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알레씨와 최초로 협업한 한국 디자이너가 있다고?

손이 닿는 순간을 가장 민감하게 설계하는 디자이너, BKID 송봉규.

프로필 by 윤정훈 2025.10.21
송봉규 대표.

송봉규 대표.

BKID 송봉규

“손이 닿는 순간을 가장 민감하게 설계합니다.” BKID 송봉규의 디자인은 촉각에서 시작된다. 스위치 버튼 하나에도 눌림의 깊이와 반발력, 표면의 곡률과 촉감 등 수많은 감각적 요소를 담는다. 이렇듯 보이지 않는 디테일로 사용자의 감각을 조율해서 ‘보기 좋은 디자인’을 ‘곁에 두고 싶은 디자인’으로 끌어올린다. 2010년 송봉규가 설립한 BKID는 단순한 형태 실험을 넘어 ‘디자인이 존재해야 할 이유와 맥락’을 끊임없이 되물었고, 올해 초 런던 오피스를 열어 글로벌 무대로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ADI 디자인 뮤지엄에서 선보인 ‘티컵 유니버스’.

ADI 디자인 뮤지엄에서 선보인 ‘티컵 유니버스’.


얼마 전 알레시(Alessi)와 협업한 텀블러 ‘부리(Buri)’가 출시됐습니다. 알레시 파트너로 국내 디자인 스튜디오가 선정된 건 처음이죠

‘부리’의 출발점은 실험실 비커였어요. 구조적 순수함과 목적에 충실한 형태 때문이었죠. 이처럼 불필요한 장식 없이 기능이 형태를 만드는 절제된 아름다움을 구현하고 싶었어요. 부리는 말 그대로 새의 부리를 뜻합니다. 외관은 아주 단순한 실린더 형태입니다. 하지만 입이 닿는 부분의 곡률, 마시는 각도, 잡을 때 느낌을 정밀하게 설계했죠. 여기에 텀블러의 두께와 비율, 입구의 라운드 처리, 음료가 흐르는 방향까지 미세하게 조율했어요. 무언가를 마시는 일상적인 행위에 미묘한 감각을 더하고 싶었거든요.


송봉규에게 일상 도구란

제게 일상 도구는 삶의 순간을 구성하는 오브젝트이자 일상에 작은 감동을 주는 감각적 매개체예요. 단순히 어떤 기능을 수행하기보다 삶의 근방에서 개입하며 작은 편리와 쓰임을 유도하는 존재죠. 하루의 시작을 여는 컵, 불을 켜는 스위치, 자기 전 마지막으로 닫는 서랍 손잡이처럼 늘 손과 눈이 머무는 자리에 있는 것들입니다. 저는 도구나 사물을 하나의 조용한 존재로 바라봅니다. 형태와 무게, 감촉, 재질의 변화만으로도 어떤 태도를 유도하고, 정서적 안정감이나 기분 전환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디자인할 때 ‘기능과 미감 사이의 긴장’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올해 밀란 디자인 위크 기간에 ADI 디자인 뮤지엄에서 열린 ‘차 문화’를 주제로 한 기획전에서는 무려 35종의 티컵을 선보였습니다

차를 마시는 행위가 지닌 깊이와 다양성을 관찰하고 해석한 시도였습니다. 전 세계 여러 지역의 차 문화와 마시는 태도, 손의 제스처, 온도와 농도, 음용 시간대, 음미 방식 등을 조사했습니다. 그렇게 수집한 수많은 관찰의 조각들로 차를 마시는 순간마다 다른 형태와 감각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죠. 서른다섯 개의 티컵은 각기 다른 맥락과 상황을 반영한 일종의 ‘지도’입니다. 컵을 디자인한 것보다 차를 마시는 몸의 움직임을 디자인하는 일에 가까웠어요. 이를 통해 얻은 통찰은 ‘차는 단순 음료가 아니라 태도를 만드는 액체’라는 점이었어요. 그 태도를 받는 구조물이 바로 티컵이었고요.


알레시와 협업한 텀블러 ‘부리’.

알레시와 협업한 텀블러 ‘부리’.


100% 재활용 가능한 확장 폴리프로필렌 (EPP)을 사용해 만든 서울시 공공 퍼니처 ‘EPP 체어’.

100% 재활용 가능한 확장 폴리프로필렌 (EPP)을 사용해 만든 서울시 공공 퍼니처 ‘EPP 체어’.


생활 속 작은 도구뿐 아니라 가구와 가전, 각종 전자 기기 등 다양한 사물을 디자인하고 있죠. 현재 가장 집중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주거 공간의 컨트롤러(조명과 온도, 음악 등)를 통합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입니다. 스위치와 콘센트, 홈 패드, 도어 벨 등 분산된 기기를 하나의 디자인 언어로 연결하고, 사용자 동선과 감각에 따라 조용하고 기분 좋은 경험을 제공하는 프로젝트예요. 기존의 스마트 홈 컨트롤러 개념을 확장해 물리적 인터페이스와 디지털 정보가 자연스럽게 연결된 구조에서 단순 기능 제어를 넘어 공간의 ‘톤’을 조절하고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려고 해요.


이젠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건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사물을 디자인한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미 너무 많은 것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무엇을 더하지 않아야 하는지’가 중요해진 것 같아요. 불필요한 것을 굳이 더하지 않는 용기랄까요. 기술이 발전하고 생산은 고도화됐지만 일상은 여전히 사소한 불편과 무의식적 반복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 틈을 조용히 메우고, 사람들의 삶에 작고 기분 좋은 경험을 설계하는 것이 제가 하는 일의 의미일 겁니다.

Credit

  • 에디터 윤정훈
  • 아트 디자이너 김강아
  • 디지털 디자이너 김려은
  • COURTESY OF BK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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