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형 서점의 ‘직장/처세술’ 코너나 ‘리더십/경영’ 코너 앞에 서서 별별 책 제목을 바라보고 있자면,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아등바등 인정받고 싶어 애쓰는 것은 오히려 상사들 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젊은 직원들이 ‘어떻게 살든 내 마음입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에 말이다. “꼰대의 일격! 회사는 유치원이 아니다”라고 멋지게 일갈을 날리는가 싶었던 책 날개의 저자 소개조차 ‘가끔은 젊은 세대와 소맥을 마시며 수다를 즐긴다’는 은근한 어필로 끝나는 걸 보면 진짜 꼰대 소리를 듣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나 보다 싶다.
글로벌 기업의 영업 마케팅 책임자부터 한국 지사장까지 27년간의 직장 경험을 토대로 기업에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식벤처캠프코리아 박중근 대표가 펴낸 〈70년대생이 운다〉는 2018년 출간된 베스트셀러 〈90년대생이 온다〉를 명백히 의식한 책이다. 책 여기저기에 뿌려진 ‘요즘 것들’의 행태에 대한 시니어들의 생생한 증언은 흥미롭다.
‘퇴근 시간 전부터 맛집 검색을 한다’ ‘출근 첫날 같이 밥 먹자니까 선약이 있다고 하더라’ ‘회사 냉장고를 배달 건강보조식품으로 채워놨다. 하여간 제 몸은 끔찍이 챙긴다!’ ‘이거 꼭 오늘까지 해야 하나요? 이것도 제가 해야 하나요?라는 말을 면전에서 한다’ ‘열정이 부족하다’ ‘SNS로 습득한 지식은 많지만 깊이가 없다’ 등 예상 가능한 평가들 사이에는 ‘다소 개인적인 성향을 보이기는 하나 사회성도 좋고 소위 일머리가 훌륭하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내 워너비다’ 같은 평도 존재한다. 잔뜩 화가 난 시니어들이 분노한 지점을 보면 짐작 가능하듯, 직장 내 세대 차이의 많은 부분은 회사와 일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태도의 차이에서 비롯한다. 나라는 개인과 직장이라는 조직. 둘 중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는 것이 자연스러운지 그 태생부터 다른 것이다. 이런 세대 차이는 통계를 통해서도 증명된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미래연구센터에서 시민 1천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의 4.2%, 30대의 8.8%만이 현재와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40대의 14.1%, 50대의 22.2%와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치다. ‘사람인’에서 20~30대 직장인 724명을 대상으로 한 직장생활에 관한 설문조사는 어떤가. 무려 20대의 44.6%, 30대의 35.2%가 진급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답했다. 불안정한 임원으로서 미래를 기약하느니 회사생활은 적당히 하고, 남는 시간에는 월급을 토대로 자산 가치를 늘릴 또 다른 수단을 찾거나 취미생활에 투자하는 편이 현명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회사의 성장이 나의 성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세대에게 “나처럼 해야 이 자리에 오르는 거야”라고 말해봤자 “그 자리가 그렇게까지 막 좋아 보이지 않는데요…”라는 반응만 돌아올 뿐. 미래를 낙관하고 조직을 믿으며 달리기에 이들은 이미 다양한 삶의 경로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알 수 없는 미래보다 속 편한 현재가 더 소중하다는 사실도.
