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을 하지 않은 여자가 결혼식을 권하는 이유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나는 결혼식을 하지 않았다. 불필요한 번뇌와 공장식으로 찍어내는 듯한 웨딩이 싫었다. 하지만 결혼 5년이 지난 지금, 왜 결혼’식’이 필요한지, 그 이유를 알 것만 같다. 김모아 작가의 '무엇이든 감성 리뷰' 열아홉 번째.

“결혼한 지 얼마나 되셨어요?”
대부분의 시간을 같이 보내는 나와 남편이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다.
“결혼요? 혼인신고를 한 지 햇수로 5년 되었네요.”
“결혼식은요?”
“아, 결혼식은 따로 안 했고, 부모님과 직계 가족들만 모여서 밥 먹었어요.”

종교가 있다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어쩌다 한 번씩 성당에 가는 편이다. 결혼식을 하지 않겠다고 결정하고, 식이라고 할 것도 없는 혼배성사 (미사로 진행되는 혼인 식인 혼인성사 전에 간단하게 증인을 두고 서약만 하는 카톨릭 신자라면 해야 하는 것)를 하고 그날 가족들과 밥을 먹었다.

결혼을 생각하지 않았었다. 서로 사랑하고 특별한 서약이나 서류 없이도 평생을 함께 살 것이라는 견고한 믿음과 바람이 있는데 굳이 사회적 제도가 필요하지 않았다. 아이를 가지려는 생각도 없는데. 하지만 12년의 연애, 동거를 부모님들이 알고 계셨고, 부모님들은 자신들의 마지막 숙제를 끝마치고 싶어 하셨다. (부모님 세대의 단계별 숙제: 출산, 양육, 완벽히 출가 시키기-결혼, 이후 번외의 자발적 숙제는 손주 낳으라 하기 그리고 손주 봐주기)

혼인신고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효도 중 가장 큰 하나였다. ‘어차피 평생 살 것이라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지 않을까?’ 부모님들의 그 말에 반박할 이유가 없었다. 그깟 서류가 뭐라고, 하지, 뭐. 2015년 3월 내 생일에 맞춰 구청에 갔다. 혼인신고를 올렸다. 공식적인 우리의 결혼기념일은 내 생일이다. 기념일을 몰아 버리자는 취지였다.

‘식’은 하지 않았다. 30분마다 한 팀씩 돌아가며 앞 팀의 축가가 울려 퍼질 때 로비에서 다음 팀이 결혼식을 준비하는 공장형 웨딩홀 형식도 싫었고, 그렇다고 소수만 초대하는 결혼식은 어디까지 얼마나 초대를 해야 하는지 고민이 될 것 같았고, 무엇보다 ‘식’을 벗어나 ‘의미’를 찾고 싶었다. 그때는 결혼식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낭비가 싫었다. 실용적인 것을 좋아했고, 여전히 좋아한다. 홀가분한 시작, 결혼식 준비에 자연히 따라오기 마련인 번뇌와 불필요한 싸움들은 없어도 될 것 같았다. 결혼을 하는 이유, 우리 둘이 제도권 아래 ‘가족’이라는 분류 속에 들어가는 이유와 의미,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그것이 더 중요했고, 고민 끝에 혼인 신고와 직계 가족과의 식사로 결혼식을 대신 했다.

얼굴도 한번 본 적 없는 일가친척과 부모님들의 친구, 친하지 않지만 그들의 결혼식에 다녀왔으니 오라 말해야 되는 지인, 친구, 일로 만난 사이 등을 초대하고 일일이 식사 자리를 만들어 청첩장을 건네고, 스드메 (웨딩사진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삼종 세트를 고르며 떨리는 안면 근육을 부여잡고 웃는 얼굴을 장착하고 정신없이 돌아가며 사진을 찍고, 누가 정했는지 알 수 없는 식순에 맞춰 인형놀이 하듯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초대를 받아 축하하러 갔었던 남의 결혼식에서 그날의 진정한 주인공을 찾기는 힘들었다. 그야말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가 바로 여기였다.

나와 사랑하는 사람, 우리의 결혼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해도 되는 것이니 결혼식은 안 하겠다고 했다. 남편은 중학교 때부터 평범하지 않게 살아왔기에 부모님을 설득하는 게 쉬웠으나 우리 부모님은 쉽지 않았다. 엄마와의 통화 중에 결혼식을 하지 않겠다고 하자 “모아야, 너 그거 이기적이다”라며 예상했던 펀치를 날리셨고, 나는 “엄마, 이기적인 게 아니라 주체적인 거예요”라는 준비된 말로 응수했다.

그렇게 결국 양가 부모님들은 우리에게 설득 당하셨다. 좋은 의미로 도전에 함께 하신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 지금까지도 부모님들은 본인들의 친구들과 일가친척들을 만날 때마다 번거롭게 우리의 의도를 설명하고 계신다.

“애들이 허례허식 없이 낭비도 안 하고, 덕분에 우리도 홀가분하고 골치 아플 일 없었지! 모아 남편? 멀쩡해! 너무 착하고 건강해! 일도 잘하고. 모아한테 잘하고. 어? 서울 살아. 사돈어른분들? 다 너무 좋으시지. 모아를 너무 예뻐해 주시고…”

몇 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그런 수고를 하고 계시는 것을 보면서 한 번에 인사를 드리는 자리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한방에 얼굴을 비쳤으면 해결될 일이었다. 많은 사람이 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물론 왜곡되고 변형된 공장형 웨딩홀은 정말 답이 없다. 시간을 돌린다고 해도 그것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해된다. 작은 땅, 타임 푸어, 즉 가성비를 따질 수밖에 없는 한국의 배경에서 자연스럽게 탄생한 공장형 웨딩….

