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거듭된 실험의 미학

아뜰리에 KHJ 김현종이 건축과 예술 사이를 종횡무진하는 법.

프로필 by 윤정훈 2024.06.27
춘천 포토 스튜디오이자 카페 ‘프레젠트 퍼펙트’. 건물을 지탱하는 구조는 매력적인 파사드로도 기능하며, 너른 창을 통해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을 실내로 끌어들였다.

춘천 포토 스튜디오이자 카페 ‘프레젠트 퍼펙트’. 건물을 지탱하는 구조는 매력적인 파사드로도 기능하며, 너른 창을 통해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을 실내로 끌어들였다.


CREATIVE STUDIO UNRAVEL


건축가, 인테리어 디자이너, 전시 작가.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게 많았다. 어떻게 해야 그 모든 걸 아우를 수 있을지 고민하다 건축 학교에 진학했다. 건축과 가구, 오브제는 저마다 스케일이 다르지만 서로 좋은 영감이 된다. 나아가 사고를 확장하는 데 도움 된다. 건축설계는 현실 요건을 먼저 고려해야 하지만 오브제 작업은 자유도가 높아 새로운 발견과 시도가 가능하다. 예컨대 ‘빌딩(Building)’은 2018년 사무소를 열 때부터 꾸준히 진행해 온 프로젝트다. 기둥이나 바닥 같은 건축 구조를 오브제로 응용하는 방식인데, 실험적이지만 실제 공간에 적용할 수 있는 작업이다.

‘빌딩’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든 ‘유니온’ 시리즈. 한옥의 ‘공포’ 부분에서 영감을 받아 나무 부재를 하나의 오브제로 치환했다.

‘빌딩’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든 ‘유니온’ 시리즈. 한옥의 ‘공포’ 부분에서 영감을 받아 나무 부재를 하나의 오브제로 치환했다.


프랑스에 11년간 머물며 건축을 공부하고 실무를 경험했다
프랑스는 건축과 문화, 예술이 풍부하게 발달한 도시다. 유학시절, 수업 시간 외에는 항상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며 많은 걸 보고 경험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며 취향을 찾고 발전시킬 수 있었다. ‘나만의 것’을 생각하는 좋은 출발점이 됐다.

‘빌딩’ 프로젝트를 통해 전에 없던 독특한 오브제를 만들었다. 창작을 향한 갈증이 계기였나
한국에 돌아와 사무소를 열었을 땐 일이 없었다. 나를 알릴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당장 건물을 지을 수 없다면 ‘나만의 빌딩’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간절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게 차츰 연락을 받기 시작해 다른 프로젝트를 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지난해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젊은 모색 2023: 미술관을 위한 주석>까지 참여하게 됐다.

2020년 아름지기 기획 전시 <바닥, 디디어 오르다>에서 선보인 ‘무-경계’. 마루에서 영감을 받은 오브제는 연결되는 방식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만들어낸다.

2020년 아름지기 기획 전시 <바닥, 디디어 오르다>에서 선보인 ‘무-경계’. 마루에서 영감을 받은 오브제는 연결되는 방식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만들어낸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젊은 모색 2023> 전시. 미술관 내 기둥을 확장, 변화, 해체로 재구성해 일반적인 형태에서 탈피한 기둥을 선보였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젊은 모색 2023> 전시. 미술관 내 기둥을 확장, 변화, 해체로 재구성해 일반적인 형태에서 탈피한 기둥을 선보였다.



오브제 작업의 일환인 ‘유니온’은 한옥의 부재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프랑스에 오래 있다 보니 한국의 전통 건축물이 새롭게 다가왔다. 창덕궁의 ‘공포’(처마의 무게를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에 짜맞춰 덧댄 부재)가 눈에 들어온 것이 계기였다. 화려하지만 단순 장식에 그치지 않고, 지붕과 기둥을 받치는 역할까지 한다는 점이 새로웠다. 공포를 이루는 작은 요소의 순서를 뒤죽박죽 섞으며 내 식대로 변주하다가 그런 형태가 나오게 됐다.

가구 역시 직접 디자인한다. 개인적으로 각별한 것이 있다면
파이프와 판지를 이용해 만든 ‘웨이비 테이블(Wavy Table)’. 아주 기본적인 재료와 단순한 논리로 구성됐지만 어딘가 다르게 보이는 이유는 제작 단계에서 디테일에 무척 신경 썼기 때문이다. 완성하기까지 애를 먹었던 가구라 더는 못 만들 것 같다(웃음). 전에 없던 형태를 구현하려면 숙련된 제작기술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래서 제작자에게 몇 번이고 다시 요청할 때가 많다. 겉으로 보이는 형태는 단순하니 작업하는 분들도 처음엔 어렵지 않게 생각한다. 그러다 나중엔 학을 뗀다(웃음).

