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혼의 단짝
」세 모녀가 모두 〈엘르〉 커버를 장식하는 기록을 세웠죠! 각자 첫 커버 촬영 때를 기억하나요
제인 버킨(이하 제인) 전 잘 기억나지 않아요. 둘째 샤를로트의 아버지인 세르주 갱스부르가 저 대신 커버를 모았거든요. 저보다 더 만족스러워했죠.
루 드와이옹(이하 루) 저는 2000년에 첫 표지를 장식했던 것 같은데, 굉장히 기뻤어요. 열여덟 살이던 지금은 세상을 떠난 언니 케이트가 촬영했거든요.
샤를로트 갱스부르(이하 샤를로트) 제게 커버 촬영은 악몽과 같아요. 렌즈를 쳐다보고 계속 웃어야 했거든요. 아버지가 알려준 것과 전부 반대였어요. 사진을 찍을 때는 렌즈를 쳐다보지 말고, 손은 주머니에 넣고, 웃지 말라고 했거든요.
모녀 사이에 고스란히 공유하는 공통점이 있을까요
제인 저는 배우인 어머니 주디 캠벨과 다르게 살기 위해 노력했어요. 사람들은 제가 외적으로 어머니와 닮지 않았다고 얘기했고, 그 말에 저는 스스로 매력 없는 사람이라고 결론지었죠. 제가 옷을 담백하고 매니시하게 입는다면, 어머니는 정반대의 스타일이었죠. 하지만 이제는 어머니를 닮고 싶어요. 어딜 가든 떠들썩하고, 화려하게 빛나는 존재를 어머니로 둔 게 자랑스러워요.
두 사람이 보기에 어머니 제인은 어때요. 할머니처럼 ‘어딜 가든 떠들썩하고 화려하게 빛나는 존재’인가요
샤를로트 네(웃음)!
루 어릴 때 저는 큰언니인 케이트, 샤를로트, 엄마의 모습이 참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어요. 청바지와 흰 티셔츠에 컨버스 운동화를 매치하는 특유의 스타일이 수수하고 나른한 분위기를 풍기잖아요. 그런 스타일을 한 제 모습이 그려지지 않아서 저는 할머니처럼 과감한 스타일로 나갔어요. 타투, 피어싱, 보석, 향수, 매니큐어 등 가족들이 전혀 하지 않는 것들로 치장했고요. 그럼에도 엄마에게 물려받은 걸 얘기하자면 독창성과 나만의 취향을 찾는 법, 영향을 미치는 방법 같은 것들이에요. 사람들은 엄마 스타일이 얼마나 독창적인지 잘 몰라요. 아름다움과 과감함, 장난기가 섞였죠. 그 안에서 우리 자매는 자신의 것들을 발견하는 거죠.
샤를로트 쉰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여전히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요. 부모님의 모든 면이 좋아요. 스스로 “본질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건 무엇이고 나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을 해보기도 했지만, 역시 제게는 엄마를 닮았다는 말보다 기쁜 것은 없어요. 부모님과의 유일한 차별점은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었어요. 부모님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오히려 저는 스스로를 숨겼죠. 그럼에도 엄마에게 물려받은 것들의 힘은 굉장히 강력하더라고요. 예전에는 제가 아버지를 더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엄마를 더 닮았다는 걸 깨달았어요. 가방을 고르는 것도 엄마의 취향을 닮아가고 있어요. 원래 약속 시간을 잘 지키는 편인데 이제는 엄마처럼 엉망이 됐죠(웃음).
예술적인 재능도 물려받았겠군요
샤를로트 저도 루도 예술적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았다고 생각해요.
루 사람들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그 점에 대해 얘기하죠.
샤를로트 제가 먼저 이 화두를 꺼내기도 하고요.
물려받은 재능 덕분에 두 사람이 배우와 가수가 됐다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샤를로트 그럼요. 저는 운이 좋게도 어릴 때부터 일을 시작할 수 있었고, 배우가 되는 것에 의문을 품지 않았어요. 아버지 세르주와 함께 샹송 ‘레몬 인세스트(Lemon Incest)’를 불렀던 열두 살 때도 ‘내가 과연 부모님의 재능을 물려받았을까?’ 같은 의문조차 갖지 않았거든요.
