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현혹'의 홍작가가 말하는 아름답고 기괴한 결핍
완벽이 결함으로 뒤바뀌는 웹툰 '현혹'의 비극적 아이러니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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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혹>의 홍작가는 완벽해 보이는 존재의 이면에 숨은 공허와 균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피어나는 기괴한 정서를 집요하게 길어 올려왔다. 인물의 눈빛, 시대의 질감 하나까지 정밀하게 설계하며 인간을 끝내 평면으로 남겨두지 않는 시선. <현혹>은 그렇게 아름다운 얼굴로 가장 깊은 결핍을 이야기하는 작품이 됐다.
개화기 모습과 그로테스크한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현혹>은 늙지 않는 호텔 주인 송정화와 그가 노인이 된 모습을 초상화로 남겨야 하는 화가 윤이호의 이야기다. 송정화를 내밀하게 그려낸 데서 당신이 인물을 묘사할 때 감각적으로 꽂히는 지점이 궁금했다
‘결핍’을 중요하게 본다. 완벽해 보이는 인물일수록 어떤 약점과 상처를 지녔는지, 감정이 어떻게 결핍으로 뒤집히는지를 오래 들여다본다. 기구한 과거가 있을 수도 있고, 완벽한 외모가 약점이 되기도 한다. <현혹>의 송정화는 영생을 살지만 나를 아끼는 사람은 늘 나보다 먼저 떠난다는 점에서, 영생이 큰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 이처럼 ‘좋은 결함’을 가진 존재들, 축복처럼 보이는 조건이 곧 고통이 되는 인물에 이끌린다.
펜으로 그린 듯 섬세한 질감과 서구적인 작화가 눈에 띈다
눈에 집착하는 편이다. 시선의 방향으로도 감정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
작품 속 인물들은 유독 아름답고 기괴한 분위기를 갖고 있다. 시대를 반영한 의상이나 디테일에 대한 영감은
실제 개화기에서 온 사람처럼 보이길 바라면 국내외 자료나 옛 잡지, 도서관 자료까지 폭넓게 참고한다. 나중에 돌아보니 자료에 너무 매몰된 것 같기도 하다. 주인공 캐릭터를 좀 더 만화적으로 표현했으면 어떨까 싶다.
언젠가 ‘입체적인 캐릭터’를 그리는 데 집중한다고 말했다
그림적으로는 어떤 각도에서든 살아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정면 샷만 잘 그리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서사적으로는 왜 그런 사람이 됐는지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현혹>의 여성 인물들이 아름다우면서 기구한 삶을 품고 있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유한한 존재에게 무한한 삶은 축복인 동시에 거대한 결핍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혹> IP 영상화 과정에서 원작과 방향이 달라지기도 하나
배우와 감독을 직접 만나보니 실감나더라. 특히 한재림 감독이 마지막 장면의 의도까지 정확히 짚어냈을 때 ‘정말 제대로 읽어주셨구나’ 싶었다. 원작자로서 무조건 고집을 부리는 편은 아니다. 다만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만 살아 있다면, 오히려 확장되는 걸 재미있게 본다. 이번 작품은 내 의도와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이 있었다.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은 무엇인가
크게 보면 정서다. 내가 늘 이야기해 온 권태적인 정서,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 같은 것들. 원작 <현혹>은 시즌을 나눠 좀 더 분명하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기획 과정에서 한 번에 가는 게 낫겠다고 해서 많이 덜어냈다.
원작에서 덜어낸 부분은
송정화의 입국 경로나 역사적 사건, 인간에 대한 환멸 같은 감정을 더 깊게 담으려 했다. 그러나 제3자의 위치에서 역사를 너무 성급하게 건드리는 건 아닌지, 어설프게 건드릴 바엔 자르는 게 낫다고 생각해 덜어냈다.
기차 안 창문 속 송정화의 얼굴에선 불길한 기운과 예견된 비극이 보이고, 남주 윤이호와의 장면은 긴장과 욕망, 경계와 호기심을 동시에 보여주듯, 홍작가가 작화에서 가장 중시하는 눈, 시선처리가 분위기를 좌우한다. 압도적인 장면은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끝내 인간의 범주로는 설명되지 않는 송정화의 고요한 표정. 단 한번의 시선만으로 이 세계의 온도를 바꿔버린다.
