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이 옷, 패션 알고리즘이 추천 안 했습니다

완벽을 거부하는 새로운 패션 언어, 안티 알고리즘에 관하여.

프로필 by 손다예 2025.10.12

출근길, 익숙한 습관대로 인스타그램을 열었다. 게시물 몇 개를 지나자 곧장 어제 검색했던 신발이 추가 할인 정보와 함께 보란 듯이 피드에 뜬다. 우연일까? 아니면 누군가 내 머릿속까지 들여다보고 마음을 읽는 걸까. 새삼 알고리즘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는 걸 실감하자 지난 시즌 프라다 쇼가 끝난 뒤 미우치아 프라다와 라프 시몬스가 나눈 짧지만 강렬한 한 마디가 떠올랐다. “우리는 알고리즘에 의해 움직이고 있어요. 좋아하는 것, 알고 있는 모든 건 알고리즘을 통해 주입된 거죠.” 그 말은 기술에 대한 단순한 비판이 아니라, 지금 세상에 ‘진짜 취향’이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Prada

Prada


인스타그램 피드와 유튜브 추천, 틱톡의 무한 스크롤 속에서 우리는 이미 무언가에 길들여져 있다. 어제 친구와 떠든 얘기가 오늘 내 피드의 광고로 등장하는 기묘한 경험, 인스타그램의 주인인 메타는 ‘우릴 엿듣지 않는다’지만 모두가 공공연하게 믿고 있는 그 ‘비밀’ 같은 것 말이다. 모든 일상을 데이터로 수집하고, 우리의 관심과 시간을 얻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된 알고리즘 속 세상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은 과연 온전한 나의 선택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설계한 결과일까. 알고리즘은 편리함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취향을 좁히고, 생각의 깊이를 얕게 만든다. 얼핏 우리가 몰랐던 세계를 열어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내가 속한 좁은 울타리를 단단히 잠근다.


junya Watanabe Prada

그리고 패션계는 누구보다 이 알고리즘을 잘 이해하고 활용하는 집단이다. 소비자 맞춤형 광고와 데이터 기반 디자인, 클릭을 부르는 이미지. 가능한 모든 기술을 동원해 사람들이 패션을 더 추종하고, 욕망하게 만든다. 그러나 모든 디자이너가 그 흐름을 따르지는 않는다. 오히려 거스르는 이들이 있다. 알고리즘의 계산식이 감히 읽지 못할 ‘오류’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앞서 언급한 프라다는 2025 F/W 멘즈 컬렉션의 주제를 ‘Deeply Human’이라 명명했다. 해석하자면 ‘지극히 인간적인’. 인간의 본성과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본능적 직감이다.


Undercover

Undercover

Rabanne

Rabanne


이들이 근원적 창의성을 탐구하며 탄생시킨 결과는 원시 인류처럼 동물 가죽을 덮어쓴 코트, 맨몸에 걸친 턱시도 재킷, 패딩 점퍼 위에 또 다른 패딩 점퍼를 겹쳐 입는 등 기존의 스타일링 문법과는 다른 패션이다. 얼마 뒤 공개한 여성 컬렉션에서도 이런 흐름은 계속됐다. 모델들이 입은 드레스와 재킷은 앞뒤가 바뀌었고, 정갈함 대신 애매하게 삐져나온 리본 장식이 허공에 매달렸다. 파자마 셔츠에 정장 스커트를 매치하는, ‘이게 세련됐다고?’ 싶은 조합도 거침없이 등장했다. 미학적 완벽함 대신 의도적인 엉성함. 그것이야말로 인간적인 손길이자, 기계가 계산하지 못하는 감각이었다.


언더커버의 무대는 더 노골적이었다. 모델들은 집 앞 편의점에 갈 때나 입을 법한 편안한 트레이닝 차림에 화려한 꽃무늬 하이힐을 신고, 심지어 양말까지 더한 차림이었다. 알고리즘에 따른 패션 매뉴얼이라면 절대 권하지 않을 조합, 누군가는 ‘최악의 스타일링’이라 부를 법한 모습을 패션쇼에 올린 것. 하지만 그 순간 모든 알고리즘이 흔들렸다.


Comme Des Garcons

Comme Des Garcons

Prada

Prada


기존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고하는 트렌드 예측 모델은 이런 생경한 조합을 추천할 수 없고, 클릭률 분석도 의미를 잃는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이상한 한 수’가 쇼의 공기를 장악한 것. 이렇듯 기존 문법을 뒤엎는 이번 시즌의 패션 신은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을 떠올리게 한다. 승리를 위해 완벽하게 설계된 AI를 무너뜨린 건 아무도 두지 않을 것 같은 한 수였다. 알고리즘에는 오류지만, 인간에게는 가능성이다. 우리는 실수하고, 어딘가 허술하고, 완벽하지 않다. 바로 그 불완전함이 우리를 더 인간답게 만든다. 완벽을 흉내내려는 순간, 우리는 기계와 다르지 않다.


안티 알고리즘 패션은 결국 ‘자신답게 입자(Dress for Yourself)’는 선언에 가깝다. 모두가 ‘좋아요’를 향해 같은 옷을 입을 때 나만의 퍼스널 스타일을 고집하는 일. 균형이 어긋나고, 대칭이 맞지 않고, 규칙을 어기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대로 옷을 입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금 패션이 던지는 반격이다.


Credit

  • 에디터 손다예
  • 아트 디자이너 강연수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