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달달한 게 필요해, 장류진_요주의여성 #19

코인, 할까? 말까? 퇴사, 할까? 말까? <달까지 가자>는 바로 당신의 이야기다.

BY김초혜2021.06.18
장류진의 〈달까지 가자〉 표지 이미지장류진 작가 ⓒ강민구
(*이 글은 장류진 작가의 소설 〈달까지 가자〉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점점 더 책 한권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매일 넷플릭스나 트위터에 소비하는 시간을 생각해보면“시간이 없어서”란 말은 핑계일 뿐. 인터넷으로 야금야금 구입해둔 책은 쌓여가는데 좀처럼 페이지를 펼치고 활자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지 못합니다. 그런데 오랜만에 책을 잡은 지 하루만에 읽어버렸으니, 바로 장류진 작가의 신간 〈달까지 가자〉(출판사 창비) 입니다.  
 
1986년생. 연세대 사회학과를 나오고 10년 정도 회사 생활을 한 바 있는 장류진은 2030 세대의 현실과 속마음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데 탁월한 작가입니다. 2019년에 펴낸 첫번째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은 젊은 직장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익숙하면서도 서늘한 사회의 단면들을 그려내며 호평 받았습니다.
 
기대 속에 선보이는 신작 장편소설의 소재로 ‘코인’을 다루다니, “역시 장류진”이라 생각하며 표지를 넘기는 순간부터 몰입은 시작됩니다. 제과 회사에 다니는 ‘흙수저 여성 3인방’이 갑갑한 현실의 출구를 찾고자 가상화폐에 ‘올인’하는 이야기. ‘직장인 공감백배 하이퍼 리얼리즘 소설’이란 홍보 문구는 요목조목 잘 들어맞습니다.
 
이렇다할 배경이나 인맥 없이 쪼들리는 일상에 지친 직장인 다해, 셈이 빠르고 돈에 관심이 많아 3인방 중 가장 먼저 이더리움에 투자하는 은상, ‘코인에 빠진’ 두 언니를 못마땅하게 여기다가 뒤늦게 자신의 처지를 자각하고 합류하게 되는 지송. 책 속의 배경인 2017년-2018년 이더리움의 실제 가격 수치를 기반으로 전개되는, 그래프의 등락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타는 인물들의 상황이 마치 드라마처럼 생생히 펼쳐집니다.
 
무엇보다 직장 생활을 하는 여성이라면 이 책에 담긴 묘사가 피부 깊숙이 와 닿을 겁니다. 보수적이고 경직된 회사 생활의 피로함, 불평등한 대우와 박봉, 안식처와는 거리가 먼 좁은 원룸, 점심시간이면 삼삼오오 커피숍에 모여 반복하는 한풀이… 이 책의 서술자인 다해의 독백은 여러 대목에서 찌릿하게 공명을 일으킵니다.  
ⓒ강민구

ⓒ강민구

“그제야 비로소 알아차렸다. 내가 깊이 바라왔던 게 있다는 것을. J. 이거였다. 내게 절실히 필요한 것. 그래서 내가 기다려왔던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바로 이런 모양, 이런 곡선이었다는 진실을 그 순간 섬광처럼 깨달았다./ 나는 매일매일 모래알처럼 작고 약한 걸 그러모아 알알이 쌓아 올리고 있었지만 그걸 쌓고 쌓아서 어딘가에 도달하리라는 기대도 희망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냥 그 행위를 멈추지 않고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위안 삼으며 그런 동작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었다. 여태껏 쌓은 건 지나가는 누군가의 콧김 같은 것에도 쉽게 부스러져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은 구태여 직시하지 않을 뿐 이미 잘 알고 있었다.” 95p
 
“강남 주민, 유학파, 교수 딸, 의사 아들. 그런 걸 알고 난 후에는 그 사람을 볼 때마다 속에서 무언가 이상하게 작아졌다. 부러움, 질투, 이런 상투적이고 민망한 이름들이 붙기도 전에 정말로 오장육부가 물리적으로 수축되는 느낌이 들었다. 알게 된 즉시 쪼그라들었다.” 103p
 
“뭐랄까, 그게 내 소비의 기본 모드였다. 최저가를 선택해야 한다는 코드가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것처럼 항상 제일 싼 것만을 골랐다. 이제 더는 아니었다. 처음 먹어본 유기농 목장의 우유는 맛도 물론 좋았지만, 그걸 고르는 나 자신이 비로소 건전한 시민이 되었다는 충만한 기분을 느끼게 해줬다.” 164-165p
 
“이런 식의 박음질이 더는 지겨웠다. 나는 그냥 부스터 같은 걸 달아서 한번에 치솟고 싶었다. 점프하고 싶었다. 뛰어오르고 싶었다. 그야말로 고공 행진이라는 걸 해보고 싶었다. 내 인생에서 한번도 없던 일이었고, 상상 속에서도 존재하지 않았고, 그렇게 때문에 당연히 기대조차 염원조차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98p
@Icons8 Team/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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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 친구들의 결말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행히도 해.피.엔.딩. 경쾌하게 읽히면서도 서늘하거나 씁쓸함이 남았던 전작과 달리 장류진 작가는 작정하고 이번 책은 ‘달달하게’ 쓰고 싶었다고 하지요. 열심히 살아온 주인공에게 선물을 주는 마음으로.  
 
이 달달한 이야기에 조금 맛이 다른 여운을 더해주는 건 에필로그에 담긴 다해의 이야기입니다. 학자금을 갚고 월세에서 전세로 집을 옮길 계획을 세우며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는 느낌”에서 벗어난 그녀에게 이제는 지긋지긋했던 회사도 견딜 만한 것이 됩니다. 그리하여 다해는 결심합니다.
“일단은, 계속 다니자.”
‘코인’에 집착하는 20대들의 뉴스를 볼 때마다 혀를 끗끗 차던 어른 중 한 명이었다는 걸 고백합니다. 20대는 원래 가난하고 불안한 것이라고, 젊은 시절에 가치 있는 건 일확천금보다 풍부한 삶의 경험이라고 중얼거리며. 이 책은 확실히 그네들을 다시 보게 만들었습니다. ’도약’의 가능성이 없는 세상에서 그들이 느끼는 비애와 무기력함에 대해서 조금은 이해하게 된 기분입니다.  
 
그래도 일단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버텨봅시다. 달달한 행운을 꿈꾸되 현실에 발을 딛고. 슬기로운 장류진의 다음 작품이 벌써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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