년이 걸린 기나긴 과정. 고질적인 간질환에 시달리면서도 진실된 이야기를 위한 방대한 조사와 인터뷰를 결코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주인공 선자와 그의 삶을 바다 건너로(혹은 폭풍 속으로) 이끈 두 남자 고한수와 백이삭, 이들의 자식인 노아와 모자수, 그 아이들의 자식과 비슷한 운명을 타고난 수많은 주변인들이 서로 바통을 주고받으며 한 시대를 이어가는 대서사시가 탄생했다. “애초에 역사소설을 쓰려는 의도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현대 재일동포의 삶을 제대로 이야기하려면 결국 1세대와의 연결 고리가 필요하더군요. 한 명의 개인을 온전히 이해하는 일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는 불가능했습니다. 그 과정이 이토록 오래 걸릴 줄 알았다면 아예 시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어요(웃음).” 2007년 출간된 자신의 첫 장편소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으로 한국인에 대한 미국사회의 편협한 인식을 넓힌 이민진 작가는 〈파친코〉를 통해 ‘한’이라는 정서를 외국인의 눈앞에 펼쳐 보였다. 출간과 동시에 〈뉴욕 타임스〉와 BBC가 선정한 ‘올해의 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황석영 작가의 〈해질 무렵〉,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보다 일찍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버락 오바마의 2019년 추천 도서로 꼽힌 것은 이를 방증하는 확실한 증거일 터. 더욱 설레는 일은 세상에 나온 지 5년을 넘긴 이 이야기가 조만간 더 많은 사람에게 닿을 예정이라는 것. 윤여정과 이민호를 필두로 한 매력적인 아시아계 출연진과 밴쿠버와 부산을 오가는 남다른 스케일의 로케이션으로 촬영 내내 호기심을 부추긴 동명의 시리즈가 애플TV플러스를 통해 3월 25일, 전 세계에 공개되기 때문이다. 한국인 입양인의 이야기를 풀어낸 영화 〈푸른 호수〉로 지난해 칸영화제에 초대된 저스틴 전 감독과 작가진의 절반 이상을 한국계로 구성한 쇼러너 허수진 작가 등 반짝이는 재능을 갖춘 코리언 스토리텔러의 합류 역시 기대감을 부추기는 요소. 마침 K콘텐츠가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기분 좋은 흐름 속에서,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평소보다 들뜬 마음으로 봄을 기다리는 이민진 작가에게 말을 건넸다. 지극히 한국적인 이야기를 써낸 한국계 소설가를 향해 본능적으로 뜨뜻해지는 마음을 안고.
 
출간된 지 5년이 지났지만 〈파친코〉에 대한 세상의 관심은 여전하다. 동명의 애플TV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가 공개되면 원작소설로서 다시 한 번 주목받게 될 테고. 책을 향한 꾸준한 애정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출간 후 강연과 북 콘서트 등을 통해 전 세계 독자들과 만났다. 인종과 언어, 국적과 성장 환경이 제각각인 독자로부터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에 대한 질문을 많이 던진다는 사실이었다. 이들은 충분한 생각 거리를 던져주는 책을 원하고 있었다. 어떤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사랑받으려면 홍보와 수상보다 중요한 것이 입소문인데 내 책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 있게 권할 만큼 만족스럽게 읽힌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낀다. 〈파친코〉가 그만큼의 통찰과 즐거움, 유의미한 메시지를 전하는 데 성공했다는 뜻이니까.
 
신기술과 신자본주의 등 온갖 미래적 화두로 떠들썩한 세상에서 시대적 배경이 무려 1910년부터 시작하는 이 소설이 갖는 의미는
나 역시 기술과 과학, 경제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결코 충분하지 않다. 삶에서 느끼는 지적·정서적 결핍을 채워주는 건 역사와 문학, 예술, 법, 인류학, 사회학, 종교, 철학일 확률이 높다. 〈파친코〉는 거시적으로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다루면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식민지시대의 기독교와 이민자법, 혼외 자식, 페미니즘, 일본의 파친코 산업과 부동산 거래 문제 등 수많은 사회 문제로 뒤엉켜 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간사의 다양한 화두가 더욱 풍요로운 독서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 기대했다.
 
선자와 아들 노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야쿠자 고한수처럼 모든 인물은 저마다 사연을 지닌 입체적 존재로 그려진다. 수많은 인물 중 유독 마음이 간 캐릭터가 있다면
선자와 경희. 처음 동서지간으로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가난 속에서 남편과 자식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고, 그 과정에서 강인한 여성으로 성장하며 결국 대가족의 척추와 같은 존재가 된다. ‘선자는 가방을 집어들었다/경희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책의 마지막 두 문장이 이들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대변한다.
 
선자와 경희처럼 당신의 소설 속 여성은 외롭게 부유하는 남성 캐릭터와는 달리 서로의 버팀목이 되며 연대하는 모습을 보인다. 의도한 지점인가

나는 세 자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부모님께서는 어릴 때부터 우리가 타고난 재능을 오직 여자라는 이유로 쉽게 타협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어린 나이에 항일 시위에 참여한 할머니에 대해서도 들었는데 놀랍고 감동적이더라. 지금보다 훨씬 어려운 여건에서도 용감하게 목소리를 낸 여자들이 그토록 많았다는 사실이. 한국에서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해 유관순 열사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됐을 때도 비슷한 종류의 감동을 느꼈다. 더 공정한 세상을 위해 소수자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끈끈하게 연대하는 것이다. 같은 여성과 경쟁하는 일은 내겐 공허한 승리처럼 느껴질 뿐 멋진 여자들과 함께 모두에게 이로운 승리를 쟁취하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
 
