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수영장을 갈망하는 이유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우리가 휴가하면 수영장부터 찾았던 이유가 있다. | 수영장,수영장 사진,온천 명소,건축예술 사진가,청유콴

싱가포르와 발리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청유콴이 디자인한 인피니티 수영장. 수영장 표면에 집 전체가 반사되도록 디자인했으며 테라스 형태로 돼 있어 숲 한가운데서 수영하는 기분이 든다. 브라질 출신 건축가 오스카 니마이어의 유일한 미국 커미션 작업으로 알려진 ‘더 스트릭 하우스’. 안뜰에 자리한 수영장에서는 샌터모니카 캐니언이 한눈에 들어온다. 풀 빌라, 인피니티 풀, 워터파크…. 날씨가 조금만 더워졌다 싶으면 우리는 언제나 수영장을 찾아 헤맨다. 수영장은 언제부터 이렇게 사랑받는 장소가 됐을까? 마침 세계적인 건축예술 사진가 팀 스트리트 포터(Tim Street-Porter)와 <엘르 데코>를 포함해 인테리어 매거진 기고가로 활약 중인 애니 켈리가 수영장의 역사와 디자인 트렌드를 총망라하는 신간 을 내놓았다. 보기만 해도 뛰어들고 싶은 200여 개의 수영장 사진과 흥미로운 이야기까지. 아직 국내에는 소개된 적 없는 책의 일부분을 살짝 공개한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는 집 안의 수영장이든, 그 자체로 하나의 테마파크가 된 공용 수영장이든, 우리는 언제나 수영장에서 즐거움을 얻으며 해방감을 만끽한다. 인류사에 기록된 최초의 수영장은 기원전 3000년경, 파키스탄의 한 유적지 안에 지어진 거대 욕조. 좀 더 본격적으로 수영장을 만들기 시작한 건 고대 그리스와 로마인들로 이들은 신체를 단련하기 위해 수영장을 건설했다. 고대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의 수영장은 대부분 온천 형태였으며, 중국에서 예부터 온천 명소로 각광받았던 화칭츠 온천의 경우 3000년 이상 성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수영장이 탄생한 건 19세기 후반의 일이다. 1896년, 수영이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수영장은 만인에게 사랑받는 유희의 공간으로 거듭났다.   건축가 존 로트너가 설계한 바이어 레지던스의 수영장. 거대한 물결을 형상화한 콘크리트 지붕이 수영장을 반쯤 드리우고 있다. 안뜰에 수영장을 갖춘 이 우아한 저택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아들인 로이드 라이트의 작품. 주로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활동했던 그가 1929년에 완공한 것으로 이후 할리우드 배우 다이앤 키튼에 의해 복원됐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영국과 호주, 미국에서 순차적으로 공립 수영장이 탄생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엔 소아마비의 유행으로 집 안에 수영장을 짓는 일이 많아지고 개인 수영장까지 생겼다. 물론 집 안에 거대한 물 웅덩이를 파는 일은 부자에게만 가능했으니, 1920년대 미국 베벌리힐스에서는 카누를 띄울 정도의 호화로운 수영장도 있었다고 한다. 이후 점점 더 많은 건축가들이 주택설계에 수영장을 포함시키면서 개인 수영장은 하나의 주거 트렌드가 됐다. 미국 최초의 철골 구조 주택을 만든 오스트리아 출신의 모더니스트 건축가 리처드 노이트라와 르 코르뷔지에, 미스 반 데어 로에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미국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등이 자신들의 주택설계에 수영장을 포함시켰다. 그렇게해서 1970년대까지 미국에서만 100만 개 이상의 수영장이 생기게 됐다. 수영장이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매력적인 공간으로 인식되면서 예술가들이 수영장을 작품 주제로 삼는 경우도 흔해졌다. 수영장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아티스트는 아마도 데이비드 호크니일 것이다. 캘리포니아의 호화로운 저택에 지어진 수영장을 밝고 컬러플한 색조로 그려낸 ‘첨벙(Splash)’ 시리즈로 그는 ‘현존하는 가장 비싼 작가’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현재 전 세계 아트 신의 주목을 받고 있는 슬로바키아 출신의 사진작가 마리아 스바르보바(Maria Svarbova) 역시 수영장에 매료된 또 한 명의 아티스트다. 완벽한 대칭구도를 이루는 실내 수영장에서 새빨간 수영복을 입은 채 무표정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소녀들. 그는 2014년부터 슬로바키아에서 사회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인 1930년대에 지어진 수영장 13곳을 찾아다니며 연작 ‘수영장’ 시리즈를 완성했다. 왜 우리는 수영장에 매료될까? 영국 테이트 모던이 홈페이지를 통해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수영장 그림에 열광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70% 이상의 응답자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아지는 밝은 분위기 때문에’ ‘현실 도피를 하고 싶어서’ ‘내가 꿈꾸는 풍경이라서’라고 대답했다. 사람들이 호크니의 그림에 매력을 느끼는 첫 번째 이유는 그것이 ‘꿈의 장소가 지닌 유혹적인 광경(Seductive depiction of a dream place)’이기 때문이라고 테이트 모던은 정의한다. 결국 수영장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서만이 아니라 거기서 느낄 수 있는 밝고 천진난만한 분위기에 이끌려 수영장을 갈망한다. 형광에 가까운 선명한 에메랄드 빛깔을 지닌 그 투명한 세계로의 도피를 꿈꾸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