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찬   시인 책을 챙겨 휴가를 떠났다가, 앞에 한 두 장만 펼치고 고스란히 가져오는 것에 죄책감을 갖는 사람들을 본다. 괜히 책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질 필요가 있을까? 여행 가방에 넣어두기 좋은 책은 따로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내 경우 얇고 가벼운 책을 더 선호한다. 장편 소설이라면 너무 두꺼운 것보다는 얇은 것이, 장편보다는 단편 소설집이 좋다. 2,30분 정도 집중하면 한 편이 끝나는 정도가 적당하다. 이동 중에 읽기에 딱 좋다는 말이다. 한 편의 소설이 끝나면 잠시 책을 내려놓고 창밖을 보며 그 여운을 즐길 수 있다. 시집과 산문집도 마찬가지다. 혹은 정반대의 전략을 세울 수도 있다.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를 여행지에서 읽은 적이 있다. 어마어마한 정서적 에너지를 요구하는 고통스러운 걸작인 그 소설에 정신없이 빠져들어 눈물 콧물 흘려가며 읽던 상태에서 벗어나 잠시 책장을 덮고 고개를 돌리니, 하염없이 아름다운 여름날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때 느낀 기묘한 감동과 감각은 분명 다른 곳에서는 겪어본 적 없는 것이었다. 이 참혹한 열탕 냉탕식의 독서도, 여유로운 휴가철에 즐길 수 있는 독서법이 될 수 있을지도.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정현주   북캉스 애호가 수년 전 푸꾸옥 여행에서 고른 숙소가 하필이면 숙소에 식재료가 바닥나면 굶어 죽기 딱 알맞을 정도로 외진 곳이었다. 우기마저 겹쳐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빗소리와 거친 파도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는 것뿐. 50여 개가 넘는 나라를 여행했던 내게, 그 열흘의 기억이 그토록 강하게 남을 줄은 몰랐다. 이후 1년에 한 번은 작정하고 북캉스를 떠난다. 여차하면 바로 책을 구매해 읽을 수 있는 이북리더기는 든든한 동반자다. 북캉스를 떠났다면 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은 필수다. 스마트폰과 멀어지기 위해 가급적이면 현지 유심은 사용하지 않고 와이파이가 가능한 곳에서만 인터넷을 한다. 일부러 와이파이를 설치하지 않은 숙소를 찾아가는 강수를 두기도. 여행지와 숙소 자체도 중요한데, 내가 선호하는 장소는 주로 더운 지방에서 별로 할 것 없는 작은 섬에 자리한 소규모 숙소. 책을 읽다 고개를 들었을 때 바다나 산, 적어도 나무가 보이는 테라스가 딸려 있는 방을 고른다. 에어컨 바람보다 자연 바람에 새 소리, 파도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을 때 훨씬 집중이 잘 되기 때문. 간혹 너무 덥거나 비가 내릴 때를 대비해 작은 블루투스 스피커도 함께 준비해 간다. 도착과 함께 숙소 냉장고에 현지 맥주와 먹거리를 잔뜩 쟁여 두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 책을 읽다 보면 밥 먹기조차 귀찮을 때가 있으니까. 아! 여행지에서 절대 읽지 말아야 할 책이 있다면 바로 여행 에세이다. 다른 사람의 여행기를 읽다 보면 오히려 내 여행의 감흥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     안은별   저자 여행지, 즉 목적지보다 목적지까지 가는 이동 시간과 공간에 주목하는 편이다. 이것은 지루한 시간을 어떻게든 견뎌내겠다는 효율주의의 발로가 아니다. 요즘 생각하는 건데, 나는 순수하게 이동 그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다. 특히 직접 운전하지 않아도 되는, 기계화된 이동 공간은 독서에 꽤 좋은 조건이다. 그러니 목적지보다는 이동 시간의 질이 중요하다. 보다 괴롭지 않은 공간과 좌석을 확보하는 것 말이다. 추리소설은 열차 여행과 함께 발전한 장르다. 