책에서 상징적으로 느껴지는 장면이 있다면
재일교포 4세인 솔로몬이 열네 살 생일에 마침내 외국인등록증을 받게 되는 장면. ‘개목걸이’라는 소제목으로 엮인 부분으로 일본이 재일동포를 감시하기 위해 마련한 수단이지만 재일동포가 일본에서 정착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이 굴욕적인 상징을 잘 그려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일본인이지만 비극적 삶을 살아가는 에쓰코와 그를 새어머니로 맞은 솔로몬 사이의 유대가 꽃피는 아름다운 장면으로도 볼 수 있는데 집필 당시에는 의식하지 못한 포인트였다. 계획하지 않은 곳에서 피어난 의미와 감동을 마주하는 건 글쓰기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로 이 장면을 매만지며 여러 층위의 글쓰기에 대해 배울 수 있어 좋았다.
 
데뷔작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에서 재미교포의 야망과 열정, 분노를 파고든 데 이어 〈파친코〉에서는 재일교포의 고난과 애환을 다뤘다. 재외 한국인의 다양한 감정에 몰두해 온 지난 시간이 당신에게 남긴 것은
한국을 떠날 당시 나는 일곱 살이었다. 이전까지의 삶을 까맣게 잊을 정도로 충분히 어린 나이였지만 그렇다고 한국을 내 삶에서 완전히 지울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전업 작가가 된 후에는 갖가지 이유로 조국을 떠난 사람에게 국가가 갖는 의미가 언제나 내 작품의 가장 중요한 화두였다. 국가적 정체성에 대해 파고들고 싶은 마음은 직업적 성공과는 별개로 드는 욕심이다. 그런 과정 끝에 출간된 두 권의 소설이 한국인에 대해 더욱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힌트가 됐다는 것 또한 예상치 못한 성과다.
 
긴 분량의 이야기를 즐겨 쓰는 작가다. 방대한 서사에 이끌리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윌리엄 섀커리와 토마스 하디 등 어릴 때부터 섬세한 심리묘사와 사회에 대한 날 선 비판의식으로 가득한 19세기 장편소설을 즐겨 읽었다. 그 영향으로 삶에서 마주한 인물의 입을 빌려 교육과 빈곤, 페미니즘과 종교, 자본주의 등 거시적인 주제를 논하는 지금의 글쓰기 방식을 즐기게 된 것 같다.
 
꾸준히 한 가지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지

모든 등장인물은 똑같이 주목받아 마땅하다는 생각, 모든 존재가 빛나는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생각이 치밀한 분석과 고민을 거듭하게 만든다. 물론 내가 워낙 느린 사람이라 어쩔 수 없는 것도 있다. 의심하고 방황하는 시간도 많이 필요하다. 이젠 그런 나를 잘 알기에 작업하면서 스스로에게 충분한 시간을 내어주려 한다.
 
체계적이고 촘촘한 구성을 위한 글쓰기 방식이나 규칙이 있다면
수도 없이 고쳐 쓴다. 아주 사소한 에피소드를 쓰는 데도 엄청난 사전조사와 인터뷰를 고집하는 내가 때론 미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웃음). 하지만 그게 나다. 작품을 완성하는 기쁨만큼 과정 자체에서 느끼는 희열도 크다. 이제까지 겨우 두 권의 책을 발표한 중년 작가지만 죽기 전까지 정말 마음에 드는 다섯 권의 책만 써도 충분히 괜찮다는 생각이다.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써내려 갈 수 있다는 것을 축복으로 여기면서.
 
드라마와는 별개로, 한국의 교육열을 다룬 차기작 〈미국 학원 American Hagwon〉을 집필하는 일에 여념 없다고 들었다
한국인에게 교육은 중요한 문제다. 그 뜨거운 교육열이 한국 이민사회를 이루는 데 미친 영향도 만만찮다. 차기작에서 ‘학원’이라는 독특한 장소를 중심으로 한국인에게 교육이 의미하는 바와 높은 교육열의 이면에 깔린 그들의 욕망을 들춰볼 생각이다.
 
펜데믹이 OTT의 부흥을 부추겼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시기에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본 콘텐츠가 있다면
미국에서 뜨거운 반향을 일으킨 영화 〈기생충〉과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을 나 역시 흥미롭게 봤다. 창의적인 K콘텐츠의 눈부신 활약에 남모를 뿌듯함을 느끼는 요즘인데 최근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과 〈갯마을 차차차〉도 정주행했다.
 
한국인만이 공유하는 은근한 특성 중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은
삶에서 내가 만난 한국인들은 하나같이 스타일리시하고, 각자만의 방식대로 창의적이었으며 무엇보다 삶에 열정적이었다. 제대로 놀 줄 아는 사람도 많아서 한국인 친구들과 있으면 언제나 필요 이상으로 즐겁다!
 
현재 한국은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는 MZ세대 여성 작가들의 활약으로 뜨겁다. 저마다 이야기를 품은 젊은 여성에게 전하고픈 메시지
강연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는 말이 “불시에 찾아오는 고민과 이상한 낌새에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라”는 것이다. 그럴 때 글쓰기는 가장 훌륭한 도구가 돼준다. 자꾸만 머릿속을 맴도는 사건과 주제에 대해(그것이 아무리 사소하게 느껴지더라도) 지속적으로 쓰면서 충분히 고민해 볼 것. 그리고 스스로에게 친절하게 굴 것. 마지막으로 개인적 화두에 몰두할 수 있는 자기만의 공간을 마련할 것. 이런 시간 끝에 창의적인 영감과 에너지를 장착하는 여성이 많아진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아름다워질 거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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