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파리 올림픽을 통해 눈과 귀에 익은 그랑 팔레는 파리의 유서 깊은 건축물 중 하나입니다. 1900년대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아르누보 건축 양식으로 건립된 곳이죠. 강철과 유리로 정교하게 설계된 아치형 지붕이 한 명도 예외 없이 우러러보게 만드는 그랑 팔레에는 쉽게 입을 다물 수 없는 어떤 동경이 실려 있습니다. ‘거대한 궁전’이라는 이름이 주는 낭만과 우아한 품위, 한 세기가 넘는 시간의 스펙트럼, 유리 돔의 웅장함과 영적인 숭고함, 결코 잊지 못할 샤넬과의 아름답고 초현실적인 장면들.
2005년부터 샤넬은 그랑 팔레에서 현기증이 날 만큼 창의적이고 근사한 쇼를 선보였습니다. 칼 라거펠트의 상상력을 위한 넓은 마당이 된 그곳에는 샤넬 간판을 단 슈퍼마켓, 에펠탑, 로켓 발사대, 파도와 하얀 모래가 덮인 인공 해변이 들어섰죠. 초대형 런웨이가 된 그랑 팔레가 패션 예술 지형도에 생동과 새로운 반향을 일으키는 혁명적인 진원지로 탈바꿈한 것은 당연한 현상이었습니다.
2021년 전면적인 개보수를 시작한 그랑 팔레의 숨 고르기가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당연하게도 그 궤도를 따라 새롭게 단장한 궁전에 샤넬이 복귀했습니다. 그랑 팔레를 향한 샤넬의 애정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그랑 팔레의 주요 후원사인 샤넬은 과거를 복원하고 오래 지속될 수 있는 미래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요. ‘가브리엘 샤넬’로 명명된 그랑 팔레의 본당 입구가 두 존재의 끈끈하고 단단한 인연을 명징하게 드러냅니다.
장막을 걷은 전설적인 유리 지붕 아래에서 펼쳐질 샤넬 2025 봄-여름 레디-투-웨어 쇼를 앞두고 프리뷰 이미지가 공개됐습니다. 부부이자 사진가 듀오인 이네즈와 비누드가 촬영한 모델 엘라 맥커천과 니기나 샤리포바는 금방이라도 우아하게 힘차게 날아오를 것 같았는데요. 이번 쇼가 세상에 보여줄 새로운 야심과 그에 걸맞은 무언가가 어렴풋 떠올랐습니다.
이것이구나. 그랑 팔레의 본당 중앙에 설치된 거대한 새장 조형물이 결정타처럼 잠시 잊고 있었던 느낌을 불러냈습니다. 하나하나가 기념비적인 그랑 팔레의 샤넬 쇼 하면 놀라운 크기의 오브제와 물성이 시각적 인장처럼 번뜩 떠오르는 법이죠. 더블 C 로고를 두른 새장의 활짝 열린 문은 2025 봄-여름 레디-투-웨어 쇼의 테마를 상징합니다. 샤넬 크리에이션 스튜디오는 이번 쇼를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것에 대한 스토리와 초월적인 자유의 발레로 설명했는데요. 여기에 더해 이번 컬렉션은 가브리엘 샤넬처럼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사회의 시선과 관습에서 벗어난 여성들에게 바치는 헌사라고 덧붙였습니다.
우아하게 펄럭이는 시폰 케이프와 반투명 실크 스커트, 다채로운 깃털 프린트로 수놓은 드레스, 블라우스, 트렌치코트 그리고 폭이 넓고 유동적인 팬츠와 화이트 룩의 향연은 자유로움과 해방감, 가벼움과 역동성에 대한 찬가나 다름없습니다. 대담하고 자신감 넘치는 실루엣과 피터팬 칼라를 단 보머 재킷, 점프 수트와 넥타이 모양 인서트를 단 정장은 또 어떻고요. 가브리엘 샤넬의 절친이자 문학가인 콜레트, 1920년대 여성 해방 운동을 상징하는 가르손느, 깨어있는 언행으로 위로 나아간 여성 비행사들의 존재를 21세기의 그랑 팔레에 재현하다시피 했습니다. 피날레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손녀이자 샤넬의 앰버서더 라일리 키오가 장식했는데요. 새장 안의 대형 그네에 몸을 맡긴 채 블랙 케이프를 길게 휘날리며 그녀가 부른 노래의 제목은 ‘When Doves Cry’.
그랑 팔레에서 펼쳐진 샤넬 쇼는 여전했습니다. 그야말로 패션과 건축, 과거와 미래, 디자인적 욕망과 창의적 실험을 꿰어낸 거대한 무대였는데요. 이번 컬렉션에는 격자 패턴의 레이스와 구조적으로 짠 후트 스커트 등 그랑 팔레의 건축 요소를 차용한 디자인도 눈에 띄었습니다. 느닷없는 등장은 아니었습니다. 그랑 팔레로의 귀환을 신고하는 가장 샤넬다운 컴백 인사이니까요. 샤넬과 그랑 팔레의 재결합을 선언한 이번 쇼에서 ‘비상’을 주제로 삼은 것도 괜한 우연은 아닐 것입니다. 샤넬과 그랑 팔레가 다시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