사실 혼인신고로 결혼을 마친 게 좋았고, 좋다. 한 챕터에서 다음 챕터로 넘어갈 때 큰 턱 없이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게 좋다. 요란하고 유난스러운 게 싫다. 우리나라의 결혼’식’이란 게 그렇게 느껴졌었다. 우리 둘에게는 최고이자 최선의 선택이었다.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결혼은 가족과 가족의 결혼이기도 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실제로 부모님들은 우리의 ’식’없음으로 인해 진짜 친구를 가릴 기회가 되셨다고도 했다. 결혼식을 하지 않았지만 몇몇 친구들로부터 축의금을 받으셨다고 하셨다. 엄마는 재미있는 일화를 털어놓듯,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아야, 진짜 친구와 아닌 친구로 갈라지더라.”

우리는 진짜 필요한 것을 말하라는 지인들로부터 혼수라고 해야 할까, 가전제품과 생활용품, 축의금과 편지, 맛난 식사 자리 등을 선물 받았었다. 살면서 만나는 친척들에게 주례사를 대신한 좋은 말씀을 들었고 말이다.

몇 주 전, 남편의 아는 동생이 고민을 털어놓았다. 자기와 여자친구는 결혼식을 하고 싶지 않은데 여자 쪽 부모님들은 그간 ‘뿌리신’ 축의금이 있어 설득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그런데 만약 하게 되면 공장형 결혼식을 할 것 같아서 너무 곤란한 상황이라고 했다. 우리의 답은 이랬다. 공장형 결혼식은 정말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저희 결혼합니다!’라고 선포하는 것의 필요성과 한꺼번에 받는 축하에서 오는 기쁨과 힘이 있다는 걸 결혼식을 안 하고 보니 조금 깨닫게 되었다는 게 우리의 결론이라고 말이다. 그것을 하지 않아서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분명 있었다.

결혼식을 안 해보고 나니 결혼’식’, ‘식’의 필요성이 하나둘 보인다. 삶은 너와 나, 둘로만 살아지지 않는다. 그러기에 주변에 우리의 결혼을 공포하는 필요와 의미가 여러모로 있다는 게 지금까지의 결론이다. 게다가 축하를 건네고 싶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받는 게 연인에서 가족이 되는 챕터를 정서적으로 풍요로운 기쁨으로 시작할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 식대로 받았지만. 공장형 결혼식을 가든 스몰 웨딩이나 서구식 결혼식에 가든 가장 예뻐 보였던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이 결혼 당사자들에게 건네는 진심의 축하와 마음과 얼굴이었다. 되새기는 것, 그날의 선택과 축하를 기억하는 것. 일상을 보내느라 흩어지는 그 날의 그것을 하루에 쏟음으로써 묵직한 무게를 달아놓는 것. 그것은 결국 ‘책임’이었다. 결혼을 지키라는 책임이 아닌 서로의 사랑을 지켜나가는 책임. 사랑을 위해 노력하는 건, 말할 것도 없이 아름답다.

개별적으로 시간을 내기 어려운 시대에서 아는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만나 결혼을 알리는 번거로움을 ‘식’의 날로 몰아 해결하는 느낌도 나쁘지 않다. 해보지 않아서 느껴지는 ‘식’의 필요성. 그렇지만 우리는 좀 덜 후회하는 선택을 했다고 믿는다. 그리고 사실 그 선택을 잘했다고 끄덕인다.

요즘에는 시청의 공간을 적은 비용으로 빌려 혼인신고와 식을 한꺼번에 하기도 하고 기념사진도 친구들이 찍어 주는 등 다양한 방식의 결혼식이 생겨나고 있다.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음에 기쁘다.

결혼식 앞에서 여러 방식의 식을 고민하고 있다면 진정으로 원하는 방향을 찾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과 많은 의견을 나누자. 무조건 이건 싫고 이건 좋다라기보다 결혼은 하나가 아닌 둘이 함께 살아가는 것이고, 어찌 보면 매일 부부라는 작은 사회 속에서 적지 않은 양보와 배려,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이니까… 사랑한다면 매일의 노력이 필요하다. 사랑하니까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결혼이 아닌 누군가와 함께 살기 위해서 해야 하는 건, 노력이다. 이성이든 동성이든 가족이든 내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살기 위한 노력. 사랑하는 사람이든 사랑이 아닌 경제적 이유로 함께 사는 사람이든. 인생, 혼자 살 수 없다.

단 1%라도 후회가 적은 선택을 해가며 사는 것이 현명하다고 믿는 결혼식 안 한 유부녀로서의 리뷰는 여기까지다.

*김모아 작가의 '무엇이든 감성 리뷰'는 매주 화요일 만날 수 있습니다.
나는 결혼식을 하지 않았다. 불필요한 번뇌와 공장식으로 찍어내는 듯한 웨딩이 싫었다. 하지만 결혼 5년이 지난 지금, 왜 결혼’식’이 필요한지, 그 이유를 알 것만 같다. 김모아 작가의 '무엇이든 감성 리뷰' 열아홉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