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너의 이름은
타인의 심리를 초상화로 그리는 아티스트, 제이슨 보이드 킨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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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9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나 오슬로와 로스앤젤레스를 오가며 활동 중인 아티스트. 겉모습만 재현한 역사 속 초상화와는 달리 그의 작업 핵심은 인간의 내면과 심리를 형상화하는 데 있다. 제이슨 보이드 킨셀라
」대학시절 미술을 전공한 후, 광고 업계에서 20년 넘게 일하다 뒤늦게 아티스트로 데뷔했습니다. 무엇이 당신을 예술가의 길로 이끌었나요
수십 년간 광고 업계에서 아트 디렉터로 일했어요. 그간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보여준 적은 없었죠. 그러다 2019년 나만의 스타일을 찾았고, 거기에 내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는 생각이 분명해졌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직장을 관두고 작업에 매진하기 시작했죠. 물론 광고 업계 경험이 없었다면 오늘날 내 작업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20년간 얻은 교훈과 테크닉이 너무 많아 일일이 언급하기 힘들 정도니까요. 과거 경력도 내 예술세계의 일부인 건 분명한 사실이에요.
당신은 타인의 심리를 추상적으로 묘사하는 ‘심리적 초상화’를 그립니다. 초상과 내면에 대한 깊은 관심은 언제부터였나요
대학시절 렘브란트와 벨라스케스, 한스 홀바인 같은 거장들의 초상화에 매료됐어요. 이후 광고 업계에서 일하며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이끄는 요소에 주목했죠. 초상과 심리에 대한 나의 애정이 만나는 건 결국 시간문제나 다름없었어요.

‘Gareth’(2024)
그림 속 인물은 누구인가요? 작품 제목을 통해 이름을 유추할 수 있지만 당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웃, 친구, 가족 혹은 제게 영감을 준 아티스트입니다. 내 작품은 삶에 어떤 식으로든 존재해 온 사람들을 담은 앨범 같아요. 좋아하는 사람뿐 아니라 불편한 사람도 그립니다. 어느 경우든 실제 그들과 관계를 맺으며 느낀 감정을 담아요. 인물 선택에 특별한 기준은 없어요. 그때그때의 느낌에 따를 뿐이죠. 보통 당사자들은 내가 그들을 그린다는 사실을 모르지만, 알게 되면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재미있어합니다. 아직까지 화를 낸 사람은 없고요(웃음).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MBTI)에서도 작업의 영감을 받았다고요
10대 때 어머니가 <Please Understand Me>라는 책을 선물해 주셨어요. MBTI에 관한 내용이었고, 자가 진단 테스트도 포함돼 있었죠. 저는 INFJ였는데, 제 기질을 이루는 기본 구성 요소를 빠르게 알게 돼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사람의 성격이 이렇게 간단한 요소로 이뤄진다니! 당시 나에게 그건 놀랄 만큼 정확한 자화상 같았죠. MBTI는 내가 사람들을 바라보는 방식에 많은 영향을 주었기에 내 작업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MBTI 유형을 작품의 형식으로 그대로 사용하진 않아요. 그건 너무 직설적이니까요.

페로탕 서울에서 열린 제이슨 보이드 킨셀라 개인전 <기계 속의 유령>.
근래 한국에서 MBTI가 크게 유행했습니다. 한발 앞서 MBTI에 매료된 사람으로서 이를 어떻게 보았는지도 궁금하네요
상대방에 대해 빠르게 감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이를 사회관계에 적용하는 건 영리한 선택 같아요. 유리한 시작점을 만들어준달까요? 다만 MBTI는 어디까지나 하나의 틀이고, 틀 안을 채우는 것은 개인의 삶과 경험에서 발현된 독특하고 역동적 특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초상화에서는 인간을 이루는 이목구비나 피부 등은 찾아볼 수 없어요. 오직 기하로만 인물을 구성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는 타인을 외모로 판단하는 경향이 강하며, 학습된 자기 인식의 틀을 넘어 다른 사람을 보기란 쉽지 아요. 제가 그린 초상화는 신체를 넘어 사람들을 선입견 없이 보도록 합니다. 의도적으로 단순화된 새로운 시각언어로, 순수하고 가공되지 않은 감정을 불러일으켜 진정한 자아에 대한 인상을 전달하려 합니다.

‘Self Portrait’(2024).
각기 다른 모양과 색상의 도형은 타인의 개성을 뜻한다죠
각 초상화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는 단순한 기하들로 구성되며, 이를 통해 독특한 ‘심리적 지문’을 형성합니다. 이 형태 뒤에 숨겨진 의미를 해독할 ‘로제타 스톤’ 같은 건 없어요. 순전히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의도한 거니까요. 구성과 색채를 통해 좀 더 즉각적이고 본능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나아가 이 반응은 인물을 정확히 포착하는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큐비즘을 연상케 하지만 접근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입니다. 당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은 어떻게 개발했나요
입체주의, 초현실주의와 연결된다고 볼 수 있겠으나 제 작업은 제가 가진 모든 관심사가 캔버스 위에서 교차하며 나타나는 누적된 결과입니다. 렘브란트, 자크 립시츠, 헨리 무어, 벨라스케스, 피카소 그리고 보스(Bosch)로부터 받은 영향이 한데 뒤섞인 멜팅 포트죠. 어린 시절 방과 후 온타리오 미술관에서 미술 수업을 들었는데, 그곳에서 무어의 조각을 만나 처음으로 추상미술을 이해하고 경험했어요. 마치 추상 표현의 세계로 초대받는 것 같았습니다.

‘Axel’(2024).
회화이지만 그래픽 이미지처럼 보입니다. 스케치 후 3D 소프트웨어로 색채를 정교하게 조정하고 이를 캔버스에 유화로 옮기는 방식 때문일 텐데, 이런 표현법에 어떤 의도가 있나요
저는 인터넷 발명 전후를 모두 경험했습니다. 옛 거장 예술가들의 전통적 방법과 재료를 배웠고, 광고 업계에 있으며 최첨단 디지털 도구를 능숙히 다루게 됐죠. 이런 시대적 교차점에 있기에 서로 다른 두 세계를 모두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타인의 내면을 회화로 표현하는 것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내게 누군가의 내면을 그리는 일은 보이지 않는 세계로 통하는 창을 여는 것과 같습니다. 작업을 위해 사람들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보다 보면 그들 안에 숨겨진 비밀에 한 걸음 다가가는 느낌이에요. 그 과정에서 나와 그들의 관계에 대해 새로운 것도 발견할 수 있죠.

페로탕 서울에서 만난 제이슨 보이드 킨셀라. 오른쪽 작품은 ‘Fraze’(2024).
당신의 작업은 그림 속 인물에 대한 주관적 ‘해석’일까요, 그와 나누는 ‘대화’일까요
인물을 향한 내 감정에서 길어 올린 주관적 해석입니다. 그림을 그릴 때마다 인물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느껴요. 이런 무언의 대화가 작품에 활력을 불어넣는다고 믿습니다.
궁극적으로 당신의 초상화는 인간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을까요
여러 작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를 염두에 두고 작업해 오진 않았지만, 내면의 중요성을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요. 디지털 툴과 AI 확산으로 온라인 데이터를 점점 신뢰하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사진 속 피부를 매끄럽게 보정하고, 줌 미팅에서 뷰티 필터를 사용하는 건 흔한 일이죠. 챗GPT는 가상 인물을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처럼 생생하게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작품을 통해 누군가를 보다 정확하게 그리고 생생한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Credit
- 에디터 윤정훈
- 사진가 장기평
- 아트 디자이너 정혜림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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