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가장 기능적이면서 스타일리시한, 파시드 무사비

건축가, 교수, 엄마. 세 가지 역할을 거뜬히 수행하며 자신만의 디자인 언어를 다듬어온 파시드 무사비.

프로필 by 윤정훈 2024.06.26

FMA(Farshid Moussavi Architecture). 자신의 이름 앞 글자를 딴 건축설계사무소를 운영하는 파시드 무사비(Farshid Moussavi)는 이란 출신의 영국 건축가다. 1993년 남편과 함께 FOA(Foreign Office Architects)라는 사무소를 시작해 국제적 명성을 쌓았지만, 2009년 이혼 후 각자 독립된 사무실을 차렸다. 건축가와 교수, 엄마라는 세 가지 역할을 거뜬히 수행하며 자신만의 디자인 언어를 더욱 견고하게 다듬어왔다. 이란에서 태어난 파시드는 14세 때 영국으로 이주해 건축디자인을 공부했다.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하버드 디자인 대학원을 다니며 경험과 이해의 폭을 넓혔다. “이란과 영국, 미국에서 보낸 시간은 나의 성장과 디자인에 각각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줬다. 물론 영국과 미국에서 학업을 수행해 두 나라의 영향이 좀 더 크지만, 거대한 시장(Bazaars)과 궁전, 주택, 도시 등을 포함한 이란의 건축 역사에도 관심이 많다.” 미국 휴스턴의 이스마일리 커뮤니티 센터(Ismaili Community Center), 프랑스 사클레(Saclay) 초등학교와 유치원, 몽펠리에의 주거 업무 복합시설, 상하이의 작은 플래그십 스토어까지. 전 세계 곳곳에 자신의 건축물을 세우고 있는 파시드는 ‘건축이 많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점’(Multifacetedness)’에 매료됐다.

몽펠리에 아파트 ‘라 폴리 디빈(La Folie Divine)’. 전략적으로 배치한 곡선형 발코니 덕분에 이웃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게 탁 트인 전망을 즐길 수 있다.

몽펠리에 아파트 ‘라 폴리 디빈(La Folie Divine)’. 전략적으로 배치한 곡선형 발코니 덕분에 이웃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게 탁 트인 전망을 즐길 수 있다.


“건축은 미학, 인류학, 경제학, 철학, 정치학, 사회학, 기술 등 여러 분야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이는 건축이 후기 산업 도시와 그 도시의 탈밀집화, 지속 가능성과 생태학, 이민과 주택 부족, 테러와 안보, 경기 침체와 정치 같은 영역과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뜻한다. 즉 기회와 우려 사이에 놓인 것이다.” 건축의 역할을 폭넓게 정의하는 그는 하버드 디자인 대학원에서 학생을 가르치며 여러 저서를 펴냈고,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건축 이론을 체계화했다. “스타일(Style)과 형태(Form), 장식(Ornament)에 관심이 많다. 모두 공간에서 미적 경험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장식에 대한 파시드의 정의는 단순한 ‘꾸밈(Decoration)’ 이상이다. 그가 추구하는 장식은 건물의 일부이며, 어떤 면에선 제거될 수 없는 필수 요소다. FOA 시절 영국 레스터 지역에 설계한 존 루이스 백화점(John Lewis Department Store)이 대표적 예다.

라 폴리 디빈. 곡선의 발코니는 바닥 또는 차양으로 변모한다.

라 폴리 디빈. 곡선의 발코니는 바닥 또는 차양으로 변모한다.


두 겹으로 된 외벽에 거울 프리트 패턴(Mirror Frit Pattern)을 입혀 실내에서 쇼핑하는 사람에게 도시 전망과 자연 채광을 제공하고, 바깥 행인에게는 그물로 된 커튼처럼 매장 진열대의 어수선한 풍경을 숨겼다. 여기에 빛의 변화에 따라 구름의 모양과 주변 건물을 다르게 반사하며 변화하는 패턴을 보여준다. 건물 외관의 핵심 기능이라 할 수 있는 ‘보호’와는 별다른 연관이 없지만, 내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건축가로서 가장 도전적이고 짜릿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그는 일말의 주저 없이 요코하마 항구 국제 터미널 공모 계획안을 현실화했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정말이지 어려움이란 어려움은 다 겪은 것 같다. 그때의 나는 젊다 못해 어렸고, 준공된 프로젝트가 없었으니까. 건축주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카라반첼 공동주택(Carabanchel Social Housing). 유리 외관에 접이식 대나무 스크린을 설치해 빛을 차단하고 개인 외부 공간을 확보했다.

카라반첼 공동주택(Carabanchel Social Housing). 유리 외관에 접이식 대나무 스크린을 설치해 빛을 차단하고 개인 외부 공간을 확보했다.


디자인 자체가 파격적이라 위험 부담이 상당했다. 심지어 철강 부족으로 건설 비용마저 오르고 있었다. 젊은 여성이었기에 편견과 마주하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쉬지 않고 프로젝트에 매달렸다. 터미널 조립을 위한 부품이 보트를 타고 현장에 도착하는 걸 지켜보고, 개장일에 터미널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본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파시드가 현재 살고 있는 곳은 19세기 영국의 건축 거장 토머스 큐빗(Thomas Cubitt)의 사무실이 있던 복층식 아파트. 창이 크고 천장이 높은 집에서 일과 생활의 구분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에게 균형이란 일과 삶에 쏟는 시간을 적절히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해 유연성과 효율성을 적절히 갖추는 것이다. “국제적인 건축설계사무소를 운영하며 가르치는 일을 병행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시간대를 빈번히 오갈 수밖에 없다.

클리블랜드 현대미술관(MoCa). 블랙 스테인리스스틸로 덮여 주변 환경을 반사해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클리블랜드 현대미술관(MoCa). 블랙 스테인리스스틸로 덮여 주변 환경을 반사해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동시에 나는 엄마로, 특히 대부분의 시간을 싱글 맘으로 보냈다. 이렇게 변화무쌍한 일상이 전통적인 관념과 맞겠나? 일찍이 이를 인정하니 모든 일을 잘해낼 수 있었다. 이 외에 다른 방법은 알지 못한다. 약간 불균형적인 상황이 오히려 여러 가지 생각을 넘나들게 했고, 나를 창의적으로 만들어줬다. 유연하면서도 체계적으로, 더불어 호기심 있는 자세를 유지하려고 한다. 더 많은 일이 주어질수록 나는 더 효율적인 사람이 된다고 믿는다.”

서로 다른 모양과 색상의 세 가지 타일로 독특한 외관을 완성한 ‘레이븐스본 대학(Ravensbourne University)’. 원활한 학업 분위기 조성에 필요한 일광을 충분히 제공하고, 인공 조명의 필요성은 줄여 유지 관리 비용 부담까지 덜었다.

서로 다른 모양과 색상의 세 가지 타일로 독특한 외관을 완성한 ‘레이븐스본 대학(Ravensbourne University)’. 원활한 학업 분위기 조성에 필요한 일광을 충분히 제공하고, 인공 조명의 필요성은 줄여 유지 관리 비용 부담까지 덜었다.

Credit

  • 에디터 윤정훈
  • 아트 디자이너 김강아
  • 디지털 디자이너 김려은