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화가가 사는 집, 장욱진 서거 30주기 기념전 : 강가의 아틀리에_인싸 전시 #19

가족에 대한 사랑과 집을 그린 장욱진이 코로나 시대의 우리를 위로하는 법.

BY김초혜2021.01.22
  
덕소 시기(1963-1975)의 장욱진, 사진=강운구장욱진, 노란 집, 1976, 캔버스에 유채, 37.9x45.5cm장욱진, 얼굴, 1957, 캔버스에 유채, 40.9x31.8cm
클러치만 한 사이즈의 작은 그림 가운데 집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네 식구. 지붕 위로 열 지어 날아가는 새들도 네 마리다. 목가적인 정취로 가득한 자연 속 소박하지만 온기 가득한 집, 함께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가족에 대해 애틋함이 느껴지는 1972년 작 〈가족도〉다. 장욱진에게 집은 가족과 생활하는 안식처이자, 예술적 영혼이 깃든 아틀리에였다.
 
신갈 시기(1985-1990)의 장욱진과 아내 이순경

신갈 시기(1985-1990)의 장욱진과 아내 이순경

장욱진, 길, 1975, 캔버스에 유채, 30.5x22.8cm

장욱진, 길, 1975, 캔버스에 유채, 30.5x22.8cm

장욱진 화백의 30주기를 기념하는 이번 전시는 〈집, 가족, 자연 그리고 장욱진〉이라는 타이틀에 맞는 그의 대표작 50여 점을 엄선해 선보인다. 1963년 작가는 경기도 양주 한강 변에 슬래브 지붕으로 된 열 평 남짓한 시멘트 집을 지었다. 가족과 떨어져 작업에 매진하는 남편 대신 아내가 서울에서 서점을 운영하며 아이들을 키웠고, 주말마다 남편을 보러 왔다. 그런 아내를 위해 작가는 화실 옆에 한 칸짜리 한옥을 더 지었고 1969년 작 〈앞뜰〉에는 그 집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1976년에 출간된 작가의 유일한 책 〈강가의 아틀리에〉는 이 덕소 화실을 일컫는다. “나는 천성적으로 서울이 싫다.”고 한 작가는 도시화를 피해 점점 더 한적한 시골로 내려가 집을 손수 고쳐 아틀리에로 삼았다. 1975년 낡은 한옥을 개조한 명륜동 화실, 1980년 농가를 수리한 충북 수안보 화실, 1986년 초가삼간을 개조한 용인 마북동 화실로 옮겨 다니며 안빈낙도를 추구한 작가의 삶이 간결하지만 응집력 강한 화면으로 남았다.
 
장욱진, 가로수, 1957, 캔버스에 유채, 45.5x27.3cm장욱진, 동산, 1978, 캔버스에 유채, 33.4x24.2cm
장욱진, 밤과 노인, 1990, 캔버스에 유채, 40.9x31.8cm

장욱진, 밤과 노인, 1990, 캔버스에 유채, 40.9x31.8cm

집 밖에서 뒷짐을 지고 밤하늘을 보며 생각에 잠긴 노인을 그린 1990년 작 〈밤과 노인〉에 나온 집은 아내와 단둘이 살며 작업에 매진하던 마북동 화실의 모습이다. 유명을 달리하던 해 그려진 이 작품에서 해학과 자유, 천진난만함이 깃든 작가의 조형 언어가 여실히 느껴진다. “나는 심플하다”라는 작가의 선언이자 고백이 담긴 작은 그림들은 절실한 정신적 휴식으로 다가온다.

 
명륜동 시기(1975-80)의 장욱진, 사진=강운구

명륜동 시기(1975-80)의 장욱진, 사진=강운구

“그림은 나의 일이고 술은 휴식이니까 사람의 몸이란 이 세상에서 다 쓰고 가야 한다. 산다는 것은 소모하는 것이니까. 나는 내 몸과 마음을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려서 다 써버릴 작정이다. 저 멀리 노을이 지고 머지않아 달이 뜰 것이다. 나는 이런 시간의 쓸쓸함을 적막한 자연과 누릴 수 있게 마련해준 미지의 배려에 감사한다. 내일은 마음을 모아 그림을 그려야겠다. 무엇인가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강가의 아틀리에〉
 
1월 13일부터 2월 28일까지
현대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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