긴 비행을 계기로 그동안 못 봤던 책을 다 봤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그래서 여행지에 꼭 책을 가져가겠다는 사람에게 한 가지 할 수 있는 조언이 있다면, 책을 고를 때 목적지에 앉아서 읽는 자신을 이미지화하기보다 ‘가는 길’ 속의 자신을 떠올리면서 고르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 레일 패스를 구입해서 1~2주간 JR 노선 위를 맘껏 달리며 이동 시간 그 자체를 즐기는 상상 같은 것. 도심 호텔이나 카페에서 책과 함께하는 바캉스를 ‘이동 중인 상태’로 옮겼다고 생각하면 쉽겠다.     단편선   음악가 생활인으로서의 삶을 의도적으로 단절하기 위해 떠나던 때가 있었다. 아는 이 아무도 없는 소도시에 몇 개월씩 머물렀다. 눈을 뜨면 몸을 씻고, 밥을 짓고,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기타를 연주하다 잠자는 것이 생활의 전부였다. 늘 시집을 챙겼다. 이따금 무료하면 아무 곳이나 펼쳤다. 그리고 조용히 소리 내어 읽었다. 몇 번을 반복해서 읽으면, 어느새 글을 쓴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썼을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됐다. 니은, 치읓, 히읗 같은 자음과 오, 아, 이 같은 모음이 이어지며 만들어지는 소리에는 나름의 톤과 텍스처, 높고 낮음, 깊고 얕음, 희고 검음, 무겁고 가벼움 같은 것들이 존재했다. 그 아름다움에 종종 빠져들었다. 책을 읽다가 머리가 무거워지면 그대로 덮어두고 누워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나도 없고 너도 없고 우리도 없고 한계도 없는 공상들이 밀려들곤 했다. 이곳은 서울일까, 모로코일까, 더운 열대의 어디쯤일까, 멀고 먼 북극점일까. 아무런 사건도 발생하지 않는 듬성한 생활의 사이를 채운 것은 형체를 특정할 수 없는 공상들이었다. 지금도 이보다 더 완벽한 책 읽는 법을 모른다.     윤나정   출판편집자 여행 가방에 무슨 책을 넣을지를 고민하는 일은 즐겁다. 대개는 지금 캐리어에 담지 않으면 앞으로 펼칠 일이 없을 듯한 책으로 고른다. 일상을 잠시 벗어나는 만큼 책도 좀 난데없는 걸 가져가는 것이다. 휴양지로 떠난다면 철학 에세이처럼, 그림같은 풍경 속에 늘어진 채 단 몇 장만 읽어도 저자의 지적 사유가 뇌세포에 수혈되는 기분이 드는 책이 좋다. 5분만 붙들고 있어도 뭔가 중요한 말을 들은 듯 만족스럽다. 한편 이동 시간이 길 때는 유용성이 전혀 없는 책을 챙겨가는 편이다. 아무도 읽어보라고 권하지 않았고, 이 지식을 활용할 일이 없음이 확실하며, 친구들과 수다 떨 때 언급조차 불가능한 책 말이다. 예를 들면 내 경우엔 과학철학이나 중국 고문 해석서 같은 것이다. 배나 열차, 버스, 비행기에 갇혀 장시간 꼼짝 못할 때 읽으면 쓸모와 상관없이 순수한 흥미만으로 이어지는 독서가 주는 쾌감이 있다. 지금 읽은 내용이 결코 세상 밖에서 활용될 일이 없으리라는 격리감도 비행기라는 공간과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이마루   <엘르> 피처 에디터 루틴이 정해진 일상을 벗어났을 때 이북리더기가 유용한 건, 종이 책을 읽는 데 필요한 ‘광량’이 사라진 순간 자신의 빛을 발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덕분이랄까. 승객을 재우기 위해 빛을 없애 버린 기내나 고속버스 안, 같이 방을 쓰는 누군가보다 늦게 잠들고 싶거나 일찍 깨버린 순간, 저녁의 카페 테라스나 리조트 벤치에서 최근 내 독서의 대부분이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서애호가들은 책을 애지중지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떠날 때는 미련없이 버려도 좋은 책을 가져가도 좋다는 게 내 생각이다. 30~40분이면 후루룩 읽을 것 같은데 도무지 펼쳐 보지 못한 조금 덜 좋아하는 책, 표지가 젖거나 호텔에 두고 와도 마음 아프지 않은 책 혹은 미련 없이 버려도 좋은 시사 주간지나 잡지를 편의점이나 간이서점에서 집어들고 떠나도 좋다. 뭐든지, 스마트폰 화면만 만지작거리다 돌아오는 것보다는 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