루 우리는 엄마처럼 그림을 그리고, 일기를 쓰고, 요리해요. 또한 ‘엄마’가 되었죠. 제가 아는 연예인들은 대부분 공인으로서의 모습과 실제 모습 사이에 간극이 있어요. 엄마의 경우 그런 부분 없이 늘 같은 모습이에요. 엄마의 자연스러움과 직설적인 태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절대적인 신뢰감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어요. 저는 제가 대중의 관심을 끌 만큼 매력적이거나 특출나지 않다고 느끼거든요. 그러면서도 또 그런 현실을 인정하기에는 자존심이 세고요. 아버지를 닮아서 일할 땐 굉장히 엄격하지만, 무대에서 모든 걸 쏟아내는 모습은 엄마를 닮았어요.
모녀끼리 이렇게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한 걸 보며 제인은 어머니로서 어떤 생각이 드나요
제인 굉장히 만족스러워요. 지금 당장 삶이 끝날지라도 제 딸들이 가진 개성과 성숙함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그들이 상대적으로 행복하다는 것도 알고요. 아이들이 늘 자신만의 길을 찾길 바라는 마음이 컸고, 그렇게 되기까지 조마조마하게 지켜봤어요. 영화 〈사랑할 때와 이별할 때〉의 캐스팅 디렉터가 부모의 이혼을 겪은 얌전한 아이를 찾고 있을 때, 제가 직접 샤를로트를 추천했어요. “우리 집에 그런 애 하나 있어요!”라고 말했죠. 루의 아버지인 자크 드와이옹과 〈더 파이렛〉을 찍을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카메라를 향한 샤를로트의 호기심을 봤고, 당시 유명인의 아이에게는 차라리 영화를 찍는 게 클럽을 전전하고 다니는 것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리고 루가 아이를 가졌을 때, 겨우 열아홉 살이었지만 엄마로서 굉장한 책임감을 지녔다는 걸 느꼈어요. 서른 살이 된 루가 첫 앨범을 녹음할 때 제게 “또 한 번 출산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굉장히 기뻤어요. 자식들이 자신을 뛰어넘는 걸 보는 게 엄마의 진정한 행복인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아이들에게 중요한 존재라는 걸 이해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제가 아버지를 굉장히 이상적인 존재로 여겼기 때문인지, 딸에게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가족의 유명세가 서로의 관계를 어렵게 만들기도 하나요
제인 저는 제 딸들의 인터뷰를 읽지 않아요. 제 기사는 물론 가족들의 기사를 볼 때면 누가 실수하거나 상처 주는 말을 하진 않았을까 항상 불안해요. 내밀한 삶의 단면, 딸들과의 소중한 순간을 회상하는 게 더 좋아요.
루 유명세라는 건 끔찍할 정도로 고통을 주기도 해요. 사진가였던 맏언니 케이트의 죽음은 오랫동안 힘들었어요. 친가 쪽 자매들과의 관계에 대한 오해도 있어요. 언론은 어머니 쪽의 배다른 자매들이 아닌 아버지 드와이옹의 자매들에 대해서는 언급도 하지 않고 지나칠 때가 많아요. 그로 인해 그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상처를 받기도 했죠. 그리고 작품에 나온 가족들의 모습과 거리를 두지 못해요(웃음). 샤를로트의 영화 〈더 트리〉를 봤을 때도 영화에서 벗어나기까지 며칠 걸렸어요. 제가 화면 속에서 보는 사람은 배우가 아니라 제 언니였기 때문이죠. 그래도 우리는 서로 정열적으로 사랑하고 지지하죠.
샤를로트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지만, 케이트가 세상을 떠나고 파리를 떠나 뉴욕으로 갔어요. 그때 저는 비로소 제 삶을 찾을 수 있었죠. 아이의 학교 엄마들과 커피를 마시고 택시 기사와 수다를 떠는 것에 호기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몰랐던 모습을 발견한 거죠.
샤를로트와 루의 페미니스트적 면모는 어머니에게 물려받았나요
루 제가 열아홉 살에 아이를 가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엄마가 보여준 강인한 모습 때문이에요. 엄마는 저를 위해서도, 극장 스태프들에게도 요리를 해주셨어요. 취약 계층에게 닭요리를 가져다주기도 했고 쇠약한 할아버지를 보살피고, 병상의 할머니를 돌봤어요. 엄마는 일을 하면서도 가족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줬어요. 편견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탈출한, 진정한 자유죠. 엄마가 여전히 아이코닉한 존재로 인스타그램과 핀터레스트에서 끊임없이 언급되는 것이 우연은 아니에요. 그녀는 여전사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