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6년, 그레이스 켈리. ⓒ게티 이미지
켈리 백은 처음에는 ‘새들 캐리어’라고 불렸다. 사냥과 수렵 활동을 위해 말의 안장에 붙이는 가방의 형태로 만들어졌던 이 백의 용도가 여성용 백으로 변경된 건 1930년경의 일이다. 당시의 이름은 ‘프티 삭 오트(Petit Sac Haute)’. 마침내 ‘켈리’라는 이름을 갖게 된 건 1956년의 일이었다.

1956년, 그레이스 켈리. ⓒ게티 이미지
켈리 백이라는 이름은 모나코의 왕비가 된 헐리우드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1956년, 그녀는 임신한 배를 가리기 위해 빨간색 악어가죽으로 된 커다란 사이즈의 이 백을 들었는데, 그 모습이 〈라이프〉 매거진에 실리면서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전 세계에 공개된 한 장의 사진은 ‘성공 스토리’의 서막이 되었고, 에르메스는 그레이스 켈리에 대한 오마주로 모나코 왕실의 정식 허가를 얻어 이 백을 ‘켈리(Kelly)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에르메스의 이야기는 1937년에 파리에 공방을 열었던 마구용품 제작자 티에리 에르메스(Thierry Hermès)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가볍고 심플하고 튼튼한 마구용품을 원하는 고객들의 열망을 꿰뚫어 보았고, 그에 맞는 제품을 선보이며 주목을 받았다(1867년 파리 만국 박람회(Universal Exhibition)에서 수상을 하며 그 기술적 성과를 인정받기도 했다).
티에리 에르메스와 그의 아들 샤를 에밀 에르메스의 자리를 이어 받은 사람은 에밀 에르메스였다. 그는 새로운 장인들을 영입했고, 1925년 처음으로 남성용 의류, 골프 재킷을 만들었으며 1927년 처음으로 주얼리를 선보이고 1928년에는 워치와 샌들을 출시했다. 에밀의 사위 로베르 뒤마(Robert Dumas)가 1951년, 그의 뒤를 잇게 되는데 그는 노르망디항에 정박한 배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쉔 당크르(Chaîne d’ancre) 브레이슬릿, 실크 스카프, 그리고 켈리백 등 에르메스의 대표적인 베스트셀러를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흔히 럭셔리의 맨 끝에 있다고 여겨지는 브랜드 에르메스. 많은 사람들이 제품의 가격에, 가격표에 적힌 ‘0’의 개수에 주목하지만, 나는 이 기업의 정신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6세대에 걸쳐 프랑스 가문의 소유로 독립적인 운영을 유지해 온 하우스의 고고한 장인정신에 대해 생각한다. 모든 면에서 빈틈없이 정밀하고 완벽하게 튼튼한 마구용품을 팔던 티에리 에르메스의 정신이 지금까지 이어진 건 다름 아닌 특유의 운영 방식 덕분일 것이다. 거대한 회사에 편입되지 않고 가족 중심의 독립적인 운영을 유지한 점, 그리고 프랑스 내에서 생산하는 시스템을 보존하고 제작 노하우를 계승하고 있다는 사실은 내 마음 속에 깊은 울림을 준다.


지독한 고집으로 하우스의 노하우를 계승하는 목적은 뭘까. 켈리백을 선보인 로베르 뒤마는 단순한 말로 설명한다. ‘수선할 수 있는 명품’. 수선할 수 있다는 건 버리지 않고 계속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언뜻 시대에 역행하는 말 같지만 지금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말, 누군가는 지켜나가야 할 약속과도 같은 말이다. 최고급 소재와 엄격한 장인 정신은 결국 대를 이어 후대로 이어지는 ‘지속가능한’ 오브제를 탄생시키기 위한 것이니까.

*트렌드를 뛰어넘어 시대를 관통하는 가치를 지닌 물건 뒤에 숨은 흥미로운 이야기, 김자혜 작가의 ‘요주의 물건’. 2019년 10월 2일에 나이키 코르테즈와 함께 시작한 이 시리즈는 2020년 10월 7일, 에르메스 켈리백과 함께 막을 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