부식된 구리를 사용해 다양한 무늬와 명도를 표현한 ‘코퍼 데스크(Copper Desk)’.

부식된 구리를 사용해 다양한 무늬와 명도를 표현한 ‘코퍼 데스크(Copper Desk)’.


미스치프 더 현대 서울 스토어.

미스치프 더 현대 서울 스토어.


전에 없던 형태를 구현하려면 숙련된 제작기술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래서 제작자에게 몇 번이고 다시 요청할 때가 많다. 겉으로 보이는 형태는 단순하니 작업하는 분들도 처음엔 어렵지 않게 생각한다. 그러다 나중엔 학을 뗀다(웃음). 집요하지 않으면 다른 점을 보여줄 수 없다. 무언가 다르다는 걸 보여주려면 더 기준을 높이고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러 패션 브랜드와 활발히 협업해 감각적인 공간을 만들어왔다. 무엇을 주안점으로 두나
브랜드가 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최대한 우리만의 시각으로 해석한다. 그다음은 기본적인 원리에 기반해 공간을 디자인한다. 주어진 조건, 사용자가 느낄 감정 등이 그것이다. 우리가 디자인한 공간을 이루는 것들은 순전히 기능적 필요에 의해 탄생한 것이 대부분이다.

별다른 기능 없이 장식처럼 보이는 것도 다 역할과 쓰임이 있다는 말인가. 인조가죽으로 둘러싸인 벽이 인상적인 ‘앤더슨벨 더현대 서울’ 디자인은 어떤 논리에 따랐나
백화점 매장은 가장자리 쪽의 박스형과 가운데 섬처럼 놓인 아일랜드형으로 나뉜다. 앤더슨벨 매장의 경우 아일랜드형이라 주어진 면적과 형태가 제한적이었다. 기존 공간엔 대리석 벽이 있었는데 앤더슨벨의 무드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다. 기존 대리석 벽과 벽에 고정된 선반을 가리기 위해 벽 앞에 철골구조를 만들고 자유롭게 변형 가능한 인조 가죽으로 구조를 감쌌다.

비건 레스토랑 ‘점점점점점점’.

비건 레스토랑 ‘점점점점점점’.


흐르는 듯한 곡선으로 물결치는 형태를 완성한 ‘웨이비 테이블’.

흐르는 듯한 곡선으로 물결치는 형태를 완성한 ‘웨이비 테이블’.


상암동 비건 레스토랑 ‘점점점점점점’은 재료의 특성을 살려 차별화를 꾀한 공간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친환경적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의뢰받고 국내 비건 레스토랑을 몇 군데 가봤는데, 우드 톤에 식물이 있는 인테리어가 대부분이었다. 목재는 나무를 베고 재단하는 과정에서 탄소가 꽤 발생하고, 생각보다 재활용 비율이 높지 않다. 언젠가 이 공간이 끝맺더라도 폐기물이 최소화되길 바랐다. 나무를 베지 않고 껍질만 뜯어 압축한 코르크 판재를 사용했다. 두루마리 휴지처럼 둘둘 말린 재료는 폐알루미늄이다. 용광로에 들어가 재활용되기 직전의 압축 3도 알루미늄으로, 폐기물장에서 직접 픽업해 반으로 자른 벽돌처럼 쌓았다.

재료와 물질에 대한 꾸준한 연구를 이어왔다. 호기심과 실험 정신을 유지하는 비결은 우리가 하는 일은
결국 재료와 재료가 만나 이뤄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몸담은 공간, 앉아 있거나 만지는 것 모두 재료의 조합이다. 클라이언트 프로젝트부터 개인 작업 모두 재료 실험의 연속이다. 실험하지 않으면 멈춘다고 생각하기에 항상 새로운 재료를 찾고 써보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쌓인 데이터가 결국 차별점으로 이어진 것 같다. 물론 그 실험들이 언제나 성공적이었던 건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만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이유이자 동력이기 때문에 멈출 수 없을 것 같다.

도전하고 싶은 프로젝트는
40층 이상의 고층 빌딩에 도전해 보고 싶다. 고층 빌딩은 사실상 구조가 전부다. 그걸 나만의 방식으로 아름답게 풀어내고 싶다. 생각만 해도 재밌을 것 같다.

Credit

  • 에디터 윤정훈
  • 아트 디자이너 이유미
  • 디지털 디자이너 김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