그렇다면 세대간의 합의점을 찾는 일은 요원할까? 그렇지 않다. 직장 관계 또한 결국은 사람 사이의 일이기 때문이다. ‘개인주의’는 아무와도 관계 맺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일방적이고 수직적인 이전의 관계 맺기 방식에 호응하지 않겠다는 것일 뿐. 새로운 세대가 멘토나 좋은 동료, 어른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은 각종 유튜브 채널이나 SNS, 북 토크를 포함한 여러 강연과 모임을 그 어떤 세대보다 활발하게 좇는 모습만 봐도 추측 가능하다. 실제로 불거지는 직장 내 세대론 문제는 업무 처리 방식이나 수행 능력의 차이가 아닌 ‘소통방식의 차이’에서 비롯한다. 〈엘르〉 영국 또한 2월호에서 이 문제를 대대적으로 다뤘다. 퍼블릭 오피니언 컨설턴트 회사 델타폴의 공동창립자인 조 티먼(Joe Twyman)에 따르면 나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이들로 SNS 타임라인을 ‘안전하게’ 구성하고, 원하는 뉴스를 선택적으로 받아보는 지금 세대는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에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스스로 진보적이고 열려 있다고 믿었던 X세대가 정치적 올바름과는 별개로 발언의 자유 자체는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다면, 지금 세대에게는 원치 않는 혐오 발언이나 의견에 노출되지 않을 자유가 더 중요하다. 남녀는 물론 여성 사이에서도 세대 차이에 따라 반응이 다르게 일어났던 미투(#MeToo) 운동 이후 이런 성향은 더욱 공고해졌다. 인터넷에 떠도는 ‘꼰대 진단 리스트’처럼 하나의 발언으로 상대방을 특정 카테고리에 집어넣고 마음을 닫는 일이 새로운 세대에게 조금 더 쉬운 이유가 있다면 그 때문이다.
심리학을 전공한 더스피치커뮤니케이션 강지연 대표는 그렇기에 ‘화법의 변화’가 갈등 해소의 답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조직원 상당수가 90년대생이 될 수도 있는 지금, 새로운 소통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효율적인 대화와 좋은 관계를 위해, 일을 잘하기 위해서 뭐라도 해보자는 것이다. 그의 책 〈90년생과 갈등없이 잘 지내는 대화법〉은 직장 내 스몰 토크부터 업무 지시까지 회사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 맞는 화법을 제시한다. 모든 예시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책이 궁극적으로 말하는 바는 하나다. 불편한 사람과 잘 지내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닌, 결국 나를 위해서라는 것. 좋은 관계, 편안한 사람과 소통할 때 느껴지는 긍정적인 감정을 돌아보면 이 단순한 말이 의미하는 바를 당장 알 수 있을 것이다. ‘나 때는 그렇지 않았다’거나, ‘왜 내가 이렇게 눈치 보면서 일해야 되냐’는 태도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눈치를 조금 더 보는 일은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박중근 대표가 책에서 언급했듯 한국 사회는 피드백 문화를 두려워한다. 단점을 이야기하는 것은 ‘지적질’이 되고, 다면평가의 결과를 수용하긴커녕 부하 직원이 상사를 평가한다는 개념조차 도입하지 못하고 있는 조직도 많다.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고, 직책에 따라 조직 내에서 일종의 면죄부가 생기면 이런 성향은 더욱 강화된다. 점검 없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자신의 모든 행동과 결정은 크게 문제없는 것으로 여기고, 현재의 성과와 지위 또한 오로지 스스로의 역량 때문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결국 가장 두렵고 되기 싫었던 존재가 돼버리기 일쑤다. 바로 ‘회사를 벗어나면 아무것도 아닌 나’다. 누구에게나 업데이트는 필요하다. 최근 국내 기업에서 신입사원이 멘토 역할을 하는 ‘리버스 멘토링(Reverse Mentoring)’을 형식적으로나마 시행하는 것도 기본적으로 그 취지와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기 때문이다.
물론 한 세대가 다른 한 세대를 일방적으로 이해하고 포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길. ‘요즘 애들 무서워서 일 못하겠어’ ‘안 맞으면 그만두라고 해’라고 쉽게 비난하는 것조차 내 직위가 그들보다 높기 때문은 아닌지. 누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더 쉬울지. 내가 갖는 못마땅함과 억울함, 그들이 느끼는 불편함 혹은 괴로움이 과연 같은 무게인지에 대해 말이다. 이런 의심은 90년생에게도 유효하다. 자기 점검을 멈추는 순간, 나이만 어린 ‘꼰대’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일 테니까. 조금이라도 앞서 세상을 경험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선배다운 태도가 있다면 단 하나, 경청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