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석양빛에 물든 구찌라는 낭만

타들어가는 석양 너머에서 온전히 자신을 마주할 그 찰나의 순간 속으로.

프로필 by 김성재 2024.09.24
‘자기 자신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 살아가면서 스스로에게 한 번쯤 던져볼 법한 인류의 근원적 질문. 이 물음에 비교적 안정적인 답을 할 수 있으려면 자신에 대해 명확하게 인지해야 한다. 복잡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이와 비슷한 고민을 하며 평생을 살아가는 만큼 인생에서 한 번은 진지하게 고민해봐도 손해는 아닐 터. 지난 9월 20일 공개된 구찌 2025 봄/여름 여성 컬렉션을 통해 사바토 데 사르노는 다시 한번 그만의 철학과 미학이 뒤섞인 비전을 바탕으로 하우스의 유산을 직관적이고 명징하게 펼쳐냈다. 그리고 미묘한 제안을 한다. 8월의 어느 하루가 끝나갈 무렵 태양이 바닷속으로 잠기는 순간, 찰나지만 온전히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그때 잠시 숨을 고르고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을 찾아보라고.

지난 2025 봄/여름 남성 컬렉션에 이어 ‘트리엔날레 밀라노’로 돌아온 구찌. 이곳은 사바토 데 사르노의 독보적 미감뿐만 아니라 문화적 대화에 대한 헌신과 예술, 디자인, 건축 그리고 동시대적 관점을 하나로 모으기에 충분한 최적의 장소임을 다시금 증명했다. 여러 개의 룸으로 구성된 쇼장은 화이트 컬러로 시작해 옐로, 오렌지, 레드에 이른다. 이는 여름날의 석양빛에서 영감을 받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물드는 일몰을 표현한 것으로, 사바토는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순간을 자신만의 감각으로 구현했다.

“테일러링, 란제리, 레더, 60년대 실루엣 등 하우스의 유산을 끊임없이 탐험하는 열정, 즉 캐주얼한 우아함은 저의 집념들이 결합하여 탄생했으며, 이는 언제나 대담하고 과감한 애티튜드와 함께할 것입니다.”

구찌에서 첫 번째 컬렉션을 치르고 1년이 지난 지금, 사바토 데 사르노는 자신이 현재 강박적으로 집착하고 있는 테일러링, 란제리, 레더, 1960년대 실루엣 등 구찌의 유산을 끈질기게 탐구한 후 단계적으로 결합해내어 레트로적이면서도 동시에 현대적인 컬렉션을 완성했다.

특히 그의 테일러링 능력을 재확인시킨 군더더기 없는 실루엣의 재킷과 스니커즈를 덮는 길이의 찰랑이는 슬릿 디테일 트라우저, 앞이 트인 지퍼 디테일의 레더 미디스커트에 눈길이 가는 사이 속이 훤히 보이는 레이스 드레스와 살짝 열린 재킷 사이로 언뜻 보이는 란제리가 순간적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는 이번 컬렉션 무드 보드에 재클린 캐네디의 사진을 넣었을 만큼 1960년대 스타일의 재해석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부푼 허리 라인이 특징인 짧은 재킷과 쇼츠, 미니스커트, A라인 스커트가 생동감 넘치는 컬러로 등장했고, 하우스의 시그너처 패턴인 GG 모노그램이 더해진 그랜드 코트를 탱크톱과 데님과 매치하는 등 대담한 조화를 선보였다. 실제의 사람들과 삶을 위해 옷을 만드는 것이 좋다고 말한 그답게 여전히 일상적이지만 섬세함과 간결한 미학이 혼재된 낭만으로 다시 밀라노를 물들였다.

캐주얼한 우아함에 대한 끈질긴 탐구는 액세서리에도 투영됐다. 그 중심에는 단연 구찌의 과거와 미래를 기념하는 뱀부 1947 백이 있다. 핸들에 래커 처리를 더하거나 플렉시글라스와 같은 디테일을 추가해 오리지널 디자인의 다채로운 변주가 눈길을 끌었다. 또한 뱀부 디테일이 적용된 다양한 사이즈의 백은 물론 홀스빗 엠블럼이 눈길을 끄는 구찌 73 버킷 백도 주목할 만한 포인트. 그런가 하면 뱀부 디테일은 주얼리에도 영감을 주었는데 뱀부 핸들이 연상되는 네크리스와 브레이슬릿은 몸 위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또 다른 관능을 선사했고, 재키 오 스타일의 큼지막한 선글라스와 발을 부드럽게 감싸는 듯한 플랫 부츠는 1960년대 무드가 담긴 디자인으로 선보였다. 하우스의 장인 정신과 심벌을 강조한 다채롭고 새로운 액세서리들은 룩과 적절하게 매치돼 은은한 조화를 이뤄냈다..

쇼가 끝나자 사바토 데 사르노가 꼭 이렇게 물어오는 것만 같았다. 12분 남짓 이어진 밀라노의 환상적인 석양빛을 따라 당도한 곳에서 무엇을 발견했는지,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발견한 시간을 마주했는지. 많은 이들이 이미 계절을 서둘러 넘기고 있을지 모르지만 각자의 마음속에 간직한 여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Credit

  • 에디터 김성재(미디어랩)
  • 사진 구찌
  • 디지털 디자인 강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