<현혹> 외에 역사적 배경을 적극적으로 확장한 작품도 있다
<냉혈> 같은 작품은 과거 이야기가 훨씬 더 직접적인 모티프가 된다. 아예 더 먼 중세로 가버리기 때문에 이해당사자 문제에서 조금 자유롭기도 하고. 늘 역사와 신화, 종교처럼 이미 정리된 이야기의 ‘빈틈’에서 창작 가능성을 발견한다. 완벽하게 정리된 이야기에는 창작이 들어갈 자리가 없으니까. 그래서 현재 연재 중인 <냉혈>처럼 다른 방식으로 확장된 작품도 있지만, 깊이 매몰되며 함께 아파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현혹>은 유독 각별하다.
각별한 작품을 떠나보낼 때는 어떤 감정인가
홀가분했다(웃음). 처음부터 결말을 정해놓고 시작했지만, 중간에 흔들리는 순간이 있었다. 속도감이나 방향성을 바꾸라는 유혹도 있었지만 그런 걸 이겨내고 원했던 결말로 뚝심 있게 끌고 갔다는 점에서 스스로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독자들이 원하는 이야기는 뭘까
결국 남는 건 늘 비슷하더라. 사람들은 사건을 좋아하고 삼각관계 같은 긴장을 좋아한다. 또 비밀스러운 것, 미지의 것에도 강하게 끌리는 것 같다. 이를 ‘정보의 비대칭’이라고 생각한다. 나만 모든 정보와 미래를 알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모를 때 느끼는 쾌감. 그런 구조가 꼭 판타지에만 있는 건 아니다. 일일 드라마를 봐도 우리는 누군가 엿듣는 장면, 나만 알고 있는 비밀 같은 걸 좋아한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다 비슷한 데서 오는 재미 아닐까?
홍작가 세계로 입문작을 추천한다면
모든 작품이 내 모습이지만 <현혹>이 내 세계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신화적 구조와 공허한 정서, 그로테스크한 분위기 그리고 ‘그림 안의 그림’을 현실처럼 보이도록 밀어붙인 디테일이 이 작품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이상하게도 좀 더 아프게 낳은 자식일수록 애착이 크다(웃음).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주간 마감을 견뎌왔다. 그 과정에서 피어난 현실적 고충은
가장 힘들었던 건 삶의 단위가 늘 일주일이라는 점이지만 나름 20대를 유쾌하게 보냈다. 영화제에서 먹고 자고, 회사 다닐 땐 애니메이션과 게임을 오가며 자유롭게 지냈다. 전시 경험도 많고, 책도 많이 읽었고. 예를 들어 잔에 물이 한 방울씩 차다가 어느 순간 마지막 한 방울이 톡 떨어지면 물이 넘친다. 그때 물이 넘치는 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20대 때의 경험이 쌓이다가 어느 순간 한 방울이 떨어져 넘쳐 흐를 때 작품이 탄생했듯이.
오랫동안 이야기를 만드는 건 얼마나 큰 가치인가
우리는 모두 이야기 속에 살고 있다. 대부분의 삶은 너무 평범해서 그냥 흘려보내기 쉽지만, 그 안에도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작가에게 필요한 건 ‘발견’이다. 삶을 탐험가처럼 바라보는 시선. 예를 들어 늘 커피를 좋아하던 사람이 어느 날 문득 녹차가 마시고 싶어졌다면, 거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봐야 한다. 그날은 전날과는 또 다른 하루가 될 테니까.
17년을 달릴 수 있었던 동력도 이야기를 사랑하는 마음인가
그렇다. 그리고 변곡점마다 작품의 핵심 정서를 정확히 읽어주는 독자들도. 특히 내 작품에 깃든 모호한 결핍의 정서를 꿰뚫어본 독자의 말이 오래 남았다.
앞으로 그리고 싶은 이야기는 어떤 모습일까
한 발은 현실에, 다른 한 발은 비현실에 둔 채 기괴하고 낯선 감각을 품은 이야기를 또 그리지 않을까?
Credit
- 에디터 정소진
- 아트 디자이너 강연수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 COURTESY OF HONGJAC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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